관제 센터, 들리나?
고요하다.
사령선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계기판도 먹통이 됐고, 수신되는 메시지도 없다. 기내 산소량은 25퍼센트. 수동 제어하고 있지만 방향을 확인할 수 없다. 우주복의 생명 유지 장치는 이상 없다. 앞으로 12시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급하게 나오느라 자살 캡슐을 챙겨 오지 못한 게 안타깝다. 농담이다. 마지막까지 신나게 즐기다 가겠다. 만약 관제 센터가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면, 동료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들 잘못이 아니야.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후회는 없다. --- p.11쪽
서 있을 때만 웃기는 건 아니지만, 서 있을 때 가장 웃긴 건 확실합니다. 앉아서 대화를 나눌 때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일어서는 상상을 하는데요. 상상만으로도 이야기가 잘 됩니다. 이야기라는 놈은 직선으로만 움직이는 모양이에요. 그런 면에서 전파를 닮았죠. 우리가 빌어먹을 인공위성들을 만든 이유가 뭡니까? 전파는 무조건 직선으로만 움직이니까 그걸 지구 반대편에 보내기 위해 반사를 시킨 거잖아요. 제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듣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세요. 그러면 여러분이 인공위성의 역할을 대신하는 겁니다. 자, 모두들 인공위성을 하늘로 올려 볼까요? 아, 여기 앞에 앉아 계신 분은 아폴로 13호를 닮았네요. 얼굴이 터질 것 같아요. 얼굴이 터져도 나사(NASA)를 탓하지는 마세요. 그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 p.13쪽
여긴 우주 한가운데다. 우주선 밖으로 나왔다. 이상한 말이지만 한가운데 있는 것 같다. 여긴 빛도 없고, 소리도 없고, 중력도 없고, 무시무시할 정도로 조용하다. 아무리 달려도 어디로도 닿지 못할 것이다. 우주정거장에서도 유영해 봤지만 기분이 완전 다르다. 그냥 완벽한 어둠 속에서 둥둥 떠 있는 것 같다. 정말 굉장하다. 내가 없어지는 것 같다. 이대로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꿈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꿈보다 더 꿈 같다. 거리 감각도, 공간 감각도, 모두 사라진다.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내가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위치가 소용없어진다. 나는 그냥 흐름 속에 있는 것 같다. --- p.95
저는 말 속에 살 겁니다. 말 중에서도 농담 속에서 살 겁니다. 하나님은 농담을 거의 안 하시지만, 음, 기억나는 게 없긴 하죠? 하나님 농담만 따로 묶어서 책 내려고 준비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농담 속에서 살면 좋을 거 같습니다. 형체는 없는데 계속 농담 속에서 부활하는 겁니다. 죽었는 줄 알았는데 농담에서 또 살아나고, 평생 농담 속에서 사는 겁니다. 형체가 없어도, 숨을 못 쉬어도 그렇게 살면 좋겠어요. 비참한 사람들끼리 하는 농담들 속에도 있고, 계속 울음을 터뜨리다가 갑자기 터져나오는 농담들 속에도 있고, 여자와 어떻게 한번 해 보려고 작업하는 남자들의 농담들 속에도 있고, 오랜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 여자들의 농담들 속에도 있고, 모든 농담 속에 스며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죽어도 여한이 없죠. 아니지, 참, 죽지 않는 거죠? 평생 거기서 살 겁니다.
--- p.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