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와 한국전쟁은 동의어가 아닙니다
--- 김성광 (comma99@yes24.com)
2009-08-24
외국의 모든 학자들은 이 전쟁을 한국전쟁(Korean War)이라 부르고 있다. 그런데 왜 유독 남한에서만 한국전쟁이라 부르지 않고, 6·25라고 부르고 있는가? ...(중략)...
분명한 것은 한국전쟁에 관한 남한의 공식적인 인식과 국가가 국민들을 향해 말하고자 하는 모든 내용이 '6·25'라는 규정에 담겨 있다는 점이다. 바로 1950년 6월 25일 북한에 의해 전쟁이 '기습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점,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초래된 모든 불행과 고통은 전쟁을 도발한 북한의 책임으로 귀착된다는 결론이 전제되어 있다. '6·25'라는 개념 규정 속에는 '상기하자 6·25, 무찌르자 공산당'의 구호에 집약된 것처럼 전쟁의 발발, 즉 전쟁 개시의 책임자가 누구인가, 누구 때문에 우리가 그러한 민족적 비극을 두고두고 되새김질하자는 문제의식이 강하게 깔려있다.그 결과 온 나라가 전쟁 개시일자인 6·25를 기념하고 있으며, 서울의 한복판 용산에는 '전쟁기념관'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하여 한국인들은 전쟁이 개시된 날짜는 너무나 잘 알아도 휴전된 날짜는 알지 못한다. '6·25'라는 규정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한도에서는 1953년 7월 27일, 즉 휴전일이 설 자리는 거의 없었다.
--- 본문 중에서
오늘은 2009년 8월 24일. 7월 27일 휴전 기념일에 맞추어 읽었던 책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조금은 스스로가 게을러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50년이 넘게 남한사회에 영향을 미친 이 '숫자'가 글을 쓰는 지금이라고 그 영향을 거둬들였을 리는 없으니 그렇게 뜬금없는 얘기는 아닐 것이라 믿어 본다.
이 책을 처음 만났던 때는 2000년. '6·25'라는 이름 대신 '한국전쟁'이라는 이름을 접할 기회가 조금씩 늘어가던 즈음이었다. 그리고 지금 2009년. 예전과 비해 6, 2, 5 이 세 숫자가 한자리에 모여 있는 광경을 볼 기회는 많이 줄어든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이 한국전쟁에 관한 인식의 전환을 상징하기보다는, '한국전쟁'이라는 주제 자체가 특별히 되새겨지지 않는 국면을 나타내는 것 같다. 결국 '6·25'로 상징되는 인식은 잠복-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상당히 불편한데, 여전히 한반도에 남한과 북한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은 북한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지, 우리의 현대사를 어떻게 보아야 할 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저자는 6월 25일이라는 ‘전쟁발발일’을 기념하는 것이 많은 것을 내포한다고 말한다. 전쟁의 ‘기원’ 혹은 ‘발발’이 아닌 발발‘일’을 기념하는 것은 ‘그날 누가 총을 먼저 쏘았느냐’를 주목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전쟁의 책임을 총을 먼저 쏜 자에게 묻고자 하는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전쟁의 발발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해방정국에서 폭발한 민족적·계급적 모순의 해소요구와 좌우익간의 대립, 미소의 개입 등 수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또한 6월 25일 이전에 이미 남한과 북한 상호간에 부분적인 남침과 북침이 아주 빈번하게 일어났던 ‘준전시’ 상황이었던 것을 기억해야 하며, 좌우익 간의 테러, 식민지 시기의 친일인사 들에 대한 테러, 미군정에 맞선 봉기와 유격전, 그리고 탄압과 토벌, 일부지역 보도연맹원들에 대한 학살 등 ‘사실상의 전쟁’ 상황이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승만이 ‘북진통일’을 줄기차게 외쳐왔고, 한국전쟁에 있어서 미국과 이승만이 ‘남침을 유도’한 측면에 대한 제기도 이뤄지고 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월 25일’만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은 전쟁을 북한의 책임으로만 떠넘기려는 시도이며, ‘적’을 명확히 함으로써 국가의 내적통합력을 높이려는-유지하려는 의도란 것이다. 즉, 발발일을 기억의 중심에 두는 것은 고도의 정치적 이해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한국전쟁에 대한 시야를 ‘발발일’에서 옮기고 보다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전쟁 기간에 있었던 일들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데, 이것은 단지 과거의 사실들을 ‘복원’하는데 머물지 않는다. 전쟁에 대한 기억왜곡('원수'로서의 북한을 상기하자는 주장)이 이후 남한에서 사상적 스펙트럼을 극도로 좁게 허용하고(좌파의 절멸, 우파의 독재), 이를 바탕으로 정치적 반대자들을 손쉽게 제거하였던 억압적 현대사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저자의 작업은 우리 현대사를 새롭게 그리기 위한 스케치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과거의) 복원을 넘어서는 새로운 설계인 셈이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 전쟁은 일방적으로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일차원적 전쟁 영화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해할 때, 북한과의 관계설정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합의가 도출될 수 있을 것이며 우리 현대사에 대한 평가도 새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미 북한과 현대사에 대한 냉?시대의 인식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지만 이 책을 읽는 것은 냉전시대의 인식이 왜 '반드시' 무너져야 하는지에 대한 흔들림 없는 근거를 우리들의 머리 속에 확실히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