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래도 부인께서 이렇게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 문장 한 문장을 얼마나 충실히 번역을 하셨는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런 충실함이 가능하다는 것도, 부인께서 하셨듯이 그렇게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권한으로 충실할 수 있다는 것도 제가 체코어에 대해 기대하지 못했던 것들이었습니다. 독일어와 체코어가 그렇게 가깝다는 말입니까?
--- p.22
걸인 아주머니 일 말인데, 내가 그렇게 행동했던 데는 좋은 뜻도 나쁜 뜻도 없었소. 나는 그때 그저 너무나 정신이 산만하거나, 아니면 너무나 한 가지 일에만 집중되어 있어서, 내 행동을 그저 막연한 기억에 의존해 결정하는 수밖에 없었소. 그런데 그런 기억 중 하나가 예를 들어 “걸인 아주머니에게 너무 많은 돈을 주지 마라,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었지요.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었소. 한번은 6그로셴짜리 은화를 하나 얻었는데, 그걸 대광장과 소광장 사이에 앉아 있는 한 걸인 할머니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요. 하지만 내게는 그 액수가 걸인이 아직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을 것 같은 너무나 엄청난 액수로 보였소. 그래서 그렇게 엄청난 일을 하는 것이 걸인 할머니에게 창피하게 느껴졌지요. 그래도 그걸 할머니에게 주긴 주어야겠고 해서, 6그로셴짜리 은화를 잔돈으로 바꾸었소. 그래서 1크로이처를 할머니에게 주고는, 시청 건물이 붙어 있는 건물군 전체와 소광장에 있는 아케이드를 한 바퀴 돌아, 왼쪽에서 전혀 새로운 자선가로 나타나서는 할머니에게 다시 1크로이처를 주고, 또다시 걷기 시작하고 해서 그 짓을 한 열 번쯤 성공적으로 해냈지요(아니면 그보다 조금 덜 했을지도 모르오. 왜냐하면 할머니가 나중에는 더 못 참고 사라져버렸던 것 같소). 어쨌든 마지막에는 몸도 마음도 어찌나 지쳐버렸는지 집으로 달려가서 막 울어버렸소. 어찌나 울었던지 어머니께서 그 은화를 새로 주셨다오.
그대도 보다시피 나는 걸인들과 별로 운이 없소. 하지만 그래도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벌어들일 모든 재산을 빈에서 통용되는 가장 작은 지폐 단위로 바꿔, 거기 오페라극장 옆에 있는 걸인 아주머니에게 천천히 다 내드릴 용의가 있다고 선언하오. 그대가 그 옆에 서 있기만 한다면, 그래서 […] 그대가 곁에 있음을 느낄 수만 있다면 말이오.
--- p.154~155 (주-[…] 표시는 카프카가 편지지에서 글자를 지운 부분)
그대가 오해하고 있는 게 몇 가지 있소, 밀레나.
첫째로, 내 병이 그렇게 심한 건 아니오. 잠만 조금 자고 나면 메란에 있을 때보다 훨씬 상태가 좋을 정도요. 폐병이라는 건 대개가 모든 병들 중에 가장 사랑스러운 병 아니겠소. 특히나 더운 여름에는 말이오. 초가을에는 어떻게 견뎌낼지는 나중에 생각해도 되오. 지금은 몇 가지 작은 고통들이 있을 뿐이오. 예를 들어 사무실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거요. 항상 그대에게 편지를 쓰고 있거나, 아니면 안락의자에 길게 누워 창밖을 내다보고 있지요. 거기서도 많은 것이 보이오. 맞은편에 있는 집은 일층짜리 집이기 때문이오. 창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기분이 특별히 우울해진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오. 그건 절대 아니오. 그저 그러고 있으면 거기서 일어날 수가 없다는 거지요.
--- p.156
친애하는 밀레나 부인. 제가 도브지호비체에서 보낸 엽서는 아마 받으셨을 줄로 압니다. 저는 아직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삼 일 후에 집으로 돌아갈 겁니다. 여기는 모든 게 너무 비쌉니다. (그리고 거스름돈도 제대로 주지 않지요. 한번은 너무 많이 주었다가, 한번은 너무 적게 주었다가 하는데, 급사장이 얼마나 빨리 계산을 하는지 잘 알아볼 수도 없답니다.) 잠도 너무나 안 오고요. 등등. 그것만 빼면 경치는 물론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다음 여행에 관해 말하자면, 아마도 이번 여행을 통해 여행할 기력이 좀 길러진 것 같습니다. 그게 프라하에서 반 시간가량 더 떨어진 곳으로 갈 수 있는 기력에 그친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단지 제가 두려워하는 건, 첫째로는 비용이고,?여기는 물가가 어찌나 비싼지, 죽기 바로 전 며칠이나 여기에서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가 되면 빈털터리가 되어도 상관없으니까요?그리고 둘째로는?둘째로는 말입니다?천국과 지옥이 두렵습니다. 그것만 제외하면 온 세계가 다 제게 열려 있지요.
충심의 인사를 보냅니다.
--- p.365 (주-1923년에 쓴 엽서. 편지 작성 횟수가 줄어든 시기이자 건강 악화 시기)
막스 씨의 편지에 대해 다 답을 하려면 몇 날 몇 밤이 걸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프랑크(주-‘프란츠 카프카’를 이르는 말)가 사랑에 대해서는 두려워하면서 삶에 대해서는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고 하셨지요? 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에게는 삶이 다른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삶과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돈이나 증권거래소, 외환센터나 타자기조차도 완전히 신비스러운 물건들입니다. (사실 그것들은 신비스러운 물건들입니다. 단지 우리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게 보일 뿐이지요.) 그것들은 그에게는 너무나도 이상한 수수께끼들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들에 대해 우리처럼 그렇게 의연히 대처하지 못합니다.
[중략]
세상의 가장 단순한 일조차도 그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와 함께 우체국에 가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는 전보문을 하나 작성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장 마음에 드는 창구를 찾아 섰다가, 왜 그러는지, 무엇 때문인지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채로 한 창구에서 다른 창구로 보내지다가, 마침내 해당 창구 앞에 서서 전보를 접수시키고, 돈을 내고 나서 잔돈을 돌려받아 받은 돈을 세어 보고는 1크로네를 더 받았다고 생각하고 창구에 앉은 아가씨에게 그 1크로네를 다시 돌려줍니다. 그러고는 그는 천천히 돌아나와 다시 한 번 세어 보며 계단을 내려갑니다. 다 내려가서야 돌려주었던 그 1크로네가 자신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주-밀레나가 막스 브로트에게 보낸 편지)
--- p.419~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