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감정을 만들어낸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먼저 인식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무조건 화를 터뜨리기 보다는 다만 섭섭한 감정을 느끼는 수준에 머무를 것을 자신이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고 노력한다.
어떤 감정을 가지든간에 , 당신이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인정한다는 것이 꼭 찬성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그것을 표출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자기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다 표출할 필요는 없다.
--- p.118-119
몇 년 전, 나는 저술과 강의와 환자들과의 년담을 통하여 낙담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요구주의'와 '명령주의'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다. 이성을 통한 자기 성장에서나는 당신이 만약 인생에 성공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것을 바라고 소망하고선호한면 그러한 소원 자체만으로는 어떤 정서적곤란에 부딪칠 수가 없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당신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했을 때에 당신은 분명히 서운하고 좌절된 감정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분노하고 불안해하고 우울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분노, 불안, 우울의 감정이 생겼다는 것은 당신이 그 '소원'을 '욕구'로, '선호'를 '요구'와 '고집'으로, '소망'을 절대적인 '명령'으로 상승시켰기 때문이다.
--- p.59
라쉬가 지적한 것처럼, 인도의 비폭력이나 무저항주의는 기본적으로 사람들 속에 인간성의 일부로서 어느 정도의 예의가 내재하고 잇을 것이라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그러므로 적의 집단을 예의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처음부터 단정하는 것은 그들을 마치 비인간적이라고 비난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무저항주의자가 교만하게 도덕성을 강요했던 태도와 일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