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브리스틀 대학의 과학철학 교수. 요크 대학, 런던 정치경제 대학, 멕시코 국립대학에서도 가르쳤다. 『진화와 선택의 수준Evolution and the Levels of Selection』(2006)이라는 저작을 발표해 과학철학에 두드러지게 기여한 공로로 러커토시상을 수상했다. 현재 〈필로소피 오브 사이언스〉의 부주필을 맡고 있으며, 유럽연구이사회 연구자상을 수상한 바 있다.
역자 : 김미선
모든 과학이 마녀사냥의 야만을 벗어나 인권을 찾아가는 휴머니즘의 시녀라 생각한다. 주로 표지에 머리가 그려진 책들을 번역했지만, 발길 가는 데로 머리를 옮긴다. 연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대덕연구단지 내 LG연구소에서 근무했으며, 숙명여대 TESOL 과정을 수료한 뒤 영어강사로도 일했다. 옮긴 책으로 『걷는 고래』 『진화의 키, 산소 농도』 『참 괜찮은 죽음』 『생각』 『화산』 『지구 이야기』 『의식의 탐구』 『기적을 부르는 뇌』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 『뇌와 삶의 의미』 『뇌, 인간을 읽다』 『설계된 망각』 『신경과학으로 보는 마음의 지도』 『뇌와 마음의 오랜 진화』 『괴물의 심연』 등이 있다.
과학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것은 오만해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뭐가 되었건 특정 현상은 결코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단언하는 것 또한 근시안적으로 보인다. 과학은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하므로, 오늘은 과학의 관점에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듯 보이는 현상이 내일은 쉽게 설명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러 철학자들에 따르면 과학이 결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으리라는 데는 다음과 같이 순수하게 논리적인 이유가 있다. 뭐가 되었건 뭔가를 설명하려면 다른 뭔가를 들먹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두번째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까? 예를 들어 뉴턴이 그의 중력 법칙을 써서 다양한 범위의 현상을 설명한 것을 떠올려보라. 그러나 중력 법칙 자체는 무엇으로 설명할까? 누군가가 왜 모든 물체가 서로에 대해 중력을 발휘하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 --- p.85
원자와 전자라는 실체를 상정하는 이론들이 거둔 경이로운 성공을 고려하면, 원자와 전자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는 정말로 어렵다. 하지만 과학사에서 보듯이 현재의 과학 이론이 데이터와 아무리 잘 들어맞아도 그것을 참이라고 가정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많은 과학자가 과거에 그렇게 가정해왔고 틀렸다는 게 입증되어왔다. --- p.107
쿤의 작업이 불러온 또 한 가지 중요한 영향은 전통적 과학철학이 무시해온 과학의 사회적 맥락에 주의를 끌었다는 점이다. 쿤에게 과학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활동이다. 다시 말해 공유하는 패러다임에 대한 충성심으로 결속된 과학자 공동체라는 존재가 정상과학이 실행되기 위한 선행 조건이다. --- p.146
과학자들이 화성에서 어떤 유기체를 발견했다고 하자. 이 유기체는 지구상의 생물학적 물질에서 생겨난 게 아닌데도 보통 집파리와 전혀 구분할 수 없다. (물론 도저히 그럴 법하지 않지만, 논리적으로 상상할 수는 있다.) 화성의 표본은 집파리처럼 생겼고, 지구의 집파리와도 상호교배를 할 수 있으며, 어떤 유전적 검사로도 진짜 집파리와 구분할 수 없다. 이것은 집파리일까? 만약 종이 자연 종을 가리킨다면 답은 아마도 ‘그렇다’일 것이다. 하지만 계통발생적 견해에서 나올 답은 ‘아니다’이다. --- p.174
과학은 시간이 가면서 엄청나게 변화한다. 그러니 모든 과학 분야에서 항상 사용하는 고정 불변의 ‘과학적 방법’이 있다는 가정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 이러한 가정은 과학이 앎으로 가는 유일한 경로라는 주장 그리고 어떤 질문들은 과학적 방법으로 답할 수 없다는 반대 주장에도 내재한다. 즉 과학만능주의에 관한 논쟁은 다소간 거짓 상정에 달려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