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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 톨스토이와 안나 카레리나, 그리고 인생

석영중 | 예담 | 2009년 10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3 리뷰 26건 | 판매지수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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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92쪽 | 339g | 128*196*20mm
ISBN13 9788959134137
ISBN10 895913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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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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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지덕지 장식을 붙인 꽃분홍색 키티와 심플한 블랙 드레스의 안나, 두 사람의 대비는 숨 막히게 강렬하다. 키티가 너저분한 레이스니 꽃 장식이니 하는 것들에 파묻혀 장식을 위한 소도구처럼 보인다면, 안나는 의상을 소도구 삼아 자신을 드러낸다. 코코 샤넬이 ‘리틀 블랙 드레스’를 디자인했을 때 그녀의 머릿속에 있었던 컨셉트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안나의 블랙 드레스는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장례식의 검은 옷, 수도사의 검은 옷, 매춘부의 검은 옷 모두가 이 세련된 리틀 블랙 드레스에 함축되어 있다. 장식을 거부하는 단순한 옷은 안나의 강직한 성격을 보여준다. 그녀는 수도사들이 신앙에 몰입하듯이 열정에 몰입한다. 또한 검은 옷은 그녀가 훗날 맞이하게 될 끔찍한 죽음을 예고한다. 이 무도회에서 그녀는 자기 사망증서에 서명을 하는 셈이며, 따라서 그녀가 입은 검정 드레스는 스스로를 위한 상복이 된다. 그리고 또 검정 드레스는 안나의 성적인 매력을 지나치게 드러내 보임으로써 그녀가 곧 사교계의 매춘부로 전락하게 될 것임을 은근히 시사한다. 톨스토이는 이 모든 것을 한데 버무려 “뭔가 잔혹하고 무서운 것”으로 표현한다.
---p.36「제1부 나쁜 삶 / 1_ 나쁜 사랑」

안나의 죽음을 예고하는 또 하나의 불길한 징조는 브론스키의 말〔馬〕이다. (…) 여인처럼 아름다운 말의 죽음이 아름다운 안나의 죽음을 위한 복선이라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자명하다. 『안나 카레니나』는 죽음으로 얼룩진 소설이다. 다시 말하지만, 가슴 두근거리는 연애나 슬프고도 황홀한 정사, 이런 것들보다는 끔찍한 죽음이 훨씬 압도적이다. 톨스토이는 왜 이토록 불륜에 대해 가혹했을까? 불륜이 가정을 파괴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에 충실했기 때문인가? 답은 육체에 있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이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육체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육체는 톨스토이가 청소년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하는 짐이었다. 그는 좀 과도할 정도로 육체의 욕구에 시달렸고, 그 욕구를 대충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해소했다. 그러나 동시에 육체를 저주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딜레마는 육체였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그의 일생은 육체와의 길고도 참혹한 전쟁에 다름 아니었다.
---p.41「제1부 나쁜 삶 / 1_ 나쁜 사랑」

소피야 부인은 성깔도 있고 머리도 좋고 충분히 육체적으로 매력적이면서 또한 보통 여자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소피야 부인이 악처였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현모양처였다. 그녀가 남편을 돕기 위해 수천 쪽에 이르는 『전쟁과 평화』 원고를 정서해 준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를 악처라 불러서는 안 된다. 그녀는 항상 위대한 작가인 남편에 대해 경외심과 함께 일종의 자격지심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 여자들처럼 남편과 자식들에게 헌신적이었으며 그 헌신을 통해 남편을 송두리째 독점하고 싶어 했다. 그녀의 소유욕과 독점욕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톨스토이 같은 거물을 향해 그런 욕망을 펼친 것 자체가 실수였다. ---p.99「제1부 나쁜 삶 / 2_ 나쁜 결혼과 아주 나쁜 결혼」

이렇게 남성의 이기적인 면면을 보이면서도 레빈은 어쨌거나 이상적인 결혼 생활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간다. 레빈과 키티 커플의 결혼이 소설 속에서 가장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그들이 지금 현재 행복하기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의 행복과 평화를 향해 부단히 나아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싸우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대화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화해와 용서를 통해 더욱더 상대방을 사랑하게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결혼을 통해 레빈이 인간적으로 점점 더 성숙해 간다는 점이다. 레빈과 키티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기고 레빈은 명실상부한 가장이 된다. 그 시점에서 그는 정신적인 위기감을 경험하지만, 결국 오랜 고뇌 끝에 삶의 의미를 깨우치게 된다. 궁극적으로 『안나 카레니나』는 안나의 불륜 이야기와 평행으로 진행되는 레빈의 각성에 관한 소설이다.
---pp.150-151「제1부 나쁜 삶 / 3_ 좋은 결혼」

도축장 체험은 득도의 제1단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결정을 쉽게 해준다는 데 그 의의가 있을 뿐이다. 요컨대 그것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 채소인가, 고기인가’에 대해 독자가 선택을 하는 데 방향을 제시해 준다. 그다음 단계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어떻게 먹을 것인가’다. 여기서는 ‘단순하고 소박하게 먹는다’가 정답이다. 우리가 고기를 안 먹는다 해도 만일 값비싼 채소를 복잡하고 정교하게 조리한 고급 요리로 밥상을 차린다면 그것은 완덕을 향한 길과 거리가 멀다. 톨스토이에게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 못지않게 ‘어떻게 먹을 것인가’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무엇을 먹을 것인가’와 ‘어떻게 먹을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에 흡수된다. 즉 궁극적으로는 음식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어떻게 하면 올바르고 참되게 살 것인가---p.결국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톨스토이는 도축장을 방문했던 것이다.
---p.186「제2부 좋은 삶 / 1_ 채소만 먹자」

그러니까 톨스토이는 아주 젊은 시절부터 한편으로는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과 같이 방탕한 인간들의 집단인 도시 사교계를 혐오했다는 이야기다. 여자를 원하는 동시에 여자를 미워하고 육체의 쾌락을 좇으면서 육체를 저주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중년의 위기 이전이건 이후건, 거의 모든 톨스토이의 소설에서 발견되는 ‘도시 대(對) 농촌’의 대립은 대단히 도덕적인 개념이 된다. 모든 나쁜 것은 도시에서 일어나고 모든 좋은 것은 농촌에서 일어난다. 빈민굴, 매음굴, 카지노, 극장, 레스토랑, 술집, 사치스러운 상점---p.이런 것들은 모두 도시에만 있다. 모든 나쁜 인간들은 도시에서 살고 모든 좋은 인간들은 농촌에서 산다. 모든 좋은 결혼은 농촌에서 일어나고 모든 나쁜 결혼(불륜, 이혼 등)은 도시에서 일어난다. 이런 대립은 지루하다 싶을 만큼 반복된다. ---p.202「제2부 좋은 삶 / 2_ 시골에서 살자」

예술이란 오락이나 취미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것은 가장 선한 감정을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감염시킨다는 대단히 거룩한 사명을 띠고 있다. 그러므로 이 기준에 미흡한 예술---p.그러니까 거의 모든 예술이 여기에 해당된다!---p.은 죄다 아주 나쁜 예술이 된다. 그는 웬만한 예술은 모두 가짜 예술, 모조 예술, 허위 예술이라고 몰아붙인다. 또 나쁜 예술의 내용이나 나쁜 예술을 초래하는 여러 가지 원인 등에 관해 이 말 저 말 많이 하지만 그가 비난하는 것은 대체로 두 가지라 할 수 있다. 첫째는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이요, 둘째는 외설스러운 예술이다.
---p.241「제2부 좋은 삶 / 3_ 예술을 박멸하자」

결국 ‘톨스토이교’, 혹은 톨스토이즘의 본질은 죽음의 자각과 맞물린다. 톨스토이가 중년의 위기 이후 도덕, 도덕 하며 큰소리로 외치게 된 것은 모두 죽음 때문이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죽음 앞에서 대문호는 완전한 허무를 체험했다. 그러나 그는 그 허무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했다. 살아야 하는 이유, 그리고 살아가는 방식, 이 두 가지 모두를 그는 도덕에서 찾아냈다. 그의 도덕은 지극히 실용적인 정신과 여러 종교에 대한 학습과 죽음에 대한 공포와 육체에 대한 혐오감이 합쳐져 나온 결과물이었다.
---p.283「제2부 좋은 삶 / 4_ Memento M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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