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시는 줄 알았는데요.” 내가 둘리틀 박사님에게 말했다.
“혼자 살고 있지.” 박사님이 대답했다. “불을 켜 준 건 대브대브란다.”
나는 누가 오는지 보려고 계단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층계참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위쪽 계단에서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기이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다리 한 쪽만 사용해서 계단을 폴짝폴짝 뛰어내려오는 것 같은 소리였다.
불빛이 점점 아래로 내려오면서 주위가 환해지더니 벽에 폴짝폴짝 뛰는 이상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드디어! 대브대브, 잘했어!” 박사님이 말했다.
진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새하얀 오리 한 마리가 목을 꼿꼿이 세운 채 한 발로 폴짝폴짝 뛰며 층계참을 지나 내려오고 있었다. 오른쪽 발에 촛불을 들고서. --- p.35
“사자나 호랑이도 있나요?” 함께 걸으면서 내가 물었다.
“아니. 사자와 호랑이를 이곳에 데리고 있을 수는 없어. 그리고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난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 내 마음대로 할 수만 있다면, 스터빈스, 이 세상에 갇혀 있는 사자나 호랑이는 단 한 마리도 없을 거야. 녀석들은 갇혀 있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 절대 행복할 수 없지. 녀석들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아. 언제나 자기들이 떠나온 큰 땅을 생각하지. 호랑이와 사자의 눈을 보면 항상 자기들이 태어난 탁 트인 공간을 꿈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엄마에게 사슴 냄새를 쫓는 법을 배웠던 깊고 어두운 정글을 꿈꾸지. 그런데 이 모든 걸 내준 대신 이 동물들이 얻은 게 뭔지 아니?”
걸음을 멈추고 내게 이렇게 묻던 박사님 얼굴은 화가 나서 점점 붉어졌다.
“아프리카에서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 황혼녘 야자수를 간질이는 부드러운 바람, 얽히고설킨 덩굴의 초록빛 그림자, 커다란 별이 반짝이는 사막의 서늘한 밤, 힘든 사냥을 마친 후 듣는 장엄한 폭포 소리를 그 무엇과 맞바꿀 수 있겠니? 이것들 대신 얻은 게 도대체 뭐냔 말이야. 철창이 달린 빈 우리, 하루에 한 번 던져 주는 고깃덩어리, 입을 벌린 채 이 녀석들을 바라보는 바보 같은 사람들! 안 돼, 스터빈스. 사자와 호랑이 같은 위대한 사냥꾼들은 동물원에 있으면 절대로, 절대로 안 된단다.” --- p.73
나는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서 바로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여전히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박사님이 의자에 똑바로 앉으며 말했다.
“뭘 할 거냐면, 스터빈스. 이건 세라와 함께 살기 전에, 내가 젊을 때 하던 게임이란다. ‘눈 감고 여행하기’라고 하지. 항해를 떠나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할지 결정할 수 없을 때마다 지도책을 가지고 와서 눈을 감고 그 책을 펼쳤지. 그런 다음 여전히 눈을 감고, 연필을 흔들다가 펼쳐진 페이지를 쿡 찌르는 거야. 그리고 눈을 뜨고 보는 거지. 아주 재미난 게임이야.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어느 곳에 연필이 닿든 그곳에 가겠다고 약속해야 하거든. 해 볼래?”
“아, 좋아요!” 나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정말 멋져요! 중국이 나오면 좋겠어요. 아니면 보르네오나 바그다드.”
나는 곧 책장으로 기어 올라가 꼭대기에서 큰 지도책을 끌어내린 다음 박사님 앞 탁자에 놓았다. 나는 그 지도책을 다 외우고 있었다. 낡아서 색이 바래 버린 그 지도를 보며 수많은 낮과 밤을 보냈다! 산맥에서 바다로 흐르는 푸른 강을 따라가면서 자그마한 마을은 실제로 어떻게 생겼을까, --- p.154
“스터빈스.” 나를 보자마자 박사님이 소리쳤다. “정말 기이하구나, 믿을 수가 없어.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보고 들은 게 믿기지 않아. 나는, 나는…”
내가 물었다. “왜요, 박사님. 뭔데요? 무슨 일이에요?”
“이 피지트가…” 박사님이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 작고 둥근 물고기가 조용히 헤엄치고 있는 수조를 가리키며 속삭였다. “피지트가 영어로 말을 해! 그리고, 그리고… 휘파람으로 노래를 불러. 영어 노래를!”
“영어를 한다고요! 휘파람도요! 와, 그게 말이 돼요?” 내가 외쳤다.
“사실이야!” 흥분해서 얼굴이 하얘진 박사님이 말했다. “몇 단어밖에 안 되고 드문드문 말해서 특별한 느낌이 없긴 해. 알아들을 수 없는 물고기 말과 섞여 있어. 하지만 내 청력에 큰 문제가 없다면 이건 분명히 영어야. 그리고 휘파람 말인데, 휘파람은 아주 기본적이긴 해. 항상 똑같은 음이야. 자 네가 들어 봐라. 그리고 알아들은 걸 나에게 말하렴. 들은 걸 전부 다 말해. 한 단어도 빼놓지 말고.” --- p.223
쇠돌고래 무리가 빙산을 향해 폴짝폴짝 뛰어오르며 헤엄쳐 갔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파도가 치고 물보라가 일면서 어마어마한 고래 떼가 전속력으로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동물이었다. 그리고 족히 200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여기 데려왔어요.” 쇠돌고래들이 머리를 물 밖으로 내밀며 말했다.
박사님이 말했다. “좋아! 이제 고래 떼에게 설명을 해 주겠니? 이 섬에 사는 모든 생명에게 정말 심각한 문제란다. 그러니 고래들에게 이 섬 저 먼 끝으로 헤엄쳐 간 다음 코를 이용해서 섬을 브라질 남쪽 해변으로 밀어 달라고 말해 주렴.”
쇠돌고래들이 박사님의 부탁대로 고래 떼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 게 분명했다. 고래들이 바다를 헤치며 섬 남쪽 끝을 향해 헤엄쳐 가는 게 보였다. --- p.295
폴리네시아가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자, 봐 봐, 친구들. 존 둘리틀 박사가 동물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알지. 박사는 동물들에게 전 생애를 바쳤어. 자, 지금이 박사를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는 기회야. 들어 봐. 박사는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이 섬의 왕이 되었어. 이제 일 때문에 이 섬을 떠날 수 없다고 생각해. 원주민들이 박사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하지만 너희나 내가 잘 알다시피, 그건 말이 안 되잖아. 좋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이 달팽이가 박사와 우리를 껍데기에 싣고 영국까지 기꺼이 데려다 주겠다고 하면, 박사는 분명히 떠날 거야. 짐도 조금이야. 많지 않아. 30, 40개 정도야. 게다가 박사는 바다 밑바닥에 대한 거라면 사족을 못 쓰니까. 이게 박사가 이 섬을 떠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 거야.
이제 정말 중요한 건 박사가 고향에 돌아가서 자신의 연구를 계속해 나가는 거야. 이 세계 동물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는 거지.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를 껍데기 안에 싣고 퍼들비 강까지 데려다 달라고 성게와 불가사리를 통해서 달팽이에게 말해 달라는 거야. 알겠니?”
--- p.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