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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걸음을 멈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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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4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291쪽 | 402g | 145*215*20mm
ISBN13 9791187700142
ISBN10 118770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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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프랑스 근대사에서도 혁명은 텍스트의 정보화에 대한 봉기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1848년의 2월 혁명, 파리코뮌, 인민전선의 기쁨의 파업에는 항상 시인들의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보들레르는 거리에서 전단을 뿌리고, 랭보는 파리로 달려가며, 프레베르는 공장에서 연극을 합니다. 요컨대 텍스트의 원리주의에 맞서서 투쟁을 벌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봉기의 결과물은 보통선거와 유급휴가제도 같은 법적인 표상, 다시 말해 텍스트로 회수됩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혁명 혹은 봉기는 문학과 함께 불가피하다고도 할 수 있지요. --- p.153-154

한마디로 말해서 혁명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사카구치 안고가 말했다시피 앞으로 일어날 혁명 한 번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은 오산입니다. 역시 여기서도 ‘하나’와 ‘전부’에 대한 욕망이 문제입니다. 단 한 번의 혁명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그나저나 혁명은 가능하다는 당연한 말을 왜 새삼스레 부르짖어야 하는지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말처럼 왜 당장이라도 다른 형태의 혁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폭력혁명은 혁명의 수많은 형태 중 하나일 뿐입니다. 글 쓰고, 노래하고, 춤추고, 그리는, 본래는 틀림없이 정치적이고 예술적이기도 한 갖가지 기예의 열매(이것을 통틀어서 르장드르는 ‘텍스트’라고 합니다만) 모두가 혁명입니다. 태곳적부터 인간은 스스로를 통치해왔습니다. 그런데 중세 해석자혁명 이후로 이 텍스트의 의미가 갈수록 퇴색해서 정보와 정보를 담아 운반하는 서류와 데이터베이스만이 규범과 정치에 관련된다는 역사적?지리적으로 한정된 관념이 출현합니다. 그 관념은 식민지주의 때문에 세계로 수출되었고, 규범과 정치는 정보화하고 말았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형태로 저항할 가능성도 감소되었으니 단순한 폭력의 분출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정보와 폭력의 이항대립에 갇혀버렸습니다. 이러한 통치의 정보화 작용으로 오늘날 혁명은 폭력혁명만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통치에서 텍스트의 정치적 혁명에 힘을 발휘하는 일이 전무하다고는 할 수 없지요. 때로는 강제력 행사가 불가피한 경우도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폭력혁명이 전부라는 생각은 역사적으로도 완전히 협소한 시각입니다. 폭력이야말로 급진적이다? 새롭고 급진적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모든 것은 정보다’라는 말만큼이나 신물 나고 고리타분합니다. --- p.155-156

혁명은 역시 유럽에서 생긴 개념입니다. 가장 최초의 혁명은 12세기에 일어난 중세 해석자혁명입니다. 실은 그것도 6세기의 유스티아누스 대제가 제정한, 제정했지만 완전히 사라진 『로마법대전』으로 돌아가라는 운동이었습니다. 600년을 되감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근대가 탄생했습니다. 그러한 ‘회귀’가 말하자면 ‘옛것과의 새로운 관계’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것, 참신한 것을 창조한다는 뜻입니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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