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광기’ 또는 ‘정신질환’의 역사를 쓰고 있느냐고? 왜 이것을 정신의학의 역사라 부르지 않느냐고?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간단한 답이 있다. 그런 종류의 ‘역사’는 결코 역사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2000년 이상에 걸친 광기와 문명의 조우에 관해 이야기할 계획이다. 이 기간의 대단히 많은 시간 동안, 광기를 비롯해 광기와 관련된 말들?실성insanity, 광증lunacy, 광란frenzy, 조증mania, 우울증melancholia, 히스테리hysteria 따위?은 대중 사이에서만 쓰였거나 식자층 사이에서만 쓰인 게 아니라, 보편적으로 쓰인 일반 용어였다. 논쟁의 여지 없이, ‘광기’란 비이성Unreason을 애써 받아들이려 적용한 일상용어였을 뿐만 아니라, 광기의 침식을 자연스러운 용어로 설명하고 때때로 정신착란 환자를 치료하려던 의료인들이 받아들인 용어이기도 했다.” (16
“광기는 다른 방식으로도 의학의 범위를 넘어 연장된다. 작가와 화가, 그리고 이들의 독자와 관람자에게도 광기는 여전히 거듭되는 매혹의 원천이다. 소설, 전기, 자서전, 연극, 영화, 그림, 조각, 이 모두를 포함한 더 넓은 영역에서, 비이성은 끊임없이 상상력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강력하고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놈을 울타리 안으로 몰아 가두려 하고 어떤 단일한 본질로 환원시키려는 시도는 모두 기대에 어긋날 운명인 듯하다.” --- p.19~21
“늘 그렇듯 정신장애를 신체 장기로 설명하기를 고집하던 의사들조차도, 때로는 광기가 사회적으로 규정되며 단순한 신체 증세 이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족에게도 제국의 당국자에게도 일반적으로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정신장애의 사회적 영향이었다. 그래서 광기의 침식을 극복하려는 실제적 시도들이 생겨났고, 마침내 성문화된 한 덩어리의 법적 원칙이 출현해 관리들에게 미친 행위의 처리 방법을 조언하고 가족들에게 예방 차원에서 미친 식구를 감금하도록 지시하기 시작했다.”--- p.62~63
“미친 사람이 저지른 살인은 17세기 이전부터 점점 더 주목을 끌었던 듯하다. 그러한 살인은 의도한 일이 아니었으므로 과실치사에 비유되었다. 때로는 가해자가 처벌받았고, 거의 언제나 어떤 형태로든 감금당하는 동시에, 피해자 가족에게 배상해야 했는지는 몰라도, 사형당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18세기 중반부터는 달라지기 시작했지만). 그러던 것이 얼마 뒤에는 더 나아가 모든 정신장애자가 당국의 주의를 끌어 다양한 형태로 감금되기 시작했고, 동시에 법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미친 사람들까지 추정상의 위험인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필요한 예방책을 강구하는 데 소홀하면 식구들이 책임을 졌는데, 예방에 실패한 벌이 주기적으로 더 가혹해졌다는 것은 공식적인 명령이 무시되고 있었다는 징후다.”--- p.63
“병자와 약자를 위한 병원들이 자선단체로서 처음 설립된 것은 (서로마 제국에 이따금 생겨난 군사 병원들을 무시한다면) 비잔틴 제국에서였지만, 이 발상을 재빨리 받아들인 쪽은 이슬람 세계가 떠오르기 한참 전에 근동 안의 다른 곳에 있던 기독교도들이었다. 그러나 병원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이슬람 치하에서 8세기 말에 첫 번째 병원이 나타나면서부터였고, 이 병원들이 체계적으로 대비한 환자들 가운데는 실성 환자도 끼어 있었다. 이슬람교도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빈자에 대한 부자의 의무를 강조했으므로, 일단 이슬람교도 의사들이 얼마간 나타나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기독교도 의사들과 경쟁이 붙었다. (……) 그래서 12세기에는 이미, 이슬람 세계의 큰 도시 치고 병원 없는 도시는 하나도 없었다.”--- p.90
“일련의 상업적 극장 전체가 16세기 말 런던 안에, 주로 이 정착된 도시의 변두리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스페인 비극』이나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와 같은 복수 비극들이 그 무대 위에서 정기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머지않아 더 다양한 희곡들이 나타나면서, 무대 위의 광기는 새롭고 더 다채로운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146
“체인은 침울과 울화, 히스테리와 심기증은 결코 상상의 증세가 아니라, 현실의 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한 병의 뿌리는 체인을 포함해 마침내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의 체액을 넘어 나아가고 있던 가장 현대적인 의사들이 인체에 활기를 주는 새 원리로 보게 된 것, 바로 신경에 있었다. 더는 이 병자들을 묵인된 꾀병 환자로 일축할 수 없었다. 이들의 고충은 “천연두나 열병과 똑같은…… 몸의 부조”였다. 시시한 것이거나 상상의 산물이기는커녕 “지독하고 무서운 증상들을 가진 한통속인데, 우리 조상들은 거의 몰랐을 뿐”, 이제는 너무도 흔해서 그 시대의 “고충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p.234
“감호소는 문명의 상징이며, “기독교를 믿는 모든 문명국가 사이에서는 너무나 일반적이 되어서, 이 의무를 무시하면 반드시 가중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게 딕스의 주장이었다. 나중에 이 정서에 공명한 빅토리아 여왕의 의사 제임스 패짓(1814~99) 경은 현대의 미치광이감호소를 “세계가 보여줄 수 있는 진정한 문명의 징후 가운데 가장 축복받은 징후”라고 불렀다. 19세기 중반은 인류애와 과학의 승리를 상징하는 감호소를 자랑스러워했다. (……) 실성 환자 감금 시설의 잔혹 행위에 대한 해결책은 감호소 건축이었다. (……) 놀랄 만큼 빠르게 세를 장악한 결과로, 광인의 대감금이 시작되어 1세기가 훌쩍 넘도록 지속되다가 마침내 뻗어나가는 서양 제국주의를 통해 세계의 나머지로도 어느 정도 퍼져나갈 것이었다.”--- p.280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는 우울증이 심해져서 1960년 12월에 메이오 진료소에 입원했고, 거기서 연달아 전기경련요법을 받았다. 그리고 1961년 1월 중순에 퇴원했는데, 정신 상태가 여전히 위태로워서 결국 4월에 다시 입원했고, 한 번 더 충격요법으로 치료받았다. 그리고 6월 30일에 퇴원한 지 이틀 뒤에 자살했다. 엽총을 쏘아 자신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다음은 그가 자신의 치료에 대해 남긴 비난의 말이다.
이러한 충격이 작가에게 어떤 것인지 의사들은 몰라요. …… 자기네가 작가들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도……. 내 머리를 폐허로 만들어서 내 자산인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 그래서 내가 일을 못 하도록 하는 게 무슨 소용입니까? 그건 명석한 치유법이었지만, 우린 환자를 잃었는데.”--- p.449~450
“〈망각의 여로〉는 잉그리드 버그먼과 그레고리 펙을 결합시켰다. 버그먼은 냉담한 프로이트주의 분석가 콘스턴스 피터슨 박사를 연기했고, 펙은 앤서니 에드워즈 박사라는 신분으로 그린매너스 정신병원에 도착하지만 실은 기억상실증에 걸렸고 살인을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재향군인, 존 밸런타인이라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난다. (……) 마침내 간신히 마음의 “잠겨 있던 문을 연” 이 “현대 과학”이 밝히게 될 원리는 다음과 같다. “환자를 어지럽혀온 콤플렉스들을 드러내고 해석하기만 하면, 질환과 혼란이 사라지고…… 비이성의 마귀들이 인간의 영혼에서 쫓겨난다.””--- p.504
“더 광범위한 문화 안의 모든 곳에서 화가, 작가, 지식인이 이들의 사상을 열심히 받아들였다. 인간을 이해하는 일에 혁명을 일으킨 지적 거인이라는 프로이트 자신의 묘사가 널리 존중되었다. 정신분석의 인도적이고 지적인 면이 재능 있는 인재들을 정신의학으로 끌어들이고 있었고, 이러한 학생들을 훈련시키는 대학의 학과들도 정신분석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지배했다. 무엇이 잘못될 수 있었겠으며, 무엇이 이들의 지배를 방해할 수 있었겠는가? 그토록 견고한 뭔가가 설마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사라졌지만.”--- p.546~547
“분명 과학은 앞으로 나아가고, 의학이 예술이 아니라 과학인 한은, 의학도 전진한다. 적어도 선진 세계에 속한 우리는 이제 문화적으로 더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지는 않더라도 더 긴 삶을, 그리고 물질적으로는 확실히 더 풍부한 삶을 누린다. 다시 말해, 우리가 미치지만 않았다면. 현대 정신의학과 그 묘약들을 가졌음에도, 21세기에 중증 정신질환이 처한 더 냉정한 현실 가운데 하나는 이렇다. 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나머지 우리보다 평균적으로 훨씬 더 젊은 나이에(25년이나 더 일찍) 죽을 뿐만 아니라, 이 모집단 안에서의 중증 질환 발병률과 사망률은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점점 더 높아졌다. 어느 수준보다도 기본적인 이 수준에서, 우리는 퇴보하고 있는 것 같다.”
--- p.576~5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