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이야기_독박육아를 넘어
이 책은 나처럼 고립육아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한 엄마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힘든 현실을 불평하며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사람과 공간을 찾아 도전하는 엄마들, 관계에서 필연적인 갈등을 직면하고 넘어서며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연합’육아를 펼쳐나간 엄마들, 그들의 생생한 스토리가 펼쳐진다. 나만 유난스러운 게 아닐까 싶었기에 이 책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지금도 꽉 막힌 아파트 한 구석에서 아이와 씨름하고 있을 이 땅의 수많은 초보 엄마들에게 부디 이 책이 가닿길 바란다. 그들이 육아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같은 처지에 있는 엄마들에게 연민과 연대감을 느끼고, 세상으로 걸어 나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길, 그래서 엄마와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질 수 있기를. _들어가는 이야기 가운데
1. 아이들과 엄마, 숲에서 함께 놀다
공동육아네, 기관육아네 하면서 육아 방식에 선을 긋지 않았으면 좋겠다. 동네 어린이집에 보내면서도 이웃엄마들과 함께 오후에 서로 아이들을 돌보며 잘 지내는 사람도 많다. 맞벌이 부모들도 주말에 모여서 함께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면 된다. 어떤 틀을 고집하는 것은 육아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행복한 육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한마디로, 엄마도 밥 좀 먹는 육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꼭 숲일 필요도 없다. 숲이 좋다고 숲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마음이 맞지 않아 갈등이 계속되는 모임도 보았다. 가족의 경계를 조금 허물고, 결이 맞는 이웃과 함께하면 그것이 함께 하는 육아 아닐까? 멀리 있으면 커 보이고 가까워지면 작아진다는 말을 좋아하는데, 멀리서 볼 때 품앗이 공동육아는 어려워 보이지만 막상 해보면 그저 일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_숲동이놀이터 백찬주
2. 자출면 청양리, 엄마들의 온라인 마을
말 그대로 독박육아를 하다 보니 밥을 제때 챙겨 먹기도, 화장실 한번 편히 가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번개 모임에 가면 세상 둘도 없는 껌딱지인 아이가 나한테서 떨어졌다. 친구와 놀고, 언니 오빠들을 쫓아다니고, 이모들이 주는 밥도 잘 받아먹었다. 그제야 나는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밥도 먹을 수 있고 웃을 수도 있었다. ‘어른인 사람’과 이야기하는 즐거움이 절실했던 내게 엄마들과의 모임은 세상과 연결된다는 느낌을 주었다. 혼자가 아니구나, 나 같은 동지들이 많이 있구나, 위로가 되었다.
잠을 못 자서, 끼니를 제때 못 챙겨 먹어서, 씻지 못해서, 편히 싸지 못해서만 육아가 힘든 게 아니다. 학교 다니고 일을 하며 사회구성원으로 살던 여성이 출산과 동시에 집에 처박혀 말도 안 통하는 아이하고만 소통해야 하는 것이 지금 젊은 엄마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다. _자출가모 청양 모임 최세민
3. 도시에서도 아이들은 별처럼 빛난다
인간답게 사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전제 조건이다. 그리고 일상생활이란 인간이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하는 모든 행위라고 생각한다. 몇 해 전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돌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냈다. 동물원에 살면 먹이도 천적도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그럼에도 돌고래가 바다로 돌아가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바다에 사는 것이 돌고래답기 때문이다. 그것이 돌고래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자, 돌고래가 살아야 할 일상이기 때문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는 인간답게 살아야 하며, 또 그에 걸맞은 일상생활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놀이란 단지 놀이 방법을 논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다움이란 무엇이며, 인간다운 일상생활이란 무엇인가’란 질문과 깊이 연결된다. _산별아 마을학교 오명화
4. 공동부엌육아에서 어린이식당까지
바쁜 부모를 대신해 숙제를 봐주거나 말벗이 되어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고 밥도 먹을 수 있는 일본의 어린이식당은 지금 도쿄, 요코하마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늘어나는 추세다. 지역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사회의 엄마’ 역할을 하는 이 식당은 어린이들뿐 아니라 맞벌이 부모, 전업주부, 싱글맘, 독거노인 등 여러 사정으로 따뜻한 저녁을 제시간에 차려먹기 힘든 어른들도 함께 이용한다는 의미에서 ‘모두의 식당’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경제적 빈곤뿐 아니라 ‘관계의 빈곤’을 겪고 있다. 도움이나 지원을 요청하고 싶어도 거절당하거나 사생활을 들킬까 봐 누구에게도 힘든 사정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어린이식당은 단순하게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곳이 아니라, 한 공간에서 같은 지역의 아이와 어른이 함께 밥을 먹으며 관계를 맺어가는 의미 있는 장소다. _어린이식당 윤영희
5. 아이도 키우고 엄마의 꿈도 키우고
‘나와 내 아이’를 위해 찾은 도서관에서 이웃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작은 도서관은 동네의 크고 작은 일까지 함께 나누는 사랑방이 되었다. 몇 년을 살아도 낯설기만 하던 도시는 이웃 가족들이 사는 골목들로 이어져, 강동구 안에서는 ‘우리 아이들이 길을 잃고 헤매도 누군가는 우리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겠지’ 하는 안도감과 함께 우리 마을이 되어갔다.
아이를 특별하게 키우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아이는 한두 번의 특별한 경험보다 매일 반복되는 소소한 일상의 묵묵한 힘으로 자란다는 것을 마을에서 배웠다. 크게 주목받지 않아도 오래도록 자리를 지킨 구멍가게처럼 노래와 이야기를 지어 마을과 나누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 노래로 마을의 하루가 즐겁기를, 그 이야기로 아이들의 미래가 풍성해지기를, 그런 마을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 자라기를! _문화예술협동조합 ‘아이야’ 정가람
6. 돌봄 공유지를 만드는 마을기업, 엄마친구네
‘엄마친구네’가 시작되자, 돌봄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 연령대는 생후 2개월부터 초등 5학년까지 다양했다. 일하는 엄마들뿐만 아니라, 아이 낳고 산후우울증이 온 엄마들도 돌봄을 신청했다. 도시에서 혼자 힘들게 아이를 키우는 젊은 엄마들이 정말 많았다. 남편 직장 따라 이사 왔는데 아는 사람은 없지, 남편은 밤늦게 퇴근하지…. 이런 상황에서 육아 경험이 있는 어머니들이 아이를 돌봐주고 조언도 해주고 말벗도 되어주니까 집에만 갇혀 있던 엄마들은 장 보러 가고 운동하는 동안 믿고 아이를 맡길 데가 있어 숨통이 트인다며 좋아했다.
그간 가정에서 여성들에 의해 해결되었던 돌봄 방식은 국가나 사회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된 지 오래다. 복지 정책의 차원을 넘어 이제는 보편적 복지, 보편적 시민권 차원에서 사회적 돌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돌봄을 ‘가정 내에서 해결하는 개인적 문제’와 ‘국가나 공공이 제공하는 제도’ 중 양자택일해야 하는 것으로 보거나, 사회적 돌봄은 비용이 많이 드는 비생산적 정책이라고 보는 관점은 사람을 후순위에 두고 시장경제 논리를 우선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산적 발전의 주체는 사람이며, 그 사람의 삶에서 기본적인 안전망이 보장될 때 발전도 지속될 수 있다. _엄마친구네 권연순
7. 안심되는 실험공동체 룰루랄라 우동사
‘우리동네사람들(이하 우동사)’은 인천 검암동 곳곳에서 가족과 같은 친밀함으로 삶을 공유하고 있다. 시작은 6년 전 귀촌하고 싶은 친구 여섯 명이 집을 얻어 연습 삼아 같이 살면서부터였다. 공감대는 있었으나 현실적으로 당장 시골에 갈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기에 귀촌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매달 답사를 다니면서 준비해가던 터였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귀촌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조금씩 깨졌고, 실제로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은 ‘귀촌’보다는 사람들과 따뜻한 관계를 맺는 삶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우리는 무작정 주거지를 옮기기 전에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그런 관계들을 맺어보기로 했다.
‘안심되는 실험공동체 룰루랄라 우동사’는 나에게 정말 말 그대로의 공간이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도, 직장을 쉬어도 크게 불안하지 않다. 나를 안심시키는 것은 무엇보다 사람들 사이의 돈독한 관계다. 사람들과 깊이 어울리면서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내가 더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보니 삶이 더 재미있어졌다. _우리동네사람들 이성희
8. 아이와 함께 자라는 즐거움이 모락모락
아이를 낳고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이 ‘나는 애나 키우는 쓸모없는 사람’이었다. 주변에선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고 우울해했다. 육아 자체가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스트레스가 많은 일이긴 하지만, 아이 낳기 전의 전성기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상실감이 무엇보다도 컸다. 그런데 모락모락과 함께하는 동안 나는 ‘애나 키우는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라 나 혼자만의 행복이 아닌 아이의 행복도 만들어가야 하는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곳 모락모락에는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고 그러기 위해 더 노력하는 엄마들이 있었다. 그건 분명 내게 큰 자극이 되었다. _모락모락 이금비
9. 십대와 유아, 서로 돌보며 자라는 교육공동체
한국에서는 아이를 기관에 보내지 않으면 집 안에 갇힌 독박육아에 우울한 상태가 되거나, 유모차를 끌고 아파트 놀이터를 배회하거나, 지갑을 열어 문화센터와 키즈카페를 전전해야 하는 실정이다. 마을마다 노인들이 아무 때고 갈 수 있는 노인정이 있는 것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유아정(乳兒庭-노인정이 정자라는 의미의 한자 ‘亭’을 쓰는 반면 유아정은 정원이라는 뜻의 ‘庭’을 쓰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이름도 ‘어린이 뜨락’이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때나 갈 수 있고, 아이들 놀잇감이 교육적인 요소를 고려해 선별되어 있으며, 부모들의 성장을 돕는 강좌도 여는 공간이 한국에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_어린이 뜨락 하태욱
10. 나를 성장시킨 엄마학교, 품앗이 육아
단지 모였을 뿐이고 좀더 모여보려고 애썼을 따름인데, 집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던 엄마들은 처음 이곳에 오면 대단하고 놀랍다며 찬사를 보내곤 한다. 그동안 어둡고 외로웠던 육아의 터널을 환한 길로 바꾸고 싶다며 손을 내밀 때 우리는 참 뿌듯하다. 애만 키우던 아줌마들이, 함께 애를 키우면서 자신을 찾는 곳이 바로 이곳이구나 하며 어깨가 들썩거린다.
“저는 품앗이 육아 덕분에 산후우울증이라는 걸 몰랐던 것 같아요.”
“여기가 아니었다면, 저는 진짜 어떻게 됐을지 상상도 할 수 없어요.”
외로운 육아를 하던 엄마들은 눈을 뜨면 만날 사람이 있다는 게 그저 행복하다고 한다. 갈 수 있는 어딘가가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단다. 비싼 돈 주고 다니던 문화센터에서도 아이에게 친구를 사귀게 해주고 싶었지만 관계를 이어가기 어려웠던 것에 비하면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친구들이 생긴 것만으로도 너무 큰 행복이라고 말한다. _은평품앗이육아 안세정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