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없이 ‘욕망’을 이야기하는 이즈음, 흔히들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마음 가는 대로 살라’고 말을 합니다. 말이야 좋은 말이지요. 다만, 그 마음이란 것이 생각처럼 투명하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부모나 애인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착각하고, 세상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여기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고도 불만과 원망이 남는 이유는 그래서입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나라는 사람이 도대체 누군지 모르는 채 한 세상을 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나는 책을 읽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 욕망은 무엇인지, 왜 그런 욕망을 갖게 되었는지,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이고 모르는 것은 무엇인지 제대로 알기 위해서 책을 읽습니다. 물론 책이 그 모든 걸 가르쳐주는 것은 아니며, 책보다 더 나은 스승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는 길 위에서 배우고, 누구는 사람에게서 배우며, 또 누구는 아득한 침묵에서 배우겠지요.
내가 책을 택한 이유는 책이 유일한 스승이어서가 아니라 책이 언제나 내 옆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몰라 힘들고 막막할 때 내 손을 잡아준 것이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책에서 구한 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위로였는지도 모릅니다. 책에서 세상의 이치나 인생의 진리를 발견했다고 믿은 적도 있습니다만, 또 다른 책이 번번이 그걸 무너뜨린 걸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 ‘독서처방’을 쓰게 된 것은 다른 이들도 비슷하리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사소한 일상의 필요부터 깊은 마음의 상처까지, 책에서 해결책을 찾고 책에서 위로를 받아온 내 경험을 나누고 싶었지요. 그리고 나처럼, 분하고 서럽고 답답한데 사람은 멀고 책만 가까이 있는 외롭고 쓸쓸한 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습니다.” --- 『머리말』 중에서
“전화 한 통 없이 잠적했던 후배가 꺼칠한 얼굴로 나타난 순간, 저간의 사정이 짐작되었습니다. 동시에 ‘오기만 해봐라’ 벼르던 마음은 사라지고 걱정이 앞섰습니다. ‘괜찮아?’ ‘예…… 죄송해요.’ 금세 눈시울이 붉어진 후배는 저와 눈이 마주치자 피식 웃었습니다. ‘그렇게 걱정되면 실연당했을 때 읽을 책이나 한 권 주세요.’ 평소에도 불시에 처방용 책을 물어서 저를 놀리곤 하던 그였지만, 이날은 웃어 넘길 수만은 없는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졌습니다. 다행히 여느 때와는 달리 그 말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책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앙드레 모로아가 쓴 『사랑의 풍토』입니다……” --- 『사랑을 잃었을 때』 중에서
“설렘으로 시작한 관계가 피로만을 부르는 의무로 변하는 것은, 그 관계에 담아 키우던 미래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하품을 부를 때 우리는 상대를 탓합니다. 게으르고 무능한 당신 때문에, 젊음도 매력도 사라진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무미건조해졌다고 원망하지요. …… 설렘이 권태로 변한 것은 ‘당신’ 때문이 아니라 미래를 잃은 ‘나’ 때문이라고, 그러니 나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합니다. 결혼과 권태에 관한 소설이 미래를 잃은 사람의 허무에 관한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 『권태기에 대처하는 법』 중에서
“당장 잘못된 세상의 멱살을 잡자는 건 아닙니다. 그저 하찮은 잡일이라도 기꺼이 해서, 기우뚱해진 세상을 조금이나마 반듯하게 만들어보자는 것이지요. 그래서 기나긴 패배와 싸우는 사람들을 조금 덜 외롭게 만들자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세운 계획 하나, ‘세상은 다 그래’ 같은 말은 절대 안 하기! 작지만 꽤 당찬 포부 아닌가요?” --- 『가슴 뛰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중에서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시베리아 숲에서 숲이 되어 살았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쓸데없는 근심으로 잠을 설치지도 않았고, 앞날을 걱정하며 미리 곳간을 채우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오래 전 홧김에 죽인 호랑이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고기를 나눠주었지요. …… 그가 묻습니다. 무슨 걱정이 그리 많으냐고, 정말 걱정해야 할 것을 걱정하고 있느냐고, 네 이웃들은 다 잘 살고 있느냐……고.” --- 『이 내 가슴에 근심도 많아라』 중에서
“큰 포부가 있는 인생은 행복합니다. 하지만 때론 초라한 현실과 암암한 미래를 견뎌야 할 때도 있습니다. 불행은,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견딜 수 없다는 절망에 있습니다. 그러니 ‘겁 많은 자존심과 존대한 수치심’ 때문에 섣불리 절망을 말한 것은 아닌지, 견딜 수 없다고 소리치면서 정작 다른 이를 견딜 수 없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사표를 쓰기 전에 묵묵히 돌아볼 일입니다. 그러고서 새 출발을 결심했다면 누가 무어라든 자신의 길을 가기 바랍니다. 삶에 정답은 없으니까요.” ---『사표 쓰? 싶을 때』 중에서
“‘욕하면서 닮는다’는 말이 있듯이, 상대방을 비판하는 데 열을 올리다 보면 상대방에 매인 나머지 나를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정말 이기고 싶다면, 상대방의 말을 반박하지 말고 프레임을 재구성해서 대응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언어로 자신이 믿는 것을 말하십시오. 이 정도면 두려울 게 없지만, 그래도 반대파로만 이루어진 토론 자리에는 나가지 마십시오. 프레임을 바꿀 수 없는 자리에선 이길 수도 없으니까요. 논쟁에서 이기는 법, 참 쉽죠!” --- 『말싸움에서 이기는 법』 중에서
“책이 의무와 관조의 대상에서 벗어나 수집과 열광의 대상이 되려면 문단에도 출판계에도 이런 분방함과 기백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유명한 저자라 해도 ‘선생님, 이건 지난번 책의 재탕인데 잠시 절필하시죠’라고 말해줄 출판인, 대가의 이름값을 인정하지 않고 공정하게 평하는 정직한 평론가, 한 권의 실패를 곱씹지 않는 너그러운 독자, 걸작은 그들 속에서 나옵니다. 거기에 게고스키 같은 전천후 책장수까지 있다면 책 읽는 재미가 두 배로 늘지 않을까요?” --- 『책 읽기 싫은 날의 독서』 중에서
“사람이 사는 데는 먹이사슬만이 아니라 슬픔의 사슬도 작동합니다. 누군가 아프고 슬픈 일을 겪으면 그 눈물이 돌고 돌아 결국 내 발끝이라도 적시고 마는 게 세상 이치입니다. 그러니 모두 무사한 세상을 살려면, ‘엄정한 법질서’보다 먼저 밝은 귀와 맑은 목청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숨죽인 울음소리도 잘 듣는 밝은 귀와 남의 울음을 대신 울어주는 맑은 목청이 있다면, 모르는 이에게 해코지하는 날선 마음도 조금은 덜어지지 않을까요?” --- 『뜻밖의 봉변을 당했을 때』 중에서
“왜 사느냐는 물음이 더없이 무겁고 막막하게 느껴져 차라리 눈을 감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삶의 의미는 구하는 것이 아니라 결단하는 것. 기왕 사는 인생, 남들이 알든 모르든 온 세상을 아우를 만큼 큰 뜻을 세워도 좋을 겁니다. 그래서 세운 제 포부는, 이 땅의 악이 명을 다하는 날까지 사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오래 살겠다는 뜻이 아니냐 하신다면…… 그저, 웃지요.”
--- 『삶의 의미를 잃었을 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