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조종자를 대할 때 여러분은 상대가 이성적 추론이 가능한 어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그 사람은 정신연령이 일고여덟 살, 기껏해야 열 살일 것이다(심하게는 다섯 살짜리를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냥 엉큼하고, 심보가 못됐고, 버릇없고, 제대로 생각도 할 줄 모르는 애새끼가 내 말을 지지리 안 듣는구나,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 가진 자기중심성, 잔인함, 제멋대로인 태도, 충동과 변덕은 전부 미성숙으로 설명이 된다. 심리조종자들은 나이만 먹은 어린애, 편협하고 질투심과 소유욕이 유난한 어린애들이다. 그 어린애들이 당신 옷자락에 매달려 오로지 자기만 봐달라고, 언제 어디서나 자기만 어르고 달래달라고 떼를 쓴다. 심리조종자들은 자기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치기 어린 환상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 p. 32
심리조종자는 법, 기본적인 안전 수칙을 전혀 개의치 않고 명백하게 보이는 위험을 완강하게 부정한다. 대부분, 단순히 생각이 없다든가 위험을 보지 않으려는 태도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 예를 들어, 차도를 함께 건너면서 어린아이의 손을 잡지 않는다든가, 바비큐 그릴 옆이나 바닷가에서 어린아이들이 뛰어노는데도 제대로 지켜보지 않는 태도가 그렇다. 일곱 살짜리를 오토바이에 태운다든가 아이와 자전거를 타고 국도까지 나가는 아빠들이 더러 있다. 배우자가 이 몰지각한 행동에 반발하면 되레 아이를 너무 과보호한다고 비난하고 병적 수준 불안증 환자로 몰 것이다. 운전대를 잡은 심리조종자는 ‘뛰뛰 빵빵’ 놀이를 하는 어린애랑 똑같다. 도로 위 난폭 운전자들이 이로써 어느 정도 설명된다. 그들은 성인으로서 운전면허를 땄지만 어린애처럼 반응하고 행동한다. 상담을 하러 와서 배우자의 무모한 행동에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에게 안전벨트를 채우지 않거나, 조수석에 아이를 태우거나, 카시트를 사용해야 하는 연령인데도 무시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목숨을 내놓고 운전을 하고 뭔가 수틀리면 트럭이라도 들이받을 듯 행동한다. 내 차에 탄 사람들이 오들오들 떠는 모습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운전대만 잡으면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짜릿한 기분이 든다! 열 살 사내아이가 말했다. 자기는 아빠 차만 타면 무서워 죽겠단다. 그 애 아빠는 속도를 엄청 내는 데다 술을 마시고 운전하기 일쑤였으니까. 한 여성은 전남편이 컨버터블 승용차를 다짜고짜 무서운 속도로 몰고 나가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두었다. 그녀는 법정집행관에게 이 동영상 내용을 확인받고 캡처한 화면을 인쇄해서 증거로 제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판사가 이 남편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그에 합당한 결론을 내렸을까? 판사는 과연 통찰했을까? 그 사람은 애 아빠지만 정신연령은 다섯 살밖에 안 되고 자기가 아직도 유치원생인 줄 안다는 것을, 운동장에서 페달 자동차를 몰고 다니면서 자기보다 어린 여자애들을 위협하는 개구쟁이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동영상을 찍은 아내조차 어엿한 성인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은 좀체 못 할 것이다. --- p. 50~52
정상적인 부모 쪽은 이혼 후에야 비로소 자녀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자연스럽지 못했는지 깨닫곤 한다. 심리조종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타고난 이해심이나 호의가 있다. 그래서 배우자가 다소 상식 밖의 행동을 하더라도 어린 시절에서 온 트라우마 때문에 그러려니 헤아려주고 참아주는 편이다. 이런 사람은 집안을 시끄럽게 하지 않으려고 백번 양보하고 한없이 너그럽게 군다. 그러는 동안 자신이 좋은 부모로서 행동할 여력을 배우자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다. 물론 이 정상적인 부모도 가끔은 화내면서 세게 나가고, 심리조종자를 저지하거나 강력하게 변화를 촉구할 것이다. 하지만 반란은 오래가지 못한다. 심리조종자는 그때마다 진심으로 알아들은 척하겠지만 실상은 상대가 안 보는 데서 더욱더 못된 수작질을 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 몇 달, 몇 년이 흐르면 어느새 심리조종자는 ‘애새끼들’ 위에서 군림하고 있고, 배우자는 보복에 시달리기 바쁘다. 정상적인 부모는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허구한 날 트집 잡히고 욕을 먹는다. --- p. 63
그런데 앞에서 지적했듯이 심리조종자 부모는 일탈을 부추기는 면이 있다. 이 부모는 아이에게 욕을 가르쳐주면서 시시덕거리고, 아이의 방종을 은근히 조장하며, 아이를 이용해 모두의 부아를 치밀게 한다. 이를테면 부모라는 인간이 공공장소에서 자기 아이가 민폐를 끼치는 꼴을 보면서 박수를 치고 재미있어 하는 식이다. 나도 그런 끔찍한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어떤 아이가 사람들에게 부딪치면서 사방을 뛰어다니는데 따끔하게 한 마디 하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그 아이 부모는 그 꼴을 보고 당황하기는커녕 되레 즐거운 듯했다. (……) 이 조련 과정을 마친 아이는 심리조종자 부모를 우러르고 충성을 바치는 신하와 비슷해진다. 심리조종자 부모는 골목대장처럼 으스대고 아이에게 이래라저래라 한다. 잘난 체하고, 파격적인 행동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고, 아이를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고, 자주 창피를 준다. 아이의 순진함을 비웃고, 자기 월권에 취한다. 부모는 아이가 서툴게 행동할 때마다 “바보야!”, “네가 할 줄 아는 게 뭐니” 하는 말 따위를 퍼붓는다. 자기가 좌절감을 주체 못 하기 때문에 아이의 실수나 잘못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화풀이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원래 흥도 많고, 정도 많고, 금세 신이 난다. 심리조종자는 그걸 문제 삼는다. 신성한 것은 죄다 더럽히고, 아이의 애착을 짓밟고(아이를 자기처럼 만들어야 하니까!), 행복한 순간들을 망쳐야 한다. 요컨대, 아무것도 모르는 저 어린것의 맹한 웃음을 박살내야 한다. 아이는 자기가 긍정적인 면모를 드러낼 때마다 뼈아픈 대가가 따라온다고 배운다. 적극적인 모습, 즐거워하는 모습을 부모 앞에서 보이면 안 된다! 사랑하거나 애착을 품어서도 안 된다. 자신이 바라는 바를 표현하거나 간파당하면 어김없이 좌절당하고 말 테니. --- p. 66~67
부모 노릇을 하던 아이가, 가엾은 피해자라고만 생각했던 부모가 사실은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파렴치한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 얼마나 충격을 받는지! ‘ 정 없는 인간’이라는 개념은 자기 새끼조차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을 의미한다니, 얼마나 끔찍한가! 자신이 어린 시절 내내 부모에게 의도적으로 이용당하고 속았다 생각하면 굴욕적이다 못해 치가 떨린다. 부모가 스스로 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아서 자기가 그 모진 괴로움을 겪었을 뿐, 다른 이유는 없었다. 기막히고 불쾌한 사기가 따로 없다. 이러한 무의식적 이유들 때문에 부모 노릇 하는 아이에게 심리조종자 부모는 차라리 ‘피해자’로 영원히 남아야 한다. 그 부모를 보호하는 것이 자식의 영원한 ‘사명’이어야 하고, 심리조종자 부모에게 똑바로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은 모두 ‘가해자’라야 한다. 자기 사연을 그렇게 순화하지 않으면 더럽고 비참해서 견딜 수 없으므로.
--- p. 77~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