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 시장 가설에는 핵심적 오류가 있는데, 투자결정에 심리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효율적 시장 이론가 그리고 대다수 경제학자는 심리가 인간의 이성을 약화시키며, 경제적 의사결정이나 투자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이들은 현학적이고 추상적인 이론이라는 돼지고기에 복잡한 수학이라는 물감을 벌겋게 칠해 베이컨이라고 속여 팔았다. 물론 고의로 속인 건 아니다. 효율적 시장 가설의 전제들을 반박하는 논거는 많지만, 효율적 시장 가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진심으로 이 이론을 믿고 있다. 어떤 학문이든지 소중한 이론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신실하지만 눈 먼 연구자들은 있기 마련이다
--- p.22
시장에서 보이는 대중의 행위에 대한 심리학적 통찰은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 170년 동안 꾸준히 발전해왔다. 과학적 연구 방식의 첫 단계는 정확한 관찰이다. 화학, 의학 등의 학문뿐 아니라 심리학 역시 마찬가지다. 18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스코틀랜드의 저널리스트 찰스 매케이는 빈틈없는 관찰력을 이용해 행동재무학의 초석을 마련했다. 1841년 처음 발행된 매케이의 책 『대중의 미망과 광기』는 지금도 출간되고 있다. 매케이는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세 차례의 역사적인 버블 사건인 네덜란드 튤립 광기(1637), 영국 남해회사 버블(1720), 프랑스 미시시피 컴퍼니 버블(1720)을 비롯하여 연금술과 마녀를 화형에 처하는 사건을 통해 대중의 광기를 연구했다.
--- p.58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지적 편향에 대해 미리 경고해도 별 효과가 없다. 따라서 인지적 편향의 함정을 피하려면 스스로 집중하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림판단에 대해 먼저 숙지해야 한다. 어림판단의 속성을 이해해야 스스로의 결정을 점검하고, 중대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규칙을 마련할 수 있다. 그리고 덤으로 수익을 올릴지도 모른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어림판단의 속성을 숙지해도 실제 행동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 p.94
시장을 제대로 설명하든, 아니면 허튼소리에 지나지 않든지 효율적 시장 가설과 자본자산 가격결정모형,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은 학계뿐 아니라 월스트리트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다. 이 이론들이 나오기 전에는 펀드매니저와 뮤추얼 펀드의 평가는 S&P500이나 다우존스 수익률 대비 포트폴리오 수익률로 측정했고, 위험 조정은 전혀 없었다. 자본자산 가격결정모형 이론이 발전하면서 학계와 컨설턴트는 포트폴리오의 실적을 결정하는 공식에 위험 측정을 도입하게 되었다. 포트폴리오 수익률이 시장 수익률과 동일한데 위험이 더 크면 위험 조정 후에는 시장보다 수익률이 낮은 것으로 간주된다. 포트폴리오 수익률이 시장 수익률과 동일한데 위험이 작으면 시장보다 수익률이 높은 것으로 간주된다.
--- p.155
효율적 시장 가설과 자본자산 가격결정모형을 떠받치는 대들보 이론들은 모두 무너진 듯하다. 효율적 시장 가설이 오랫동안 권좌를 누리는 동안 시장과 경제가 막대한 타격을 입는 모습도 목격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시장을 뛰쳐나와 투자는 잊고, 장판 밑에 현금을 묻어두어야 할까? 효율적 시장 가설 때문에 수백만 명이 잘못된 투자결정으로 재앙을 맞았다. 그러나 더 좋은 방법이 있다. 흑기사도 지나갔고, 효율적 시장이라는 최악의 숲도 통과했으므로 더 나은 길이 멀리 있지 않았다. 장담컨대 시장에는 아직도 좋은 기회가 남아 있다. 식별하는 방법만 배운다면 말이다.
--- p.196
효율적 시장 가설을 지지하는 세력은 이론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모르는 것이 없고 합리적이라면 위험과 수익 간에는 체계적인 상관관계가 존재해야 한다. 상관관계가 없다면 효율적 시장 가설은 거대 초식공룡 브론토사우루스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앞서 5장에서 보았듯 일부 투자자는 동일하거나 더 낮은 변동성으로 더 많은 수익을 얻고, 일부는 동일하거나 더 높은 변동성으로 더 적은 수익을 얻는다면 이는 투자자들이 전능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의미다. 단검이 효율적 시장 가설과 자본자산 가격결정모형의 심장을 겨누고 있다.
--- p.209
몇 해 전 [월스트리트저널] 편집자인 존 도프먼은 대형 증권사를 조사해 애널리스트의 보너스를 결정하는 항목들을 정리했다. 애널리스트의 보너스는 연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도프먼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애널리스트의 보너스를 산출할 때, 포함되지 않는 항목이 무엇인지 알면 투자자는 깜짝 놀랄 것이다. 수익 예측의 정확도? 결코 직접적인 변수가 아니다. 애널리스트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주식의 실적? 역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애널리스트의 보너스를 결정하는 일곱 가지 항목 중 ‘예측 정확도’는 꼴찌를 차지한다.
--- p.297
시장에서 투자자들이 불의의 사건에 반응하는 양상 역시 예측 가능하다. 2000년대만 보아도 2000~2001년 엔론이 무너지고 2002년에는 월드컴, 2008년에는 버니 매도프가 무너지자 이 기업 주식에 투자한 수백만 달러가 사라졌다. 2010년 5월 6일 주가가 급락해 다우존스 지수가 몇 분만에 600포인트 이상 떨어지고 일일 변동폭이 1,000포인트를 넘어가자 불신은 더욱 깊어졌다. 그때까지도 증권거래위원회와 선물거래위원회는 주가 급락을 방지할 수 있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증권거래위원회와 선물거래위원회의 직무유기에 진절머리가 난 투자자들은 주식시장에서 돈을 빼서 수익률이 ‘0’에 가까운 재무부 채권을 매입했다.
--- p.316
효율적 시장 이론가들은 저PER 주식은 위험이 커서(달리 말하면 베타가 높아서) 수익이 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5장과 6장에서 효율적 시장 이론가들이 활용한 위험 측정법이 실패했음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학계에서 사실로 고착된 신념을 이기기는 어려웠다. 학계는 방법론을 비난하면서 결정타를 날렸는데, 적어도 설득력이 있다기보다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물고 늘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아인슈타인의 격언을 상기하자. “관찰이 이론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이 관찰을 결정한다.” 전함 ‘효율적 시장 가설’ 호가 전통적인 투자 관행을 무찌르며 승승장구할 때 저PER 전략의 연구 결과들은 설 땅이 없었다. 과거 실적을 분석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저PER 주의 매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실제로 내게는 그 전략이 통했고, 믿을 만한 증거가 적지 않았다. 우선 『심리학과 주식시장Psychology and the Stock market』 (1977)에서 활용한 연구들을 보완 수정했고, 그다음 『역발상 투자Contrarian Investment Strategy』(1979)에서 활용한 연구들을 보완 수정했다. 저PER 주의 매수 전략이 성공적이라는 연구 결과는 여전히 확고했다.
--- p.363
시장은 투자결정을 내릴 수 있는 안정적이고 변동성이 작은 환경에서 번성한다. 극초단타 매매자는 불안정하고 급락이나 급등하는 시장에서 활개를 친다. 지금까지 보았듯 이들은 시장의 불안을 이용해 큰돈을 벌지만, 수많은 투자자는 시장에서 쫓겨난다. 초단타 매매자들은 시장 변동성을 높이기 위해 교묘하게 공포 심리를 이용한다. 2011년 8월 플래시 크래시에서 초단타 매매자들은 막대한 수익을 올렸지만 대다수 투자자와 전문 투자자는 돈을 잃었다. 초단타 매매 업체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익을 취하는 행위는 시장 참여자 절대 다수의 이해에 반하는 형태다.
초단타 매매 업체들의 행위는 작은 눈덩이가 언덕을 굴러 내려오면서 점점 커져 눈사태를 일으키는 양상과 비슷하다. 초단타 매매자는 변동성이 높을수록 좋아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들이 변동성을 높이기 위해 반기는 상황이 또 한 가지 있는데, 바로 패닉이다.
--- p.468
시장은 투자결정을 내릴 수 있는 안정적이고 변동성이 작은 환경에서 번성한다. 극초단타 매매자는 불안정하고 급락이나 급등하는 시장에서 활개를 친다. 지금까지 보았듯 이들은 시장의 불안을 이용해 큰돈을 벌지만, 수많은 투자자는 시장에서 쫓겨난다. 초단타 매매자들은 시장 변동성을 높이기 위해 교묘하게 공포 심리를 이용한다. 2011년 8월 플래시 크래시에서 초단타 매매자들은 막대한 수익을 올렸지만 대다수 투자자와 전문 투자자는 돈을 잃었다. 초단타 매매 업체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익을 취하는 행위는 시장 참여자 절대 다수의 이해에 반하는 형태다.
초단타 매매 업체들의 행위는 작은 눈덩이가 언덕을 굴러 내려오면서 점점 커져 눈사태를 일으키는 양상과 비슷하다. 초단타 매매자는 변동성이 높을수록 좋아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들이 변동성을 높이기 위해 반기는 상황이 또 한 가지 있는데, 바로 패닉이다.
--- p.468
이제 투자자가 필요한 기간 동안 다양한 투자 수단을 보유할 때의 위험을 자금 투입 전에 더욱 현실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새로운 위험분석법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분석법을 통해 다른 투자처 대비 수익이 높거나 낮을 확률을 판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폭이 어느 정도일지도 판단할 수 있다. 장기 수익률 기록만 있다면 부동산, 보석 등 다른 투자처를 평가할 때도 이 틀을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상주의 회화 등 소장 가치가 있는 예술품과 주식의 수익률을 비교하고 싶다면 1960년대 이후 [배런스]가 매주 발표하는 소더비지수를 확인하면 된다. 이 방식을 나름대로 변형해서 활용할 수도 있다. 어쨌든 과거 투자 환경과 판이하게 다른 전후 투자 환경에서 이 방식을 통해 위험 노출 정도를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표들에서 1945년 이후 완전히 새로운 투자환경에 진입했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났다.
--- p.521
투자자 여러분은 이제 교훈을 발견했는가? 아마 많은 교훈을 얻었으리라 생각한다. 첫째, 사태의 주범인 은행들은 구제금융을 받고도 사사건건 금융 개혁에 저항했다. 금융 개혁이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능사는 아니다는 식으로 증권거래위원회 역시 이해가 상충할 때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소규모 투자회사들이 사소한 법규 하나만 어겨도 난리를 부리면서 말이다. 투자회사와 은행이 파는 복잡한 금융 상품들은 피해야 한다. 역발상 전략을 고수한다면 장기적으로 훨씬 많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증권거래위원회의 규제를 받지 않는 상품을 살 때는 종류를 막론하고 인수 금융기관의 윤리 조항은 에누리해서 들어야 한다. 은행과 투자 은행의 증권 인수업자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