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무대로 구호활동 중인 한 국제기구 활동가는 “머릿속에 세계지도가 있어야 세계인”이라고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의 아버지는 아이들 방마다 세계지도를 걸어주었다고 한다. 생활용품도 세계지도가 그려진 것이 많았는데 잠옷, 필통, 샤워커튼, 저금통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한다.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그 집에 세계지도가 한 장도 없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던 그는 나중에 여행전문가가 되었다. 어느 날 세계지도를 들여다보는데 지도 위의 땅들이 하나로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걸어서 세계 일주를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의 머릿속에 ‘서울’밖에 없다면 그 사람의 상상력도 ‘서울’에 갇혀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머릿속에 담고 있는 지도의 크기와 깊이만큼 우리의 상상력의 영토와 토양도 제한받는다고 해야겠다. --- p.34
만약 당신이 새로운 커피전문점 브랜드를 책임진 전략 담당자라면 가장 점포수가 많은 스타벅스의 입지 전략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스타벅스는 커피의 입맛을 하나의 미학적 취향으로 바꿔놓았고, 커피를 향유하는 유럽풍 고급문화를 느끼게 했고, 늘 새로운 만남이 있다는 브랜드이미지를 구축해왔다. 이런 스타벅스를 능가하는 새로운 커피전문점 브랜드를 성공시키려면 우선 그들의 매장 입지 전략에 어떤 특징이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여기에 소개하는 지도에는 스타벅스의 전략이 숨겨져 있다. 1995년 스타벅스 미국 본사는 GIS를 전면적으로 도입하여 부동산, 점포개발, 마케팅 전략 수립에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스타벅스의 출점 전략은 기존맥도날드, 세븐일레븐, 피자헛 등과 같은 프랜차이즈브랜드들이 걸었던 길과는 전혀 다른 클러스터 전략, 또는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 전략을 추구했다.--- p.57
GIS 분석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살펴보면 왜 지도와 상상력이 서로 밀접한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개인적인 측면에서 말하자면 GIS 분석가로 약 70여 개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풍력발전소를 어디에 세울 것인지 정하기 위해 바람지도를 만들었다. 정부산하기관과 약500만 건의 부동산 토지거래를 분석하여 전국 땅값 지도를 제작했다. 어느 보험사와는1000만 고객 위치를 지도에 담아 지역별로 어떤 보험에 많이 가입하는지 분석한 보험지도를 그렸다. 1만4000명의 ‘야쿠르트여사님’들이거리를 누비며 판매하는 유산균 음료는 지역마다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어느 지역에서 어떤 제품이 잘 팔리는지를 분석한 야쿠르트 지도도 만들었다. 신용카드 회사의 의뢰를 받아 수백만 개의 카드 가맹점에 언제 누가 무엇에 카드를 사용했는지를 분석했다. 왜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카드 연체율이 10퍼센트 이상 차이가 나는지 파악해야 했다. 전국에서 카드 사용량이 가장 많은 365개 대표 상권을 지도에 입력해서 해당 상권은 젊은층이 오는지 직장인들이 중심인지 주중과 주말 중 언제가 더 붐비는지 분석하였다. (중략)
지도 분석가는 항상 부족한 지리정보와 부정확한 데이터 그리고 자신의 제한된 상상력과 싸우는 직업이다. 부족한 데이터와 지리 정보는 보충을 할 수도 있고 대체 정보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상상력은 그렇지 않다. 세탁소 주인과 새로운 가게자리를 분석하는 동안은 그 직업으로 하루도 살아보지 못한 무경험과 지식의 분명한 한계 속에서 최선의 대안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세탁소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은 세탁소 경영자와 세탁소 고객과 경쟁 세탁소의 상황과 이해관계를 종합적으로 상상하며 최상의 입지를 뽑아내야 한다. 그래서 세계적인 GIS 전문기업 ESRI의 창업자 겸 회장인 잭 덴저몬드의 말은 울림이 길다.
“컴퓨터 지도(GIS)의 응용은 오직 이를 사용하는 사람의 상상력에 따라 한계가 좌우된다.”
머릿속에 그려진 지도의 크기와 깊이에 따라 상상력의 공간도 넓어지고 깊어진다는 것이다.--- pp. 76~80
인류가 시대마다 지도에 담아낸 상상력의 주제는 다르다. 인류의 상상력은 발 딛고 서 있는 땅에서 수직으로 상승하여 우주에 도달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비좁은 지리를 수평으로 벗어나 세계로 넓어졌다. 지도의 공간적 크기에도 변화는 예외가 없다. 빛의 속도로 수억 년을 내달려야 하는 광막한 우주공간부터 미세혈관 속으로 움직이는 엔진은 나노의 세계를 대표한다. 수렵과 채집의 시대에는 동식물과 땅에 대한 정보를, 철의시대에는 광물을, 대항해시대에는 항로를, 정보시대에는 정보의 고속도로를 지도에 담았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석탄의 매장지도가 중요했고 석유산업이 번창하자 원유 매장량을 예측하는 지도가 시대를 풍미했다. 환경문제가 세계적 이슈로 등장하자 대안 에너지인 태양과 바람의 지도가 다시 그려졌다.
인류의 상상력이 걸어온 탐험의 발자취는 고스란히 지도가 되었다. 탐험이란 세상을 변화시키는 특별한 여행이다. 탐험은 또 다른 탐험의 어머니다. 탐험은 새로운 지식과 더불어 용기와 호기심을 부록으로 안겨준다. 그리고 호기심과 탐험의 근원에는 상상력이 있다. 상상력은 정지를 거부한다. 상상력은 이동한다. 그래서 상상력은 정착민이 울타리를 벗어나도록 유혹하고 유목민이 되어 탐험의 배낭을 메도록 만든다. 상상력은 입자이자 파동이다. 그리고 상상력은 빛보다 더 빠르게 이동한다.--- pp.89~90
상상력과 호기심이 세계지도를 만들어온 원동력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그렇게 시작된 질문이 끊임없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하고 인류를 이끌고 주장과 가설이 세워지며 결국 검증으로 과학의 틀을 갖추기도 한다. 근대 이전의 세계지도는 모두 상상의 지도다. 관측된 정보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상상력의 표현이 중심이었다.
탐험하거나 측량되지 않은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이미 아는 것들을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미지의 것들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빛난다. 지구를 네모, 세모, 원통으로 상상했던 인류의 오랜 역사는 현대에 와서 일단락되었다. 지구를 다양하게 상상한 사례들은 상상력이 확실성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인정하며 발전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 인류 역사에서 지구라는 미지의 세계를 재구성해보려는 노력과 미지의 것을 밝혀내려는 시도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상상력은 인간능력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한계 속에서 가능성을 낳는 부단한 과정으로 해석된다.--- pp.95~96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한 여성 비행기 조종사 베릴 마크햄은 “만약에 세상의 모든 지도가 파괴되고 사라진다면 인류는 앞을 볼 수 없는 암흑기를 맞을 것이다. 모든 도시는 다른 도시에 낯선 이웃이 되고, 이정표는 아무 의미 없는 표지로 전락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도는 기술 개발과 더불어 나날이 새롭게 발전하고 있다. 길안내라는 단순 기능을 뛰어넘어 인류의 생활방식을 혁명적으로 개조시킬 지도가 속속 우리 곁에 나타나고 있다.--- p.188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자신의 저서《위대한 사람들의 쓰임》에서 “진정한 지도자는 초감각적인 땅을 감지할 수 있는 지리학자처럼 우리를 새로운 지평으로 안내하는 지도를 그린다. 그들은 낡은 것에 대한 우리의 집착을 멈추게 하고 동시에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의 과정을 연출한다”고 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상상력이 뛰어난 누군가의 출현은 세상을 더 윤택하게 만든다. 생명공간·물리공간·인지공간 그 어느 곳 하나도 소홀히 여기지 않은 인류는 상상력의 결실을 지도에 쏟고 있고, 그 지도는 또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켜 더 나은 지도를 만들고 있다.--- p.208
한국야쿠르트는 GIS를 도입했다. 전국에 흩어져 있던 종이지도상의 판매권역을 모두 디지털 지도로 옮기고 각각 판매권역에 판매원 정보와 상품 및 매출정보를 연동하였다. 종이지도가 새로운 GIS 지도로 전환된 것이다. 영등포 권역에는 모두 230개의 판매권역이 4429만 7521제곱미터에 펼쳐져 있다. 전체 면적 중에서 가장 많은 매출이 발생하는 지역은 약15퍼센트인데 이 지역 전체 매출의40.3퍼센트를 차지한다. 핵심판매 지역의 평당 매출은 전체평균의2.7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쿠르트 입장에서는 영등포와 구로지역의 모든 땅이 동일하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역에 따라 그 가치가 차별적이다. 예를 들어, 다른 곳과 비교해 금융기업과 업무시설이 집중된 여의도 지역, 소형 상가업소가 밀집한 영등포시장, 대형종합병원, IT 벤처기업들이 밀집한 구로와 가산디지털밸리에서 최고의 판매고가 확인되었는데, 이곳이 집중관리 대상이 된다는 것이었다.--- pp.220~221
지도의 매력 중 하나는 외부의 눈으로 내부를 들여다보는 시각(Outside-InPerspective)에 있다. 외부에서 내부로 가져온 정보(Outside-In Intelligence)는 새로운 가치로 전환되어 미래를 창조하는 기반이 된다. 지도는 공간과 장소에 관한 정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지도는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어 가장 보편적인 의사소통 수단 가운데 하나다. 지도는 인간이 이해하고 있는 지리와 공간에 관한 시각적 해석이다. 지도의 표현대상은 소립자인 원자와 전자에서부터 생물체의 세포와DNA를 거쳐 광활한 우주의 성체까지 다양하다. 지도란 공간에 관한 그림으로 특정 공간에 관한 특정 정보를 표현한다. 지도는 공간적 물체, 지역, 주제들 간의 관계를 부각시킨 시각적 표현으로 지구의 지리적 사물뿐만 아니라 사람의 두뇌, DNA, 우주에 관한 것도 포함한다. 변화의 시대, 지도를 활용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 p.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