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페달을 밟은 발에서 힘을 빼거나 브레이크를 잡으면 됩니다. 그런데 만일 그 사람이 자전거를 멈추고 싶어 하면서, 오히려 더 세게 페달을 밟는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러면 자전거 속도가 느려지거나 멈출까요? 아니, 그 반대지요. 자전거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달리게 될 겁니다. ‘이제는 자전거를 좀 세워야겠는데!’ 생각하며 아무리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란다 해도 ‘페달 밟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자전거는 정지하기는커녕 앞으로 계속 내닫게 마련입니다.
욕을 하는 것은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과 같고, 화가 치미는 것은 자전거가 더욱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제아무리 실컷 욕을 해도 화는 가라앉지 않습니다. 욕의 존재 이유(?)는 자기가 이만큼 화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욕은 상대방을 공격하는 하나의 방법이므로 욕을 하면 할수록 더욱 화가 치밉니다. 공기를 불어 넣으면 불이 더욱 거세게 타오르듯 분노에 욕을 더 하면 분노는 더욱 커지고 끓어오르게 마련입니다.
분노를 멈추고 싶다면 분노를 쏟아내지 말고 자전거 페달에서 발을 떼듯 화내는 일을 멈추려고 노력해보세요. 화내는 말을 멈추도록 노력해보세요. 처음엔 쉽지 않겠지만, 끊임없이 연습하고 훈련하면 거짓말처럼 차츰 분노가 다스려지기 시작합니다. 돌멩이를 던진 연못에 처음엔 거세게 물결이 일다가, 한참 기다리면 잔물결로 바뀌고 시나브로 잔잔해지듯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 p.21~22
‘마음속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순하고 착한 말의 씨앗을 심으면 그것이 사람을 이롭게 합니다. 반대로, 독하고 악한 말
의 씨앗을 심으면 그것이 사람을 해롭게 합니다. 마음속에 품은 말에 독이 들어 있으면 그 말이 자신을 품은 사람을 상하게 합니다. 반대로, 마음속에 품은 말에 꿀과 향기가 들어 있으면 그 말이 자신을 품은 사람을 이롭게 하고 향내 나게 합니다.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상대방만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도 같이 듣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듣는 사람은 그 말을 한 번 듣지만 말하는 사람은 말하기 전과 말할 때 두 번 듣습니다. 입 밖으로 나오지 않고 마음속에 머무는 말도 뇌로 듣고 해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은 말한 사람과 듣는 사람의 두뇌에 동시에 입력되어 무슨 의미인지 낱낱이 해석됩니다. 그리고 그 의미에 따라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각자 감정적인 반응을 겪게 됩니다. 반면 마음속에 품은 말, 즉 자신에게 하는 말은 그 말의 주체, 즉 화자만 들을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하는 말과 자기 자신을 향해 하는 말 사이에 본질에서 큰 차이는 없습니다. 상대방에게 하는 말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모두 상하게 하거나 이롭게 하지만, 자기 자신을 향해 하는 말은 ‘말하는’ 사람만 상하게 한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입 밖으로 내뱉든 내뱉지 않든 똑같은 내용의 말이 두뇌에서 분석되고 가슴에 새겨지기 때문입니다.
--- p.25~26
마지막으로 ‘표현 방식’이 남아 있습니다. 모든 표현은 긍정 형태로 표현할 때 더 잘 먹힙니다. 월간지 《좋은 생각》에 실린 일화입니다. 한 세차장에 “주의에 따르지 않은 파손은 책임지지 않습니다”라는 경고문이 적혀 있었지만, 사이드미러를 접지 않아 파손되는 차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한데, 이 경고문을 “고객의 소중한 차를 지켜드리고 싶습니다. 안내에 따라주세요”라고 바꾸자, 놀랍게도 파손이 반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화내지 마세요”라는 안내문보다는 “웃는 모습이 더 좋아요”라는 안내문이 가슴에 더 와닿지 않나요?
긍정의 말에 반응하게 되는 우리 마음은 조건화의 토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복잡한 심리학 이론과 실험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고래조차 춤추게 한다는 칭찬의 힘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긍정으로 하는 이야기들이 더 잘 들리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당신이 상대방에게 칭찬을 듣고 싶다면 그 이야기를 당신의 옆에 있는 사람에게 들려주세요. 행복해진 그 사람은 당신이 당신의 삶을 통해 꿈꾸고 이루고자 하는 것을 향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손길이 될 것입니다.
--- p.109~110
‘잘 듣는다’라는 것을 한자로는 경청(傾聽)이라고 합니다. ‘기울 경’에 ‘들을 청’ 자를 씁니다. 경사로(傾斜路) 할 때 쓰는 ‘경’ 자이니, 기울인 채로 듣는다고 풀이하면 될 것입니다. 기울인다면 무엇을 기울여야 할까요? 물론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귀를 기울이는 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우리 몸에서 소리를 모으는 첫 단계인 귓바퀴는 신체 구조 가운데에서도 독특하게, 앞을 향해 우묵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앞으로 약간 기울어진 귓바퀴를 보면, 우리 몸은 이미 소리를 잘 들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듣기 위해서는 귀만 기울여서는 부족합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으면 자연스럽게 몸이 상대방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면 자동으로 열성적인 자세를 갖추게 됩니다. 샘 혼과 같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는 일부러 열성적인 자세를 갖추고 듣는 연습을 해보라고 권합니다.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눈을 빛내며, 듣는 내용을 열심히 받아 적으려고 노력하면서 말이지요. 지루하고 재미없는 강의를 듣는다 상상하고 의자에 뒤로 늘어진 채 연신 하품을 해대면서 듣는 경우와는 차원이 달라집니다.
우리 마음은 의외로 몸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아서, 열성적인 자세를 취하기만 해도 상대방의 말에 조금 더 관심이 가게 됩니다. 만일 대화하는 그 장면이 조금은 불편한 자리라면, 몸을 기울여 열심히 듣는 자세는 마음이 안정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줍니다. 상대방을 향해 몸을 기울인 자세는 그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당신 관심의 초점을 당신 자신이 아닌 상대방에 맞추도록 돕습니다. 준비가 잘되지 않았다든가 긴장했다든가 하는 당신의 부족함이 아닌,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에 집중하는 동안 당신이 느끼는 불안감과 산만함은 조금씩 줄어들게 됩니다.
--- p.324~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