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나?
- 아뇨.
- 나는 자네들이 점점 커진다는 말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해. 내 생각엔 그저 그렇게 보일 뿐이야.
- 어쩌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셨죠?
- 난 자네들도 다 큰 상태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해. 자네가 나한테 해 준 말이 맞다면 말이야……. 그러니까 내 생각은 이렇다네. 자네들은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 매일 몇 가지씩 빼앗기는 거란 말일세. 21~22p
- 이 상자들 안에 뭘 보관하는 거죠?
내가 물었다.
- 내 꿈들이야. --- p.33
- 그런데 자넨 어젯밤에 무슨 꿈을 꿨지?
- 음, 그게 그러니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저는 그냥 앉아 있었어요……. 보트에 앉아 잔잔한 검은 호수 위에서 노를 젓고 있었죠. 하지만 어디에도 닿지 않더라고요. 노를 젓는 동안 내내 앞에 있던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어요. 노 젓는 배에 창문이라니, 좀 우습긴 하죠? 하지만 저는 전혀 우습지 않았어요. 반대로 내내 너무 슬퍼서 노를 아주 느릿느릿 저을 수밖에 없었단 말이에요. 창밖으로 거무스름한 호수가 보였는데, 그곳에서도 역시 나 자신이 보트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면서 노를 젓는 나를 보고 있었어요. 그런 모습이 계속 이어졌죠. --- pp.34~35
- 내가 보기에 자네는 조종사가 된 꿈을 꾼 게 아니야. 실제로 조종사인 거지.
- 실제로, 제가 조종사라구요……?
나는 그 말을 되풀이했다.
- 이렇게 생각해 봐. 자넨 실제로 날지 못하는 조종사고, 또 다른 날에는 노를 젓는 슬픈 남자야. 또 어떤 날에는……. 아, 아무려면 어떠나. 인생은 뭐 그런 거야. 인생은 사람들이 잠드는 저녁에 시작되고 사람들은 아침에 깨어나서 잠깐 쉬는 거지. 잠드는 것을 깨어나는 것이라고 하고 깨어나는 것을 잠드는 것이라고 불러야 마땅해. 46p
- 이보게, 그런데 자넨 나를 바깥으로 데리고 나간 적이 한 번도 없어! 안 그런가?
- 아니, 대체 임금님을 모시고 어디를 간단 말입니까?
- 그거야 나도 모르지! 자네가 나를 데리고 어딜 가 본 적이 없는데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하겠나. 바깥세상이 멋진지 안 그런지, 정말로 내가 바깥에 나가고 싶어 하는 건지 아닌지, 내가 정녕 그걸 어찌 알겠는가 말일세! 그런데 자넨 아침을 먹고 날마다 대체 어디를 그렇게 부지런히 가는 건가? --- p.54
- 와우, 정말 놀랍군요!
나는 몇 분 동안 용이 서 있던 곳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말했다.
- 용이 대체 저기서 뭘 하는 건가요?
- 뭘 하긴, 출근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거야!
임금님은 그렇게 말하곤 또 이어서 말했다.
- 용은 사람들이 회사에 가는 것을 원치 않아. 그래서 출근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걸세. --- p.76
- 이보게, 별을 보고 있으면 자넨 어떤 기분이 드는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임금님이 문득 내게 물었다.
- 저 자신이 작고 하찮은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들지요.
(중략)
- 그럼, 나는 어떤지 아나? 난 엄청난 거인처럼 커지는 느낌이 들어. 내 몸이 늘어나 저 우주까지 뻗는 거지. 하지만 한순간 부풀었다 언젠가는 팡 터지고 마는 풍선과는 차원이 다르지. 어떤 껍질이 팽창하거나 팽팽해지는 것처럼 겉만 늘어나는 게 아니라 그저 몸통 그대로, 저절로 커지고 늘어나는 바로 그런 느낌이지. 마치 확 퍼져서 흩어지는 기체가 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결국 나는 만물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우주 자체이고, 별들은 내 안에 있어. 자네, 그게 어떤 느낌인지 상상할 수 있겠나? --- pp.84~85
- 자넨 정말 운이 좋은 걸세. 어쨌든 내가 아직 자네 새끼손가락만큼은 되니까 나를 볼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더 작아져 자네 눈에 보이지 않게 되겠지. 만일 그때까지 우리 둘이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 같은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았을 거야. --- p.89
언젠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임금님 ‘12월 2세’가 말했다.
- 왜 자네는 벽 뒤에 뭐가 있을지 상상하는 대신에 벽뒤를 엿보려고 하지? 왜 눈을 감고 세상의 모습을 스스로 생각해 내려고 하지 않는 건가? 어렸을 때는 심지어 눈을 뜨고도 상상할 수 있었잖은가. 그 사실을 잊어버렸나? 어째서 잊은 거지? --- pp.111~113
- 이것 봐, 그림 주인의 방들이 마치 자네의 머릿속 같다고 생각하면 좋을 거야. 사람은 평생 세상을 바라보고, 그의 머릿속에는 수백만 개의 그림들이 모이지. 그림들 중 어떤 것은 거의 매일 다시 쳐다보지만, 어떤 것들은 그 사람의 머릿속 아주 외딴 방에 걸려 있어서 한참 찾거나 우연히 그 방에 들어갔을 때만 다시 보게 돼. 그렇지만 설령 그가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림들은 거기 있어. 언제나 그의 머릿속에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