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일럽: 볼만의 『나비 이야기Butterfly Stories』에 프놈펜의 한 식당 주인이 나오는데, 그는 크메르 루주 학살의 생존자이며, 아내와 자녀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만약 감정을 드러내 보이면, 그 역시 살해당할 테니까요. 볼만은 고통에 관해서 한 두 문장을 쓰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 버려요. 전 볼만이 이 문제를 더 천착했으면 했어요.
데이비드: 볼만이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게 난 마음에 들어. 빈 칸은 우리가 채워야 하는 거야. 그도 그걸 알고 있었어. 바로 그 지점으로 예술이 들어오는 거지.
p54
예술의 본질에 대하여 논쟁하다
데이비드: (... ) 자네는 “모두 털어놔요. 난 사람들의 삶에 대해 듣고 싶어요.”라는 입장을 취하려고 하지. 좋아. 그러나 때때로 내 반응은 이런 거야. “됐어. 됐다고. 뭔가 새로운 것을 말해줘.” 자네가 지어내고 있는 TV 연속극 같이 끝도 없이 계속되는 이야기, 이 녀석은 저 여자랑 하고 저 여자는 다른 녀석이랑 하는 이야기에 누가 신경이나 써? 사람들은 누군지도 모른다고. 자네야 알겠지. 그 사람들은 자네 삶의 일부지. 나는 지루하기만 해. 자네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야 해. 요점이 뭐야?
케일럽: 지극히 정당한 반응이에요. 선생님은 추상적인 질문들을 붙 들고 그 주위를 계속 맴돌고 계시죠. 인식론적, 존재론적 질 문을 하고 싶은 거죠. 진실은 무엇인가? 지식이란 무엇인가? 기억은 무엇인가? 자아는 무엇인가? 타자는 무엇인가? 죽음은 무엇인가? 거트루드 슈타인의 말을 빌리자면, “답이 없다는 게… 답이다.” 저는 구체적인 답이 있는 질문을 하고 싶어요. 우리는 왜 죽이는가? 왜 고통을 가하는가? 왜 고통 을 받는가? 어떻게 고통을 멈추게 할 수 있는가?
데이비드: 그 질문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법은 자네가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어.
p57-58
예술과 예술 아닌 것에 대하여 논쟁하다
케일럽: 모순을 지향하는 예술가, 문제도 많고 고뇌를 겪고 있으면 서도 고통을 추구하는 예술가에게는 마음을 끄는 뭔가가 있어요. 신비감과 정당성, 심지어 진실성까지 느껴져요. 동 의하지 않으시겠지만, 선생님의 글에서 제가 발견한 한가지 사실은 실제보다 더 많은 고통을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예요.
데이비드: 그렇다면 잘 못 읽었고, 내 삶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 는 거야.
케일럽: 진정하세요. 비난하려는 게 아니에요.
데이비드: 내 작품이 모순을 지향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케일럽: 물론 아니죠. 하지만…
데이비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글의 소재가 될 수 있는 수많 은 문제와 고통을 갖고 있다고 생각지 않아? 고통을 찾아내 려는 게 아니야. 고통은…
케일럽: 그렇죠. 모르긴 몰라도 선생님은 평범한 삶에 관심이 있고, 저는 극단적인 삶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데이비드: 내 말은, 우리 모두는 죽을 거라는 거야.
케일럽: 모두 다르게 죽겠죠. 선생님은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에 관심이 있고, 저는 “살인”에 관심이 있는 거죠.
데이비드: 우리 모두는 인간으로서 고통 받고 있어.
케일럽: “고통은 삶의 필연, 고난은 선택”
데이비드: 내 척추 치료사의 말을 인용한 것 같군.
케일럽: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에 나온 문구죠. 다음은 부코스키의 글이에요. “고통과 고난에 대한 이 모든 글쓰기는 헛소 리다.” 우리가 겪는 고통은 대개 자초한 거죠. 외부의 힘 때 문에 유발된 트라우마의 희생자들도 있겠지만, 선생님이나 저, 그리고 학생들, 동료들 저마다 고통은 다른 거죠. 카불 에 사는 과부가 겪는 고통은 데이비드 실즈의 고통과는 달 라요. 문학이 삶을 구했다고 하셨죠? 정말 그랬나요? 삶이 위험에 처한 적이 있었던가요? 선생님은 정치적으로나 사회 적으로 억압당하신 적은 없잖아요.
데이비드: 고통의 원인에 대한 자네의 시각은 놀라울 정도로 진부한 마오주의식 견해야. 카불 여인의 고통만이 중요하다면, 『햄 릿』은 왜 읽지? 예이츠의 다음 시구를 정말 좋아하는데, “전 쟁터에서 죽은 사람들에게 왜 명예 훈장을 주는가? 인간은 자신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데 그만큼의 무모한 용기를 보여줄 수도 있다.”
p146-147
예술의 고통, 그 무게에 대하여 논쟁하다
케일럽: 오늘날 많은 예술가들은 경험이 결여되어 있어요. 감옥이 아니라 은신처에 숨어 있기 때문이죠. 데이비드 마크슨은 뉴욕의 아파트에 틀어박혀 있고, 타오 린과 블레이크 버틀 러는 컴퓨터에 코를 박고 있고, 데이비드 실즈는 학계에 은 둔하고 있죠. 체홉의 『박쥐』 아세요?
데이비드 실즈가 고개를 젓는다.
케일럽: 두 남자가 종신형과 사형 중에 무엇이 더 견디기 어려운가 를 두고 논쟁을 해요. 은행가는 종신형이 천천히 죽어가는 가혹한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젊은 변호사는 감옥도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니며, 사형이 더 나쁘다고 생각하죠. 은 행가가 변호사에게 반박하면서, 변호사가 15년 동안 스스 로 감금해서 생존할 수 있는지 내기를 하게 되죠. 단, 변호 사는 피아노, 책, 와인 등을 가져갈 수 있다는 조건을 걸었 어요. 변호사는 15년 동안 독방에서 생존했지만, 은행가는 더 이상 부자가 아니어서 돈을 낼 수가 없었죠. 그러나 변호사는 문학을 통해 삶의 향기를 맛볼 수 있었어요. 그는 돈을 원하지 않는다는 메모를 써서 보내고는 사라져 지상을 헤매며 떠돌아 다니게 되죠. 은행가는 그 메모를 금고에 넣고는 잠가버려요.
데이비드: 자네가 이야기를 잘 못 했거나, 아니면 체홉은 역시 나에겐 별로거나. 난 잘 모르겠어.
케일럽: 요점은 예술의 프리즘을 통해 경험된 삶이 실제 삶의 경험을 압도한다는 게 아닐까요?
데이비드: 나도 그 말에 한 표 던지지.
(....)
데이비드: 내가 한 마디 하지. 예술과 인생은 하나의 연속체라고 생각해. 우린 결국 자네는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 나는 수녀원에 갇혀 있는 사람으로 그리게 되었지. 하지만 이런 말까지 하는 건 정말 슬프지만, 난 충만한 삶을 살았다구. 결혼도 하고, 아이도 기르고, 여행도 하고, 가르치고, 말도 더듬지.
p283-284
예술과 인생의 관계에 대하여 논쟁하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