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씩씩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눈물도 많고 겁도 참 많아요. 어릴 때 누군가가 싸우자고 덤비기라도 하면 울어 버렸어요.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되었지만 가만 보면 아직도 아이예요.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밤에 늦게 자고, 세수하기 싫어하고, 맛있는 것만 먹으려 하고, 하고 싶은 일만 하려고 하거든요. 자기도 잘못하면서 남이 잘못한 건 오래도록 잊지도 않지요. 이제는 정말 어른스러워져야지 안 되겠어요.
그림 : 권정선
1972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에서 한국화를 공부하였어요.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면서 일러스트레이터 활동을 하고 있지요. 그 동안 그린 책으로 『놀이터와 바보』『금을 파는 도깨비』『고구마』『점자로 세상을 열다 - 한글 점자 만든 박두성 이야기』『노래하며 우는 새』 들이 있어요.
191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났으며, 1932년 경성 의학전문학교(지금의 서울대 의과대학)를 졸업한 뒤 평양 의과대학 외과교수, 평양 도립병원장,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를 지냈다. 그는 의사가 된 동기를 ‘의사를 한 번도 못 보고 죽어 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뒷산 바윗돌처럼 늘 서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1950년 12월 한국전쟁으로 아내 김봉숙과 다섯 남매를 북한에 남겨 두고 둘째아들 가용만을 데리고 남쪽으로 피난 와 이듬해부터 부산 영도구에 천막을 치고 복음병원을 세워 행려병자를 치료하였다. 1968년에는 채규철과 함께 한국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인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설립 운영하였으며, 간질 환자 치료모임인 ‘장미회’를 설립하여 그 치료에도 정성을 쏟았다.
이 밖에도 부산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서울대학교 들에서 강의하였으며, 1959년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간 대량 절제수술에 성공하였다. 1976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으며, 1979년 막사이사이상(사회봉사 부문)을 받았다. 1991년에는 북한에 가족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의 편지와 가족 사진을 받은 뒤,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렸으나 지병인 당뇨병으로 운명하였다. 1975년 복음병원에서 정년퇴임한 뒤에도 집 한 채가 없어,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이 병원 옥상에 마련해 준 20여 평 관사가 전부일 정도로 평생을 무소유로 일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