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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치유하는 의사
빅터 플랭클의

영혼을 치유하는 의사

: 로고테라피로 치료하는 영혼과 심리

빅터 플랭클의 책들 특별 보급판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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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1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409쪽 | 530g | 145*205*30mm
ISBN13 9788936811136
ISBN10 893681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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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가진 실존적 중요성은 직업 활동이 중단될 때, 즉 실직했을 때 가장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우리는 실직자들에 대한 심리학적 관찰을 통해 실업신경증unemployment neurosis이라는 개념을 정립하기에 이르렀다. 실업신경증의 주된 증상은 우울함이 아니라 냉담이다. 실직자들은 점점 무관심해지며, 점점 의욕을 잃어버린다. 그들의 냉담은 꽤 위험하다. 그들을 도와주고자 그들을 향해 내미는 손길을 붙잡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실업자들은 할 일이 없어 비어 있는 시간을 내면의 공허, 의식의 공허로 경험한다. 일이 없다는 이유로 자기 자신을 무용지물로 느낀다. 실업 상태이므로 삶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생물학에서 지방성 근위축fatty atrophy이라 불리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심리학에도 있다. 그러다 보니 실업으로 말미암아 신경증이 생기기 쉬운 상태가 된다. 영적 공회전은 영속적인 일요신경증Sunday neurosis 상태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실업신경증의 주된 증상인 냉담은 정신적 공허의 표현일 뿐 아니라, 모든 신경증 증상이 그러하듯 신체적 상태로 말미암은 것이기도 하다. 즉 대부분 실업과 함께 나타나는 영양실조의 결과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때로 이런 실업신경증 증상은 -일반적인 신경증 증상처럼- 목적을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특히 기존에 이미 신경증이 있었고, 실업으로 인해 추가적으로 신경증이 악화되거나 재발하는 경우, 실업 상황은 신경증의 재료이자 내용이 되며, ‘신경증적으로 처리’된다. 이런 경우 실업 상태는 신경증 환자에게 직업에서뿐 아니라 인생의 모든 잘못에 대한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반가운 수단이 된다. 실업 상태는 희생양이 되어, 엉망이 된 삶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쓴다. 자신의 잘못은 실업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결과로 치부된다. “그래, 내가 일을 계속했더라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거야. 모든 것이 더 좋고 멋졌을 거야.” 실업신경증 환자는 자신에게 일이 있었더라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했을 거라고 주장한다. 실업자로 산다는 것은 그들이 과도기적인 삶을 사는 것을 허락해 주고, 임시적 실존에 이르게 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아무것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그들 스스로도 자신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실업 상태라는 운명이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과 자신에 대한 책임, 삶에 대한 책임을 모두 면하게 해 주는 것으로 본다. 삶의 모든 영역의 모든 실패가 실업이라는 운명 탓으로 돌려진다. 삶에서 단 한 가지가 문제라고 믿는 것은 좋아 보인다. 모든 것을 한 가지 면에서 설명하고, 게다가 이런 면이 운명적으로 주어져 있으면 당사자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듯이 보이고, 이런 면에서 모든 것이 회복될 가상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이점이 있다.

따라서 실업신경증 역시 다른 모든 신경증과 그 결과, 표현, 수단이 똑같다. 이제 결정적인 관점에서 실업신경증이 다른 신경증과 마찬가지로 실존의 방식이자, 정신적 입장이자, 실존적인 결정이라는 것이 판명될 차례다. 즉 실업신경증은 신경증 환자가 치부하는 것과는 달리 무조건적인 운명이 아니다. 실직자라고 하여 결코 실업신경증에 걸릴 필요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오히려 다르게 할 수도 있다. 사회적 운명의 힘에 정신적으로 굴복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업이 성격을 그렇게 운명적으로 확 바꾸지는 않는다는 걸 증명해 주는 예들도 많다. 실업자 중에는 지금 말한 실업신경증을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이런 사람들 역시 실업신경증을 보이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서 살아가야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상황과 무관하게 냉담하거나 우울한 인상을 주지 않는다. 더러는 명랑하기까지 하다. 이것은 어찌 된 일일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사람들은 직업 활동은 아니어도 다른 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거나, 사회 교육 기관에서 재능 기부를 하거나, 청소년 단체에서 무급 직원으로 일하는 등 그들은 강의도 자주 듣고 좋은 음악도 듣는다. 책도 많이 읽고 주변 사람들과 읽은 것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넘쳐나는 여가 시간도 의미 있게 보냄으로써 자신의 의식과 시간과 삶을 풍성하게 채워 나간다. 그리하여 실업신경증에 걸린 사람들처럼 이들 역시 배는 고플지 몰라도, 그들은 삶을 긍정하고 절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삶의 내용을 풍성하게 하고 의미를 도출한다. 그들은 꼭 직업 활동을 통해서만 인생의 의미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실업 상태라고 해서 꼭 의미 없이 살라는 법은 없음을 깨달았다. 그들에게 인생의 의미는 직업적 고용 여부에 좌우되지 않는다.

신경증 경향이 있는 실업자를 냉담하게 만드는 것, 실업신경증의 토대를 이루는 것은 바로 직업적 활동만이 인생의 의미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다. 직업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를 동일시하는 오류가 실직자로 하여금 스스로 아무짝에 쓸모없는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감정으로 괴로워하게 만든다.

이 모든 정황으로 보아 실업에 대한 정신적 반응은 그리 숙명적인 것이 아니며, 인간은 실업 상태에서도 영적으로 많은 자유를 누릴 여지가 충분하다. 실업신경증에 대한 실존분석은 똑같은 실업 상황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형상화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은 그 정신과 성격이 사회적 운명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그런 사회적 운명을 형상화해 나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각각의 실업자는 자신이 어떤 유형이 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내적으로 우뚝 설지, 아니면 냉담하게 되어 버릴지 말이다.

따라서 실업신경증은 실업이 초래하는 직접적인 결과가 아니다. 그렇다. 우리는 종종 나아가 정반대로 신경증으로 말미암아 실업에 이르게 된 경우를 본다. 신경증이 신경증 환자의 사회적 운명과 경제적 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 즉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 내적으로 우뚝 선 강건한 실업자가 냉담하고 무관심한 타입보다 경쟁에 유리할 것이고, 구직 활동에서도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실업신경증의 영향은 비단 사회적일 뿐 아니라, 생명 활동에도 관계된다. 인생의 과제를 통해 영적 생명이 가지게 되는 질서는 생물적인 부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의미와 내용을 상실함으로써 내적 질서가 허물어지면 신체적으로도 영락하게 된다. 신경정신의학은 가령 은퇴한 사람들이 갑자기 늙어 버리는 것과 같은 정신-신체적 현상들을 알고 있다. 동물에게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그리하여 서커스에서 ‘쇼’를 담당하도록 사육된 동물이 아무 ‘할 일’이 없이 동물원에 갇혀 있는 동종의 동물보다 더 오래 산다.

실업과 실업신경증이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서 심리치료로 개입할 가능성이 생긴다. 심리치료가 실업으로 기인하는 심리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 달갑지 않다면, 젊은 실업자들이 곧잘 하는 다음과 같은 말을 떠올려 보라. 그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삶의 내용이다.”라고 하고 있지 않은가. 이로부터 로고테라피적이지 않은 ‘심층심리’를 지향하는 좁은 의미의 심리치료는 승산이 없음이 드러난다. 실존분석만이 실업자로 하여금 사회적인 운명에 대한 내적 자유를 환기시키고, 책임 의식을 일깨울 수 있다. 그리하여 실직자가 조건은 어렵지만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를 이끌어 내도록 할 수 있다.

실업만이 아니라 직업 활동도 신경증의 수단으로 오용될 수 있다. 직업 활동을 의미 있는 삶의 수단이 되게 하는 올바른 입장과 신경증적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남용하는 경우를 구분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이 인간 자체가 수단이 되는 것을, 즉 인간이 단지 노동 과정의 수단이나 생산 수단으로 강등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노동 능력)은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데 충분하지도, 필수적이지도 않다. 일을 하지만 의미 있게 살지 못할 수도 있으며, 일을 할 수 없는데도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향유 능력도 마찬가지다. 특정 분야에서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그럼으로써 제한적인 인생을 사는 것은 무방한 일이다. 다만 문제는 이런 제한이 객관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신경증의 경우처럼 원래는 불필요한 제한인지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노동 능력을 위해 향유 능력을 포기하는 것은 불필요하며, 향유 능력을 위해 노동 능력을 포기하는 것도 불필요하다. 이런 신경증적 인간에게는 여의사들이 등장하는 소설(앨리스 리트켄Alice Lyttkens의 《난 저녁 먹으러 안 가Ich komme nicht zum Abendessen》)에 나오는 다음 문장을 지적해 주어야 할 것이다.
“사랑이 없을 때 일은 대용품이 되지. 일이 없을 때 사랑은 아편이 되고.”
---「Ⅱ장 중 ‘실업신경증’」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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