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에 태어나 런던의 머쳔트 테일러스 스쿨을 졸업한 후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공부했다. 그는 1916년에 외무부에 들어간 이래 국내외에서 외교관들 외무부와 관련된 많은 직업을 거친 후 1936년에 외무부를 사직하고 웨일즈대학에서 국제 정치학 교수가 되었다. 그는 1941년부터 1946년까지 타임지의 편집장 보를 지냈으며, 1953년부터 1955에는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의 특별연구원이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 고래는 모습은 물고기이지만 물고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우고는 매우 깊은 감동을 받았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이런 따위의 문제는 훨씬 덜 감동적이다. 따라서 역사는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다 해도 크게 마음 상할 것까지는 없다. 이것은 영어에만 한정되는 용어상의 특수한 문제일 뿐 유럽의 다른 모든 언어에 있어서는 에 해당하는 말 속에는 어김없이 역사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영어 사용권 국가들에 있어서는 이 문제는 긴 내역을 지니고 있어서, 여기서 생겨나는 논쟁점은 역사의 방법이라는 문제에 알맞는 서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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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에게 이런 광경은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럴 듯해 보이지도 않는다. 내 경우에는 우선 기본 사료라고 생각되는 것을 조금만 읽기 시작하면 아주 재미없고 지겨워서 그냥 써내려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쓰는 부분이 처음 부분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고 어디서부터거나 상관없다. 그 다음부터는 읽는 것과 쓰는 것은 동시에 병행해 간다. 읽는 것은 씀으로 해서 인도되고 방향이 제시되며 풍부해지는 것이다.
즉, 쓰면 쓸수록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더욱 잘 알게 되고 내가 찾아낸 것의 의미와 연관성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와 같은 예비 단계의 집필 전부를 펜이나 종이나 타이프라이터 없이 머리 속으로만 해치우는 역사가들도 있을 것이다. 장기의 판과 알 없이도 머리 속으로만 장기를 둘 수 있는 사람이 있듯이 말이다. 이것은 부러운 재주이지만 나로서는 따라 갈 도리가 없다. 그러나 내가 확신하는 바로서는 적어도 역사가라고 부를 만한 사람에게는 경제학자들이 인풋트(Input)과 아웃트풋트(Output)이라고 부르는 이 두 개의 과정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고 실제에 있어서는 단일 과정의 두 부분이라는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양자를 떼어놓으려고 한다든가 하나를 다른 것보다 우위에 놓으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두 이단(異端) 중의 하나에 빠지고 말 것이다. 즉, 의미도 중요성도 없는 가위와 풀의 역사를 쓰게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선전소설(宣傳小說)이나 역사소설을 써서 역사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저작물의 장식물로서만 과거 사실을 이용하게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