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무리의 준비
한 번뿐인 인생이 이제 80을 맞이하였다. 언제 돌아갈지는 모르지만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 生死學(생사학)연구를 시작하였다. 영어로 Well-Dying이란 말은 죽는다는 표현보다 부드럽다. 그러나 그 내용이 Well-Being과도 관련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현재 없는 미래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Well-Dying은 Well-Being없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 실현 방법은 현재 내 인생에 대한 철학과 가치관이 잘 정돈되어야 할 것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삶은 무엇이고, 삶과 죽음은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죽으면 인생은 끝나는가? 그런 문제의 주체인 나는 또한 누구인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을 새삼스럽게 되씹어보고 Well-Dying을 희망한다면, 지나온 과거의 습관들을 이상적으로 수정하고,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자성하게 된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학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하여, 전문가들이 만든 책자를 일부 수집하여 읽어 보고, 노트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형이상학적인 논술과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이 많아서, 모두 정독하지는 못하였고, 일부만을 먼저 읽고 노트해 보았다. 의문이 생기는 내용을 점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 Well-Dying과 Well-Being에 관련된 책자의 컨텐츠를 선별하여 기록하였다.
나의 Well-Being목표는 지금 이대로 3,650일로 정했다. 신체적 건강을 위해서 과식·과음을 피하고, 자연식을 고루 섭취하며, 하루 60분 이상 걷기운동을 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신건강을 위해서 모든 대상을 객관화하고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사물을 수용하고, 명상수행으로 貪·瞋·癡(탐·진·치)를 소멸하여 自我(자아)에서 非我(비아)로, 有我(유아)에서 無我(무아)로 영혼을 성장시키고, 자신과 환경 그리고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평생학습의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사회적인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계속 공부하고 이웃과 친척 동창생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힘쓰고, 어려운 이웃과 무식·무지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존경의 대상으로 하여 가능한 布施(보시)를 행할 것이다.
가정적으로 아내와의 백년해로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실행하고, 자녀들에게 기존의 기대와 연민을 버리고, 객관적인 관계로 전환하며, 시대에 맞는 사고방식을 실천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지금 살고 있는 이 방식 그대로 큰 변동 없이, 현재의 생활비 지출을 유지하고, 실속 있고 검소한 문화생활을 지향할 것이다.
Well-Dying의 목표는 解脫(해탈)과 涅槃(열반)이다. 죽음에 대한 철학과 정의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잘 죽는 방법은 나 개인으로서의 존엄사와 인격체로서의 자존을 유지하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는 것이다. 가능하면 웃으면서 열반하고 싶은 희망이다. 존재하는 것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生者必滅(생자필멸)’, 모든 것은 변하게 된다는 ‘諸行無常(제행무상)’,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근원적으로 고정된 것이 없으므로 나 또한 본래 없다고 하는 ‘諸法無我(제법무아)’ 등 佛法(불법)의 진리를 받아들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에서 겪게 되는 탐욕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분노와 무지에서 오는 어리석음 등의 탐·진·치를 소멸하기 위한 명상수행으로 현재의 생활에서 해탈의 길을 걸어야 한다. 죽음이 인간으로서의 인연이 끝나, 우주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당연한 이치를 수용하는 데까지 심오한 수행을 계속하여야 한다.
Well-Dying은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가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다. 그 앎이 삶을 변화시켜 주고, 현재 삶의 질서를 바로잡아 주기도 한다. 생명교육은 삶이 죽음으로 연결되는 변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주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도록 인도해 주는 학문이다. 죽음은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사람이 자신의 삶을 끝맺는 방식은 곧바로 그가 삶을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그러므로 죽어가는 사람이 삶의 마지막 단계를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보낼 수 있는지, 자기 자신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더욱 폭넓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사후생』에서 “죽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은 나비가 고치를 벗어던지는 것처럼, 단지 육체를 벗어던지는 것에 불과하다. 죽음은 당신이 계속해서 지각하고, 이해하고, 웃고, 성숙할 수 있는 더 높은 의식상태로의 변화일 뿐이다. 유일하게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육체이다. 인간의 육체는 영혼불멸의 자아를 둘러싸고 있는 껍질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긴 안목으로 보면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다. 그것은 행복의 완성을 위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위 단계로 올라갈 수도 있고, 아래 단계로 내려갈 수도 있다. 그것은 발전이나 퇴보가 되지만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공부와 행동에 따라 좌우된다.
죽음에 대한 공부는 내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그 답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공부에서 나온다.
뇌와 심장은 작동을 멈춰도 영혼은 존재한다는 사실에 관한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연구의 증거가 계속 나오고 있다. 죽음이 끝이 아니며, 그 이후 놀랍도록 아름다운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하버드대학 신경과 의사 이븐알렉산더의 논문발표가 있다.
죽음을 직시하고 잘 맞이하려고 노력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바로 선다. 즉, 우리의 삶은 죽음을 생각할 때 완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죽음도 삶의 내용이나 질이 제대로 받쳐줄 때 완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유럽여행을 할 때 여행사에서 만든 안내서를 보고 그 지역에 대한 역사와 문화, 지리공부를 하였더니, 실속 있는 여행을 한 경험이 있다. 죽음은 황혼인생여행의 큰 목표이다. 아름답고 실속 있는 여정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작성한 여행실천 노트는 지금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제3의 인생을 보장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 나이에 죽음을 공부하는 것이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현재의 삶에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방법을 찾는 인생 최고의 값진 노력이다.
시냇물이 흘러 강으로 가고, 강은 바다로 가서 하나가 된다. 우리 인생도 자연 속에서 태어나고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다가, 그 에너지가 다하게 되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거쳐서 우주의 품 안에 새로운 모습으로 존재할 것이다. 내가 살면서 최선을 다한 모든 업은 영혼 속에 저장되어, 우주에서 평가받게 될 것이고, 그것은 씨앗이 되어 언제 어느 곳에서 재탄생 될지 모른다. 죽는다고 영혼마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내 육신의 모습은 자연의 일부분으로 변하지만, 그 영혼은 잠들지 않고 영원히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하늘에 흐르는 구름처럼 자유자재한 존재가 되어 유유자적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대비해서 영혼을 더욱 성장시키는 수행에 정진해야 한다.
이 글은 표현도 어색하고, 두서없는 내용들이지만,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을 필요에 따라 편집한 것이다. 건강분야는 서울대학교 장수과학지도자과정에서, 명상과 불교에 대한 지식은 동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배운 내용들이다. 생사학, 죽음에 대한 것은 한림대학교 오진탁 교수로부터 배우고 있는 내용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노트는 Well-Being을 위한 건강지식과 영혼의 성장을 위한 명상수행 그리고 Well-Dying을 위한 실천노트로 요약하였다. 그리고 생사학을 계속 공부하기 위해서, 내가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의 제목과 컨텐츠와 죽기 전에 작성해야 하는 유서, 사전의료의향서 외에 참고 자료들을 부록으로 첨부하였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