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천재처럼 생긴 사람은 괴짜 천재여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사회 통념인 것 같았다. 외모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거다. 결국 퍼갈은 천재성을 지닌 별난 아이로 인식되었다. 퍼갈은 그게 싫었다. 맞는 소리도 아닌 데다, 그 수식어에 갇혀 기발한 행동과 기발한 말을 해야만 할 것 같은 부담도 싫었다.
그래서 찾은 해결책이, 사람들이 가까이할 수조차 없는 심한 괴짜 짓을 하는 것이었고, 이것이 바로 통조림 수집의 발단이 되었다.
퍼갈은 어딘가 숨을 곳이 필요했다.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접촉하게 되는 취미가 아닌, 그런 소통을 차단해주고 막아줄 수 있는 취미. 그게 바로 통조림 수집이었다.
희귀한 통조림을 모으는 건 아니었다. 남극과 북극 탐험 등에서 쓰였던 오래되고 역사 깊은 통조림이나, 외국에서 온 통조림, 알록달록한 통조림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아무 때고 볼 수 있는 평범하고 단순한 일반 통조림이면 되었다.
다만, 상표 라벨이 없어야 했다.
진실이 공개되는 순간. 퍼갈은 손을 뻗어 통조림을 잡고 천천히 들어 올렸다.
무언가 종이 위에 떨어져 있었다. 퍼갈은 잠시 동안 그게 대체 뭔지 생각해보았다. 사실 곧바로 알 수도 있었지만, 눈을 믿기 힘들 정도로 괴상한 물체였기 때문에 제대로 인식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통조림에서 나오는 것이 불가능한, 전혀 예상 못한 물체였다. 여태껏 별의별 것을 다 상상해봤지만,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었다.
퍼갈은 침을 꿀꺽 삼키며 종이 위의 물체를 가만히 관찰했다. 이번 것은 무효로 할까 생각했다. 다시 통조림에 넣고 아까처럼 뒤집었다 들어 올리면 또 다른 게 나올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것보다는 더 현실적인 것이겠지.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차라리 통조림을 열지 않았더라면. 그냥 책장 위에 다른 것들과 나란히 놓았더라면. 세일 바구니에서 이 통조림을 찾지 못했더라면. 아니, 아예 통조림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퍼갈은 눈을 감고 비빈 뒤 다시 종이 위를 바라보았다.
변한 건 없었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금 귀걸이나, 고무줄로 묶어놓은 지폐 다발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비슷하지도 않은 물체였다.
손가락. 통조림에서 나온 건 손가락이었다. 더러운 손톱과 아래쪽에 빙 둘러 희미하게 움푹한 자국이 남아 있는, 사람의 손가락.
집에 가는 길에 퍼갈은 곰곰이 고민해보았다. 왜 어른들은 아이들이 뭘 하든 그렇게 참견하려 드는 걸까?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쪽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뭐 그리 대단한 걸 한다고 어른들에게 그토록 숨기려 하는 걸까? 또 아이들이 뭔가를 숨기면, 어른들은 왜 그렇게 쉽게 속아 넘어가는 걸까?
퍼갈은 궁금했다. 손가락에 대해 모두 털어놓고, 그 손가락을 다시 찾아와 엄마에게 보여주며 “이게 샬롯하고 제가 한참 동안 토론했던 주제예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고 물으면 어떻게 될까?
엄마는 어떻게 반응할까? 분명 둘 중 하나일 거다. 제대로 듣지도 않고 “훌륭하구나, 퍼갈. 아주 대단해. 그래, 그 손가락. 아주 좋아.” 하고 대충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충격을 받고 비명을 지르며 실신할지도 모른다.
퍼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엄마가 실신할지도 모르니까. 이미 일은 꼬일 대로 꼬여버렸다. 게다가 엄마가 쓰러지면 저녁은 어떻게 먹을 것인가?
손가락이 그토록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생각해보면 손가락 하나로 참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를 수도 있고, 권총의 방아쇠를 당길 수도 있다. 위험한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죽은 손가락일지라도 말이다.
잘렸을지라도.
샬롯은 먼저 밖에 아무도 없는지 확인하고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따개를 들고 통조림을 따기 시작했다.
“어때?”
“잠깐 기다려봐.”
샬롯은 책상에 내용물을 쏟아냈다.
“몸의 일부야?”
“아니, 종이쪽지 같은데?”
샬롯은 퍼갈에게 쪽지를 보여주었다. 더 이상 접히지 않을 때까지 접어놓은 지저분한 회색 종이뭉치였다.
“봐봐.”
퍼갈은 종이뭉치를 펼쳐 책상 위에 내려놓고 손바닥으로 판판하게 폈다. 순간 손이 떨리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저, 저기, 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퍼갈은 침을 삼키고 다시 말했다.
“저기 뭐, 뭐가 쓰여 있는데.”
퍼갈을 가만히 바라보던 샬롯의 눈이 안경 너머에서 반짝였다.
“뭐라고 쓰여 있어?”
“읽어봐.”
샬롯은 펼쳐진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구깃구깃한 종이 위로 뭉툭한 연필로 쓴 것 같은 모양새의 낱말이 딱 하나 보였다. 글씨 쓰는 게 영 익숙지 않은 어린아이나 못 배운 사람이 썼는지 필체가 삐뚤삐뚤했다.
한 낱말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각 글자가 띄엄띄엄 떨어져 쓰여 있었다.
살 려 주 세 요
손가락, 귀걸이, 귀, 반지, 그리고 ‘살려주세요’라고 적힌 쪽지의 근원지는 시골 으슥한 곳의 불법 통조림 공장이다. 아동 착취를 일삼는 그 공장의 주인, 딤블스미스 부부는 어쩌면 어른들을, 이 사회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들은 통조림이라는 편견을 만드는 사회라는 공장 속에 아이들을(우리를) 가둔다. 하지만 퍼갈과 샬롯은 그런 통조림들을 하나하나 열어 아이들을 구하고 결국 공장을 무너뜨린다. 어른들의 도움 없이 그들만의 힘으로 승리한 것이다.
혹시 지금 나를 가두고 있는 통조림은 없는가? 이 책이 그 통조림을 열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기를 바란다. 고정관념을 깨고 산소를 만나 신선한 부패가 시작되기를.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