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정각에 음악은 멈췄고 사람들은 웅성웅성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좀더 파티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아쉬운 표정들이다. 1시40분까지 독일에서 온 50대의 전직 신문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프림로즈를 나왔다. 야톰과 전직 기자는 마약의 폐해에 관해 논쟁을 벌였다. 마약에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독일남자의 견해에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야톰에게 나는 처음으로 강한 성적 매력을 느꼈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었는데 나이에 걸맞지 않는 해박한 지식과 논리적 언변에 매료된 것이다. 야톰의 바이크를 타고 안주나로 돌아오는데 재수없게 경찰 두 명이 불심검문을 한다. 고아의 경찰들은 돈이 필요하면 바가토르에서 안주나로 가는 도로변에 서서 여행자들에게 생트집을 잡아 박시시(기부금, 적선)를 요구하곤 한다. “마약 소지하고 있나?” 경찰은 야톰에게 물었다. 이럴 때 마약을 단 1g이라도 소지하고 있으면 꼼짝없이 박시시를 내야 한다. 안 그러면 감옥에 가야 한다. “없다.” “모터바이크 면허증 있나?” “이스라엘에 있다.” “면허증이 없으니 경찰서에 가야겠다. 아니면 3천루피를 벌금으로 내라.” “고아에서 외국인은 면허증을 소지하지 않아도 법에 저촉되지 않아. 법적으로 난 하자가 없다.” 야톰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중에 내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고아인은 모터바이크 면허증을 꼭 소지해야 하지만 외국인 여행자들은 그것이 없어도 상관 없다. “그렇지 않다. 너 경찰서에 가야겠다. 아니면 1천루피를 내라.” 경찰은 뭔가 켕기는지 억지로 뻔뻔스럽고 태연한 표정을 가장하며 말했다. “돈 없다.” “가방 줘봐라.” 경찰은 야톰의 가방을 샅샅이 뒤져 돈이 없음을 확인하자 홱 던지듯 돌려주었다. “이 여자는 누구냐?” “내 친구다. 집에 데려다 주는 길이다.” “너도 돈이 없나?” 경찰은 야릇한 시선으로 내게 물었다. “없다.” “가방 줘봐라.” 그는 내 가방을 뒤졌다. 내 지갑엔 단돈 100루피뿐이었다. “여권 내놔봐라.” “숙소에 두고 나왔다.” “어디에 머무나?” “안주나.” “정말 돈이 없나?” “우린 학생이고 여행 막바지에 이르러 돈이 다 떨어졌다.” “주머니를 뒤져봐라.” 나는 주머니를 열어 보이며 정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직접 뒤져봐도 돼?” 경찰은 엉큼하게 물었다. “안 돼, 내가 이미 보여줬잖아.” “경찰서에 함께 가야겠다.” 그때 야톰은 ‘좋다, 경찰서에 가자’ 고 화를 냈다. 나는 그들의 비위를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하여 ‘새벽까지 잠도 못 자고 정말 수고가 많다’ 고 윙크를 살짝 했더니 경찰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악수를 청해왔다. 악수에 응했더니 그는 내 손바닥을 검지로 긁으며 ‘내 이름은 조니’ 하고 싱글싱글 웃는다. 다른 경찰 한 명도 악수를 청하며 ‘내 이름은 프란시스. 앞으로 무슨 일 생기면 내게 말해. 내가 다 해결해 줄 테니까’ 한다. 그들은 야톰과도 악수를 하였다. 돌아오면서 우리는 ‘정말 웃기는 경찰들이다’ 라며 한바탕 소리 내어 웃었다. 숙소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나는 그에게 ‘내 방에 갈래?’ 라고 물었다. 그는 바라던 바였다는 듯 ‘예스’ 라고 힘주어 대답한다. 내가 먼저 샤워를 하려고 욕실에 들어갔는데 물이 나오지 않는다. 머리를 감는 도중에 혹은 온몸에 비누를 칠했는데 물이 나오지 않아서 낭패를 본 적이 몇 번 있어서 나는 씻기 전에 반드시 수도꼭지를 열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럴 때마다 여주인 모니카를 목청껏 불러 물이 안 나온다고 외친다. 그러면 그녀는 잠가뒀던 물탱크를 열어놓는 것이다. 인도는 심각한 물 부족 사태에 직면해 있는데 외진 해변가인 고아는 특히 더하다. 그래서 한밤중에 수도관에 몰래 구멍을 내어 물을 빼돌리는 얌체족도 있는데 여유가 있는 집은 지하수를 퍼올려 부족한 수돗물을 보충한다. 나는 새벽 2시가 넘은 시각이라 곤히 자고 있을 모니카를 깨워 물탱크를 열어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욕실에서 나오니 야톰은 샤워를 하려고 이미 옷을 다 벗고 앉아 있다가 내가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자 셔츠로 아래를 가리고 수줍은 얼굴로 ‘괜찮아, 내 방으로 가자’ 한다. 우리는 다시 바가토르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