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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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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그리고 나

[ EPUB ]
이진현 | 가하 | 2011년 11월 2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0 리뷰 4건 | 판매지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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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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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1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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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1.02MB ?
ISBN13 978896647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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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이진현
모년 4월 4일(음) 태어난 A형 황소자리.
가끔 몰아서 영화보기, 서점 구경가기, 괭이와 놀기를 좋아하며,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에 관심이 많다.
1998년 제3회 신영미디어 로맨스소설 공모전에서 『사랑할 때 이별할 때』가 당선되면서 작가로 입문하였고, 2001년 <제21회 간호문학상> 소설부문에 당선됐다.
출간한 소설로는 종이책으로 『정혼』, 『 기억의 저편』, 『그대 그리고 나』가 있고, 『보노보 프로젝트』, 『경계를 넘다』를 출간 준비 중이다.
소통을 위한 작은 창을 이글루스에 열어두고 있다.

hyang2.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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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수혜는 어둠 속에서 문에 등을 기댄 채로 4년간 익숙했던 자신의 공간을 둘러보았다. 10여 분 전까지 그녀가 머물던 떠들썩한 환송 분위기와는 대조적인 적막이 감돌았지만 오히려 지금이 더 마음 편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자신에게 남은 건 단 하룻밤의 유예뿐이라는 사실을 떠올리자 수혜는 가늘게 몸을 떨었다.
내일이면 예약해 둔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될 것이고, 결코 유쾌할 수 없는 옛 감정들과 다시금 대면해야 했다. 오랫동안 닫아걸고 유예 상태로 두었던 감정들은 슬쩍 들춰 보기만 해도 먼지 날리고 버석거리며 부서질 것 같았다.
이렇게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일 줄 알았으면 그때 정리하는 건데.
4년 전에 유학수속을 밟듯 사무적으로 처리했다면 좋았을 거라고 최근 들어 수혜는 후회도 해봤지만 되돌릴 수 없는 일이었다.
미리부터 걱정할 것 없어. 잘될 거야. 이제라도 해결하면 돼.

자신만큼이나 그도 같은 결론을 내리고 싶어 안달하고 있을 테니 말 한마디면 미뤄두었던 과거도 한순간에 정리가 될 거라고 마음을 털어내며 수혜는 좁은 거실로 들어섰다. 소파에 기대앉는 대신 수혜는 입고 있던 옷의 단추를 풀며 욕실로 걸음을 옮겼다. 이미 마신 몇 잔의 와인 기운 때문에 일단 자리에 앉거나 눕게 되면 다시 일어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녀가 채 몇 걸음 내딛기도 전에 전화벨 소리가 빈방 안에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알로.”
수혜는 수화기를 들고 불어로 응답했다. 하지만 들려온 것은 인사도 생략한 한국어였다.
- 좀 늦었군.
순간 수혜는 창백해진 얼굴로 자신도 모르게 손목시계를 눈으로 쫓았다. 밤 11시 30분이었다. 평소 그녀의 귀가 시간보다는 늦었지만, 결코 그가 말하는 것처럼 너무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그런데 수천,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마치 바로 마주 서 있기라도 한 듯 말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지금 서울은 몇 시지? 수혜는 서울과 파리의 시간차를 가늠해 보았다. 8시간의 시차를 가지고 있으니 저쪽은 지금 다음날 아침 7시 30분일 것이다. 그의 어조로 짐작컨대 그의 전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 듯했다. 이른 새벽부터 도대체 몇 번이나 전화를 했던 거냐고 묻는 대신에 그녀는 건조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어요.”
내일이면 4년을 몸담았던 곳에서 떠나야 하고, 때문에 그간 친분을 나누던 사람들과 이별을 아쉬워하는 시간을 가졌다. 구차한 변명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술도 좀 마신 거야?
생각지 않게 약간은 놀리는 듯한 말투가 돌아왔다.
수혜는 대답 대신 수화기만 굳게 쥐고 있었다. 그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그녀로선 가벼운 농담으로 넘길 수 없었다.
- 오늘, 돌아올 거지?
그도 곧 딱딱한 수혜의 태도를 감지한 듯 원래의 진지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래요.”
순간 수혜는 수화기를 들지 않은 왼쪽 손목이 시큰거리는 감각에 미간을 찌푸렸다. 불편한 그와의 대화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데 그나마 위로삼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는 간단하게 전화를 끊지 않았다.
- 도착 예정시간을 알려줘.
“굳이 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알아서 해요.”
- 마중 나가지 말라고?
감정이 실리지 않은 그의 음성은 직설적으로 그 이유를 묻고 있었다. 수혜는 순간 멈칫했다.
우리는 서로를 배려할 만큼 친근한 관계도 아니잖아요.
형식을 갖춘 예의는 도리어 서로에게 거추장스럽고 불편하기만 할 뿐이다.
“그런 건 기대하지 않아요.”
- 그럼 당신이 기대하는 건 뭔데?
약간 짓궂은 그의 물음에 웃음이 묻어왔다.
“우리가 4년 전에 하지 않았던 거요.”
- 음?
“법적인 구속에서 벗어나야죠.”
- …….
듣던 중 반가운 말이라고 쌍수 들어 환영하는 것도 기분 상하는 일이었지만 흡사 공포영화 속 클라이맥스처럼 싸하고 무거운 침묵도 수혜의 기분을 가라앉게 했다.
“당신이 먼저 이혼서류 준비해서 보내주면…….”
그가 있는 수화기 너머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여보세요?”
- 아, 지금 곧 나가봐야 해. 그 얘긴 돌아와서 마저 하기로 하지.
그는 급한 일을 앞둔 것처럼 서두르며 푹 쉬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수혜는 잠깐 동안 수화기를 든 채로 서 있었다. 윙윙거리는 전화기의 기계음이 갑자기 신경에 거슬려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나서야 그녀는 천천히 수화기를 제자리에 놓았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수혜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짧은 통화 내용을 되짚는 동안 예상과는 달리 그가 자신의 귀국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 그리고 뭔지 모를 실망감을 감추며 물러서는 그의 이상한 태도.
그는 수혜가 돌아올 것인지 물었고, 서울 도착시간을 물으? 마중 나갈 생각이 있음을 시사했다. 아니면 그저 의례적인 물음이었던 걸까.
일주일 전에도 수혜는 그런 느낌을 받기는 했다. 거의 한 달 이상 아무런 연락도 없던 그가 정확히 빚 받을 날짜를 헤아리고 있던 것처럼 전화를 걸어왔었다.
수속이 마무리되고 짐 정리가 끝나면 연락할게요.
수혜는 내심 당황하면서도 담담하게 말했다. 그 역시 그녀가 돌아오게 되어 기쁘다거나 잘되었다거나 하는 형식적인 인사치레 없이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때는 단순히 의례적인 확인 전화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그의 반응과 함께 돌이켜 보니 뭔가 이상했다.
그러고 보면 4년이나 지나서야 두 사람의 관계를 분명하게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자신도 무심했지만 그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은 지난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두렵고 싫어서 꽁꽁 싸매두었지만 그는 얼마든지 사무적으로 요구하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냉정하고 차가운 사람. 결혼 1년 6개월 만에 고갈되어 버린 관계. 그가 원한 것은 항시 그의 주변에 그림자처럼 머물러 있다가 그가 필요로 할 때 쓰이는 인형 같은 아내였다. 굳이 자신이 아니어도 되었던 남자. 자신의 날개를 꺾어 결혼과 함께 그의 집 안에 가두고 싶었던 것은 잠시의 열정과 호기심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지금, 새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라도 그는 두 사람의 법적인 혼인관계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을 터였다. 막대한 위자료를 요구할 것도 아니고, 그저 서류 하나만 보내주었어도 되었을 텐데, 왜 그는 그 간단한 절차조차 시도하지 않았던가. 다른 일엔 철저하고 완벽을 기하는 남자가! 결국 그 때문에 두 사람은 지난 4년간 철저하게 타인으로 살면서도 법적으로는 부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김준현과 한수혜는 명목상, 그리고 허울뿐인 부부였다. 실제로 그는 그녀의 정신과 육체 어디에도 의미없는 남자였다.
그 사람이 정말 마중 나올 생각을 했을까.
샤워하는 동안에 불쑥 떠오른 의문에 수혜는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어쨌거나 우리는 남이나 다름없는데! 이제 곧 남이 될 텐데……!
---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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