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서문
역대 의문醫門에서 재목이 된 선현先賢들의 공통점을 오랫동안 연구한 학자들은 한결같이 “경전을 배우고 임상에 종사하며 훌륭한 의가를 찾는 것[讀經典, 做臨床, 拜名士]”이 임상명가가 되는 필수요건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상한론》은 바로 그 역대 의가들이 받드는 의학경전 저작의 하나다. 《상한론》은 당대唐代에서부터 국가의관고시의 필수과목으로 선정되었는데, 이 규정은 청대淸代에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현대에는 중의약고등교육 과정에 《상한론》이 본과 이상 학생들의 교육에서 근간이 되는 커리큘럼으로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임상의사의 자격시험과, 특히 임상의사의 직위승진 시험에도 《상한론》이 시험과목에 포함되어 있다. 이런 이유에서 의학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나 아니면 학업을 마친 후의 지속적인 교육 또는 의학의 평생교육에서 모두 《상한론》의 반복적인 학습이 필요한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마침내 《상한론》은 의학각과에 종사하는 거의 모든 임상의사의 책상머리에 놓인 책이 되었다.
나는 《상한론》의 교학敎學과 연구 및 임상응용에 근 40년을 종사하였는데,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생각을 거듭하면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듯[愚者千慮必有一得]” 《상한론》에서 몇 가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하여 체험하거나 터득한 바와 깨달음이 있었다. 마침 국가중의약관리국이 지원하여 나를 《상한론》의 시범교육에 주임 강사로 추천하였고, 내가 강의한 《상한론정강傷寒論精講》을 CD로 제작·발행하게 되어 독자들의 폭넓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
내가 강의한 《상한론》의 원문은 명대 조개미趙開美의 《중경전서仲景全書·번각송판상한론?刻宋版傷寒論》을 따랐는데, 다만 본서는 현대에 보급될 서적이므로 원문을 일률적으로 규범간화자체簡化字體로 고쳐 인쇄하였다. 원서 중의 이체자異體字나 화자訛字도 일률적으로 상용하는 간화자로 고쳤는데, 예를 들면 ‘경?’은 ‘경硬’으로 ‘회?’는 ‘회蛔’로 ‘해?’는 ‘해咳’로 ‘치?’는 ‘경痙’으로 고친 것 등이다.
(중략)
역대에 《상한론》을 연구하여 주석한 저작은 매우 풍부하여, 수레에 실으면 소가 땀을 흘리고 바닥에 쌓으면 천정에 닿을 정도다. 다만 본서는 그와 같은 집주集註가 아니라, 개인연구의 심득心得과 체득體得을 위주로 기록하였으므로 선현과 금철今哲의 저술을 직접 인용한 곳은 비교적 많지 않다. 본서에 등장하는 많은 견해들은 옛사람들이 밝힌 지견知見의 기초 위에 나의 학습과 터득을 종합하여 사고한 것이다. 이와 함께 임상에서 깨달은 바를 다시 결합하였기 때문에 이론체계로 자연히 귀납하면서도 학술 언어와 임상경험의 전승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이 강의록에서 나는 《상한론》을 처음 접하는 벗과 더불어 경전의 원문을 읽으며 배울 것이고, 《상한론》에 원숙함을 갖춘 벗과는 경전의 자리행간이나 심지어 글자가 없는 구절에서도 중경변증감별仲景辨證鑑別의 사고방법과 융통성 있는 용방用方의 묘를 찾아서 쥘 것이며, 《상한론》을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는 동행과는 이 경전을 잘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토론할 것이고, 임상치료에 종사하는 벗과는 경전의 이법방약理法方藥에 대한 임상의 실제운용을 분석할 것이며, 의학을 전문으로 하지 않는 각계의 벗들에 이르러서는 의학원류의 천인상응天人相應에 대한 관점과 그 종합 및 정체성의 연구방법은 물론 건강보건의 지식까지도 함께 나눌 것이다.
한 개인의 경험은 필경에 유한하고 개인의 시야 역시 협착한 까닭에 책 중에 타당하지 않거나 틀린 곳이 확실히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동도同道의 바른 가르침을 얻게 된다면 그것은 나를 나아가게 하여 실로 사람을 매우 기쁘게 할 것이다.
역자 서문
…… 3년간 본서의 원본인 《?万山?寒??稿》와 씨름하던 나는 결국 이 책을 번역하기로 작정하였다. 그 동기와 목적은 이미 전술하였듯이 육경과 팔강을 조리 있게 분류하고, 비교와 감별로 명확히 구분하며, 예시를 통해 알기 쉽게 하는 본서의 장점이 《상한론》을 학습하고 임상에 적용하는 데 매우 유리하기 때문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한의학 전문서적의 출판이 부족한 한국의 실정에서 이처럼 쉬우면서도 일목요연하며 임상실제를 부가한 해설서가, 단지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하여 읽히지 않는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현대 중국에서 최고의 《상한론》 교육가로 꼽히는 하오 교수의 교육방식을 학계에서는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생동감이 있고 활발하며 맥락이 분명하였고, 배우는 사람들이 스스로 문제를 생각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배양하려 힘썼다. (중략) 임상에서는 의술을 중하게 여김과 동시에 의덕醫德을 베풀어 환자의 병고를 없애고자 하였다. 또한 학생들에게는 이론의 강술과 아울러 생생한 실례를 제공하여 환자들과 제자들의 깊은 추앙을 받고 있다.”라고 평하였다. 그러므로 원어민의 말로 외국의 언어를 배우듯 종주국 학자의 사상이 담긴 언어로써 《상한론》을 학습해보는 것도 매우 가치 있는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이후로 당국은 고대의 의학경전과 《상한론》 및 《금궤요략》의 이론과 용방의 과학적 개연성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국가적 차원의 전통의학 부흥사업을 시작하였는데, 이와 함께 런잉치우任應秋, 왕홍투王洪圖, 류두저우劉渡舟, 후시수胡希恕처럼 원전과 상한금궤의 학습으로 다져진 임상과 이론의 교육가들이 등장하였다. 그들의 영향이 두 세대를 거치면서 국가적인 지식의 축적과 임상의 수준향상은 일부 미비함을 감안하더라도 6∼70년 전보다 확연히 진일보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하오 교수를 비롯한 후세의 많은 의학사적 인물들이 등장한 것과 더불어, 현재도 수많은 전문의약서가 지속적으로 출판되고 있는 것으로 실감할 수 있다. 중국의 서점과 아마존 차이나, 국내의 화문서적華文書籍 등에서 중의서를 검색해 보라. 한 달에 적어도 10여 종의 많은 전문의약서가 쏟아지는 것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여전히 적지 않은 중국인들이 그들의 문화유산인 의학고전을 펼쳐 열고는 절차탁마하고 있다는 뜻이므로, 그 결과의 성취들 중에는 반짝이는 보석이 반드시 있기 마련인 것이다. (후략)
본문
(2) 열실결흉증熱實結胸證
㉠ 대함흉환증大陷胸丸證
131조(下) 結胸者, 項亦?, 如柔痙[1]狀, 下之則和, 宜大陷胸丸.
결흉 또한 경항이 강직하므로 유경의 증상과 유사하다. 공하하면 완화되며 대함흉환이 알맞다.
[1] 유경柔痙: 경병痙病의 주된 임상표현은 경항강직頸項?直, 각궁반장角弓反張, 구금불개口?不開다. 경병에 땀이 나면 유경이라 하고 땀이 없으면 강경剛痙이라 한다.
【제요】
열실결흉熱實結胸의 병위가 상부에 편중된 증치를 논하였다.
【강해】
▶ 항역강項亦?, 여유경상如柔痙狀
이것은 수水와 열熱이 흉격에서 결합하였으므로, 불리해진 상부의 기기가 항부경맥 양기의 정체까지 야기한 것이다. 진액이 포달되지 못하고 경맥이 온양도 잃어 경항이 뻣뻣한 유사경병類似痙病이 출현하였다. 수열水熱이 외부를 향하여 상승하며 증발하면 땀이 나는데, 이것이 “유경의 모습과 같다[如柔痙狀].”라고 한 이유다. 또한 결흉으로 명명한 이상 수열이 결합하며 기혈이 지체되고 막힌 것이므로, 당연히 흉격胸膈의 동통과 단기短氣의 증이 있다. 그리고 혈열血熱이 심신을 요동하면 번조가 발생한다.
치료에는 대함흉환大陷胸丸을 사용하여 열을 내리고 수를 몰아내는데, 준약峻藥으로 완공법緩攻法을 사용한다.
▶여유경상항역강如柔痙狀項亦?(한출, 흉통, 단기, 번조煩躁)
이상의 증후는 모두 인체의 높은 부위에 발생한 수열호결증水熱互結證의 임상증상이다. 경痙은 각궁반장角弓反張, 와불착석臥不著席, 아관긴급牙關緊急, 사지추휵抽?이 발생하는 추풍抽風의 증이다. 경병인데 땀이 나므로 유경이며 병인은 경항부 근맥이 당기고 뻣뻣하여 움직임이 원활하지 않게 된다. 또한 열사에 핍박된 진액이 외월하여 땀이 나고, 수사와 열사가 결합하였으므로 흉통이 있으며, 수열사기가 흉중기기의 창달을 정체하여 막으므로 단기가 발생하였다. 또한 수열호결水熱互結로 발생한 울열이 심신을 요동하면 번조가 발생한다.
【치법】
사열축수瀉熱逐水, 준약완공峻藥緩攻
【방제】
대함흉환大陷胸丸
大黃【半斤】 ??子【半升, 熬】 芒硝【半升】 杏仁【半升】
上四味, 搗篩二味, 內杏仁, 芒硝, 合硏如脂, 和散. 取如彈丸一枚, 別搗甘遂末一錢匕, 白蜜二合, 水二升, 煮取一升, 溫頓服之. 一宿乃下, 如不下, 更服, 取下爲效. 禁如藥法.
대황【반근】 정력자【반승, 볶는다】 망초【반승】 행인【반승】
이상의 4가지 약미인데 대황과 정력자를 찧고 가루 낸 뒤, 행인과 망초를 합해 기름처럼 간 것을 산과 합하여 탄환대 1매를 만든다. 이것과 별도로 찧은 감수말 1전비를 합하여 백밀 2합과 물 2승으로 달여 1승이 되면 단번에 온복한다. 하룻밤이 지나면 설사하게 되는데 만약 설사하지 않으면 다시 복용한다. 설사하는 것으로 효과를 삼으며, 금기는 복약법과 같다.
【방의】
본방은 대함흉탕을 기초로 하여 행인, 정력자, 백밀을 가하여 조성하였다. 방 중에 대황, 망초, 감수를 합용한 것은 열을 내리고 결실을 깨며 수음水陰을 쳐서 몰아내므로 본방의 주약이다. 행인고윤苦潤은 병위가 상부에 치우친 본증에서 폐기를 선통하며 순조롭게 한다. 정력자는 폐중肺中의 사기를 없애고 수기를 다스려 폐기의 선달宣達에 힘쓰므로, 약력이 상부로 주행하여 수水의 상원上源을 잘 통하게 한다. 그러므로 높은 위치의 사기를 제거할 수 있다.
본방의 약물들은 모두 작용이 맹렬하다. 그렇지만 자환煮丸의 방법을 채용하였기 때문에 초, 황, 정, 행 사미를 합하고 갈아서 탄환대彈丸大 1매를 복용하는 것이므로 용량이 비교적 적다. 또한 다시 백밀미감白蜜味甘의 완화로써 준약들의 사하력을 완만하게 발휘하도록 하여 조금의 피해도 없이 지나가게 하므로 상부의 사기를 제거하는 데 유리하다. 이것은 중경이 ‘준약완공지법峻藥緩攻之法’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의안】
◎ 군약君藥
런잉치우任應秋 교수가 살아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해 봄에 연구생을 모집하는 면접시험을 보게 되었다. 런 교수가 한 응시학생에게 “십조탕 중에 무엇이 군약인가?”라고 물으셨다. 그 응시자는 한참을 주저하며 대답하지 못하였다. 면접을 마친 후 나는 런 노사에게 표준답안을 청하였다. 노사는 나에게 집에 돌아가서 《사기史記·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을 읽도록 분부하셨다. 집으로 돌아온 내가 유방劉邦이 한신韓信을 막 연금한 후에 평소처럼 한신과 대화하는 장면을 읽는데, 그중 사관이 기록해 놓은 한 단락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임금이 한신과 더불어 여러 장수들의 능력 차이에 대해 말하였다.
임금이 물었다. ‘나는 얼마나 통솔할 수 있소?’ 한신이 말하였다. ‘폐하는 십만을 넘지 못합니다.’ 임금이 물었다. ‘그대는 어떠한가?’ 한신이 말하길 ‘신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임금이 웃으며 말하였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면서 어찌 나에게 사로잡힌 몸이 되었소?’ 한신이 말하였다. ‘폐하는 많은 병사를 통솔할 수는 없으나 장수들을 잘 거느립니다. 이것이 신이 폐하에게 사로잡힌 몸이 된 까닭입니다. 이것은 폐하가 하늘에서 받은 능력이니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上從容與信言諸將能不, 各有差. 上問曰: 如我能將幾何? 信曰: 陛下不過能將十萬. 上曰: 於君何如? 曰: 臣多多而益善爾. 上笑曰: 多多益善, 何爲爲我禽? 信曰: 陛下不能將兵, 而善將將, 此乃臣之所以爲陛下禽也, 此陛下所謂天授, 非人力也].” 나는 여기까지 읽고 갑자기 깨달은 바가 있었다. 십조탕은 본래 현음懸飮을 치료하는데, 현음은 흉협에 수사水邪가 정체된 병증이다. 십조탕에는 대극大戟, 완화莞花, 감수甘遂와 같은 사하축수력瀉下逐水力이 극히 준맹한 약물이 들어 있어, 성을 공격하여 진을 함락하듯 장위로 곧장 내려가는 작용이 가히 장군의 용맹함과 견줄 만하다. 단, 흉격 간의 수음사기가 소변을 따라 체외로 배출될 수 있도록 반드시 감완甘緩의 약물을 사용하여 세 맹장을 통제해야 한다. 즉 그 축수력을 완만히 발휘하게 하면 약물들의 작용이 부드러워지고 약효의 지속시간도 연장되어 비로소 흉격 간의 수음사기水飮邪氣가 천천히 이변二便을 통과하여 체외로 배출된다. 그러므로 세 가지 준맹한 약물은 대조大棗로써 통제하는 것이므로, 이것이 대조가 십조탕의 군약이 되는 이유이며 또한 이로 인해 ‘십조탕十棗湯’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226쪽∼269쪽)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