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이든 사람이든 정말 제대로 알고자 한다면 직접 만나고 경험하고 부딪쳐보는 수밖에 없다. 저 멀리 언덕을 넘어가 국경을 건너려는 사람들, 그들 무리에 끼어들어 그들과 하나가 되면서 그들이 어떻게 소통하는지 직접 보고, 듣고, 해보는 수밖에 없다. 과연 내가 전 세계 내로라할 약삭빠른 상인들과 거래하면 조금이라도 이윤을 남겨올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당시에는 내 앞에 어떤 일들이 도사리고 있는지 상상도 못했다. 그저 내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직접 시장에 뛰어들어 협상과 거래를 해보면 경제와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겁도 없이 덤벼보기로 했다.---p.14
흥정이 시작되면 당사자 두 사람이 굳게 악수를 한다. 그런 다음 번갈아가며 가격을 제시하는데 이때 거래가 끝나기도 전에 악수를 풀어버리는 것은 무례하다고 여겨진다. 일단 가격을 제시했으면 합의를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상대의 제안을 못 받아들이겠으면 팔에 힘을 풀어 악수가 소용없게 만든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힘을 주어 악수하면서 다른 가격을 제시한다. 이번에는 내 제안을 상대가 마음에 안 들어 하면 그쪽에서 팔에 힘을 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잡은 손을 빼선 안 된다. 손을 빼버리면 서로 제안만 왔다 갔다 하면서 흥정이 끈질기게 이어지게 된다. 투기꾼 일당은 진지하게 살 마음이 있는 척하면서 내가 아주 낮은 가격을 부르게 할 것이다. 그런 다음 자신은 가격을 아주 조금씩만 올려 제시하면서 내가 제대로 된 값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에 팔거나, 아니면 내가 이내 체면을 잃고 악수한 손을 빼버릴 밖에 다른 도리가 없게 만들 것이다. 무엇보다 안 좋은 점은 일단 흥정에 들어가면 진정 살 마음이 있는 사람도 옆에만 서 있을 뿐 흥정에 끼어들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첫 번째 협상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 협상이 오래 이어지면 이미 자리를 떠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아까운 시간은 다 까먹고, 날이 어두워지도록 말은 팔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기가 잔뜩 꺾이는 얘기였다.---p.177
모두에게 와인을 돌리고 시음하는 동안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여행에만 관심을 보이고 와인에 관해서는 별로 묻지 않았다. 런던 금융계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면서 발표하고 질문에 답하는 일은 질리도록 해봤다. 이런 일에는 그럭저럭 익숙하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사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배당 평가 모형에 대해서 이야기해달라고 하면 차라리 쉽겠는데, 왜 잘 나가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중국에 와서 와인을 팔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다. 진땀 나는 질의응답 시간을 간신히 넘겼다. 살아남기는 했지만 몇몇 중국인 고객들이 공격적으로 나와서 당황스러웠다. 여기에서도 와인을 속물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던 것이다.---p.227
피부는 햇볕에 탔고 지금까지 내가 거친 여행 중에서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이틀을 보낸 뒤라 여기저기 안 쑤시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내 기분은 전혀 달랐다. 뛸 듯이 기뻤고, 날아갈 듯이 황홀했다. 너무 피곤해서 금방이라도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지만 잠시 감상에 젖어 있었다. 나는 기리사키를 으스러질 정도로 힘껏 끌어안았다. 우리는 한바탕 크게 웃어 젖혔다. 나는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기뻤다. 기리사키는 알고 있었다. 나에게는 무엇보다 손실이 나지 않았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리사키 씨가 나에게서 다시 봉투를 받아 자신의 몫인 60000엔을 꺼낸 다음 남은 동전 두 개를 내게 주었다. “캐쉬백!” 그가 웃는 얼굴로 외쳤다. 캐쉬백이든 적립금이든 마음대로 불러도 좋다. 나는 손바닥에 놓인 작은 은빛 동전 두 개를 바라보았다. 나에게 이 동전은 인내의 상징이었다. 내 모험이 전환점을 맞았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기를 바랐다.---p.292
나는 런던 금융가 사무실에서 일했던 5년보다 직접 세계를 돌아다니며 돈을 벌었던 지난 여섯 달 동안 더 많은 도전, 더 많은 성공과 실패, 그리고 더 많은 삶을 만났다. 내 계획이 틀어졌을 때에는 실패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고, 계획이 맞아 떨어졌을 때에는 달콤한 성취감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그 모든 것이 내 돈이었기에 그 기분은 더욱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