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숙으로부터 시작되어 김행숙에게로 흘러들어 간 시적 변이는, 이제 2000년대 한국 시단의 거부할 수 없는 뉴웨이브가 되었다. 김행숙의 시는 또 무엇을 발명 중인가? 김행숙은 지금 미시적인 세계를 타고 넘어서, 시각적인 것 너머의 세계로 다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면성의 시학을 거슬러 나아가는 숨과 표피의 모험. 가령 너무 가까운 세계의 초대 같은 것. 김행숙을 읽는 것은 그래서 시를 만지는 것. 당신과 내가 한없이 김행숙에게 가까워질 때, 김행숙이라는 이름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그래도 이 포옹을 멈출 수 없다면?
이광호(문학평론가,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김행숙의 시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 진화는 동일성을 벗어 나가는 시적 화자의 끝없는 탈피, 타자의 머리와 발바닥과 내장과 핏줄을 동시에 쓰다듬어 줄 수 있는 새로운 애무 방식의 고안, 시의 시간의 바로크적 응집과 투명한 확장을 통해서 진행되고 있다. 시는 누가 보아도 그러한 자리, 어떤 사건에서 피어오른 하나의 이행이다. 그 이행이 환기하는 하나의 세계다. 김행숙의 시는 일상적 일점, 사건의 추락 지점에서 촉발해 시간의 주름을 펼치거나 접음으로써 우리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전체의 풍경 안에 있게 한다. 이것이 김행숙 시가 내포한 윤리적 차원일 것이다. 이를테면 호흡을 하거나 서랍을 열거나 화분을 손에 올리는 그 하찮은 순간에 ‘지구의 골목길 전체’와 저 ‘파도 너머’, ‘호흡기관 너머’의 어떤 호흡까지 아우르는 어떤 총체성으로 우리를 이끌고 가는 순간의 착란, 투명한 분절이 그녀의 시의 이행이다.
그러기에 김행숙의 시들은 시간의 순간적 현현과 그 사라짐을 기리는 하나의 제단, 제사의 형식 안에 있다. 제사를 통해 이별의 파열을 춤추게 하고, 메아리치게 하고, 세 겹 네 겹 주름을 펼치게 하자 시들의 매 순간, 혹은 어떤 형상과 사건들이 늪으로 섞여 든다. 이 우주가 자아를 잃어버리는 동일자들의 작별의 소용돌이에 거한다. 그 후 안개 속에서 거대한 여성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한이 분출하여 세계를 뒤덮는다.
무릇 시인은 시적 화자의 진화를 통해 부재의 번성을 꾀하는 법. 김행숙의 시에는 단수/복수, 안/밖, 전/후, 성스러운 것과 상스러운 것들의 구별이 없을뿐더러 선악의 기준도, 현실/비현실의 경계도 없다. 그것은 시적 화자가 사춘기, 귀신 화자이면서 동시에 흔적 화자, 메아리 화자, 꿈 화자, 반면(反面) 화자, 잠으로 현실을 구축하는 화자, 출몰과 매몰이 자유로운 화자, 감각의 테두리를 버린 화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화자가 ‘물에 빠진 사람’처럼 총체적이 된 우리를, 나라고 생각하지 않는 ‘나’를 순간의 무한 황홀 속에 이륙시킨다.
김혜순(시인,서울예대 문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