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으로 병을 다스리는 것을 ‘식치(食治)’ 또는 ‘식료(食療)’라고 한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식이요법’을 말한다. 『동의보감』은 식치를 가장 잘 다룬 고전이다. 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의학적 접근으로 최고의 음식 처방을 내놓고 있다. 『동의보감』의 탁월함은 음식으로 병을 고치는 양생법을 실제 활용할 수 있도록 제시한다는 데 있다. 오랫동안 선조들이 먹어온 약재와 식재료의 검증된 효능을 바탕으로 몸에 이로운 치유법을 제시한다.
전통 한식의 핵심은 ‘약선’을 통한 ‘식치’이다. 여기서 ‘약선’은 ‘평(平)하게 만든 음식’을 말한다. 음식을 ‘평하게 만든다’는 것은 식재료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성질, 즉 차갑거나 뜨거운 성질을 평한 상태로 바꾸어 인체를 편안하게 다스린다는 의미이다. 주재료가 갖고 있는 유효 성질을 양념이나 다른 부재료와 결합하여 평하게 만들어서 병을 예방하는 식품으로 바꾸는 것이다. 따라서 젊고 건강하게 장수하는 음식은 평하게 만든 음식이다. 약선 음식은 곧 ‘식치’를 완성하기 위한 조리법으로 만든 것이다.
전통 한식은 음양오행의 조화를 이루며 계승되었다. 오늘날 한식은 서구의 식생활이 틈입하면서 그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고대부터 우리 음식은 음양오행이라는 사상적 뿌리를 가지고 발달하였다. 오장육부와 계절, 오색, 오미가 적절하게 배합되고 상생 상극 원리에 입각해 만들어진 음식이 한식이다. 계절마다 오행 오미에 맞게 봄에는 신맛을, 여름에는 쓴맛을, 가을에는 매운맛을, 겨울에는 짠맛을 주로 활용했다.
신맛 → 쓴맛, 쓴맛 → 담백한 맛, 담백한 맛 → 매운맛, 매운맛 → 짠맛, 짠맛 → 신맛으로 이행하는 맛의 오미상생(五味相生)이란 신맛과 쓴맛, 쓴맛과 담백한 맛, 담백한 맛과 매운맛, 매운맛과 짠맛, 짠맛과 신맛이 알맞게 섞이면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아진다는 것이다. 음식을 조미할 때 담백한 맛은 신맛에 의하여, 짠맛은 담백한 맛에 의하여, 쓴맛은 짠맛에 의하여, 매운맛은 쓴맛에 의하여, 신맛은 매운맛에 의하여 맛이 각각 억제된다는 오미상극(五味相剋)에 따라 간을 한다.
추울 때는 뜨거운 생강차 등 따뜻한 성질의 음식을 먹고, 더울 때는 수박 등의 차가운 성질의 음식을 먹는 것이 몸에 좋다. 제철 식품은 천도(天道)에 순응하여 생산되는 먹거리이다. 이들을 활용해서 조리해 먹어야 본상지기(本常之氣)가 유지된다. 어린 싹은 봄철, 참외·수박·오이 등은 여름철, 감·밤·고구마·산약 등은 가을철, 꿩·귤 등은 겨울철 식재료이다.
둥굴레 맛은 달고 독이 없으며 성질은 평하다. 『동의보감』에는 “둥굴레는 태양의 정기를 받은 생약이라서 심신이 피곤하고 허약해지는 것을 보완하며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해준다. 또 간과 신장을 보호하고 정력을 도와 심기를 편안하게 해주는 약이므로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기운이 나며 장수한다”라고 하였다. 둥굴레는 장기를 보하고 정력 증진에도 좋으며 땀나는 것을 조절하고 해열 작용도 한다. 혈압, 혈당을 조절하고 심장의 수축력을 높여 장기간 복용하면 안색이 좋아지고 피가 맑아진다. 둥굴레와 매실을 함께 먹으면 안 된다. 매실이 가지고 있는 신맛이 둥굴레가 가지고 있는 담백한 맛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창포 이숙탕
우리 선조들은 가을과 겨울에 창포 뿌리를 채취하여 털뿌리를 제거한 다음 편으로 썰어 햇볕에 말린 다음 차로, 또 약재로 많이 애용했다. 한겨울에 창포를 따뜻한 차로 마시면 몸이 따뜻해져 감기를 예방할 수 있다. 배를 익혀 만드는 이숙조리법을 활용하면 달콤한 전통 음료를 만들 수 있다. 찬 성질을 가진 배에 생강 몇 쪽을 곁들이면 서로 보하면서 균형이 맞는다. 창포 뿌리와 배와 생강은 모두 가을과 겨울이 제철이기에 함께 먹으면 좋다.
숙지황 돼지갈비찜
감자·당근·표고버섯은 평한 성질을 갖고 있고 단맛이 있어서 숙지황 재료와 훌륭한 조합을 이룬다. 또 돼지갈비의 냉한 성질은 숙지황의 온한 성질과 잘 어우러진다. 여기에 간장, 참기름, 후추 등의 양념을 곁들이면 건강에 좋은 맛있고 담백한 고기찜이 완성된다. 숙지황 돼지갈비찜은 간과 신장에 좋으므로 기가 허하거나 피곤한 사람이 먹으면 좋다.
『동의보감』에는 ‘복령조화고(茯?造化?)’라는 찬품이 기록되어 있다. 백복령, 연실, 서여(마), 검인 각 4냥(160g)을 가루로 만들고, 여기에 멥쌀 2되(5컵)로 만든 쌀가루를 합하여 설탕 1근(640g)을 섞어서 시루에 찐 일종의 시루떡이다. 이것을 떡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말려서 다시 가루로 만든 뒤에 임의대로 물에 타서 마셨다. 복령조화고는 비장을 튼튼히 하고 허함을 보충하는 데 쓰였다.
전통 한식은 주식과 부식이 뚜렷이 구분되며 주식인 밥도 약선적 관점으로 만들었다. 『동의보감』에는 쌀밥, 조밥, 보리밥 등 오늘날 계승된 밥 종류 외에도 다양한 밥을 소개하고 있는데, 묵은 쌀로 지은 진창미반(陳倉米飯), 소갈 치료에 좋은 청량미반(靑梁米飯, 차조), 폐병 치료에 좋은 서미반(黍米飯, 기장쌀), 오장을 윤택하게 하는 호마반(胡麻飯, 검은깨), 많이 먹으면 찬 기운이 성한다는 직미반(稷米飯, 피쌀), 대나무의 열매로 지은 죽실반(竹實飯) 등 치료식에 가까운 약선 밥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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