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증거로 같은 일을 겪었을 때 우울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우울해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우울한 감정에 사로잡혀 밑바닥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도 있지만, 잠시 우울해하다가도 금방 털고 일어나는 사람도 있다. 결국 우리의 기분이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이유는 안 좋은 일 그 자체가 아니라는 뜻이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이 그 자체만으로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건이나 상황 그 자체에는 그럴 힘이 없다. --- p.19
‘나쁜 인상을 주면 안 된다’, ‘상처 주는 말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말과 태도에도 남들의 몇 배로 신경을 쓰고,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이면 ‘나 때문에 화난 건 아니겠지?’, ‘혹시 저 사람이 상처 받을 만한 말을 한 건 아닐까?’ 하며 노심초사한다. 이런 식으로 상대방에게 너무 신경 쓰기 때문에 금세 지치고 대인관계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인간관계가 피곤하다는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나 아직 친하지 않은 사람과 있으면 나의 어떤 모습을 드러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경직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 p.37
무책임한 사람이라면 난감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이런 내가 싫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하면서 스스로를 탓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직장에서 실수를 하거나 실례되는 말을 해서 상대방이 불쾌해하더라도, ‘에이, 괜찮아’, ‘하는 수 없지, 뭐’ 하면서 뻔뻔하게 나오거나 전혀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자기혐오는 더 나아지고자 하는 마음, 즉 향상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의도에서 비롯되었더라도 자신을 혐오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므로 자기혐오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 p.49
우울함을 자주 느끼는 사람은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어째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거야?’라는 식으로 원망하거나, ‘난 왜 늘 이 모양일까?’, ‘저 사람은 왜 항상 저런 식으로 말하는 거야?’라며 성급한 일반화를 하는 경향이 있다. ‘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로 바꾸는 것, 그리고 ‘항상’이라고 일반화하지 않는 것이 요령이다. 나를 우울하게 한 사건에 대해 적을 때 이를 실천해보자. ‘난 안 될 거야’라는 비관적인 인식을 ‘다 잘 될 거야’라는 낙관적인 인식으로 바꾸는 자세도 필요하다. --- p.67
우리는 자신이 유능한지 아닌지, 행복한지 아닌지 알고 싶을 때 완전한 타인보다 가까운 주위 사람과 비교한다. 비슷한 입장인 사람이 아니면 비교 기준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창업 성공 신화를 쓴 유명 인사, 특별한 재능이 빛나는 인기 배우, 누구나 알 만한 운동선수와 비교하는 건 애초에 재능도 상황도 너무 다르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질투의 대상도 가까운 친구나 동료가 될 수밖에 없다. --- p.86
대인불안이 강하면 조심성도 많다. 그 신중함 덕분에 상대방의 심리 상태에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다. 그래서 상대방의 기분을 잘 이해하고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 반면에 대인불안이 별로 없으면 신중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심리 상태에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상대의 기분을 잘 헤아리지 못한다. --- p.110
인간이란 원래 ‘다면적인 존재’다. 진지할 때도 있지만 실없이 행동하거나 떠들고 싶을 때도 있다. 냉정하고 침착할 때가 있다면 감정적일 때도 있다. 싸늘하게 가라앉을 때도 있고 열정적으로 불타오를 때도 있다. 진중한 면이 강한 사람도 때때로 모험을 하고 싶어진다. 이런 모순을 품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 p.150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면 아무리 즐거운 만남이라도 허울뿐인 이야기밖에 나눌 수 없다. 이런 사람과 서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깊은 관계가 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있어도 외로움을 느낀다. 이렇게 외로움을 느낀다면 과감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자신을 드러내도 될지 불안을 품고 외로워하고 있을 것이다. 누구나 상대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주면 기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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