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나서야 건강을 챙기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전쟁이 터지고 나서야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금, 전쟁을 이야기하는 이유다.
나는 진심으로,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한다. 이를 위해 이 책을 읽으며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되었으면 한다. 그것이 전쟁을 온몸으로 경험한, 역사의 산 증인인 내가 사랑하는 손주 세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임무라고 믿는다.
또 하나, 이 땅에는 나처럼 가장 찬란한 청춘의 날들을 고스란히 전쟁터에서 보낸 이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누구든 한 번쯤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큰 대접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라를 위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희생도 불사했던 참전 용사들이 외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단 소식을 들을 때마다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그저, 이들의 존재를 당신이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뿐이다.
--- p.11~12
그 전우는 그 큰 낫을 들고는 서슴지 않고 성큼성큼 시체가 놓인 자리로 걸어갔다. 곧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낫을 들어 올렸다. 두세 번 정도 낫으로 목을 내리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낫을 내리칠 때마다 “악!” 하며 괴성을 질렀다.
이윽고 시체의 목을 다 자른 그는 “으윽”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일어섰는데, 그러고 나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한참 동안을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었다. (…)
혼란스러운 감정에 휩싸여 있을 때, 다시금 대대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자, 이제 누가 이 시체의 머리를 들고 갈 것인가?”
--- p.45~46
나는 잉어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돌아갈 생각을 하니 한껏 기분이 들떴다. 좀 더 잉어를 가져가고 싶다는 욕심에 떠내려오는 잉어를 닥치는 대로 잡으며 강 위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던 그때였다.
“저게 뭐지?”
잉어보다 훨씬 큰 무언가가 떠내려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으악!”
다름 아닌 중공군 시체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한두 구가 아니었다. 중공군 시체가 점점 내가 있는 곳을 향해 무더기로 떠내려오고 있었다.
--- p.109
총알 몇 방 맞고 죽은 이들은 차라리 행운이었다. 포탄에 맞은 이들은 아예 공중에서 산산조각 부서졌다. 거기에 있는 시체 대부분이 원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수준으로 흩어져 있었다. 머리, 다리, 몸통, 창자가 갈기갈기 찢어져 어지러이 나뒹굴고 있었고, 바닥에는 핏물이 흥건했다. (…)
“차폐하라! 차폐하라!!”
누군가가 외쳤지만 이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전투하기 전에 파놓았던 교통호가 포탄 세례로 다 무너져 차폐하기가 너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비 내리듯 날아오는 포탄을 어떻게든 피해야 했다. 나는 그 조각 난 시체더미 아래 몸을 숨겼다.
--- p.127~128
나는 벌게진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이 솟는 곳을 간절히 찾았다. 그러고는 그곳을 향해 죽기 살기로 기어갔다. 물가에 맹감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이파리를 하나 따서 물잔처럼 오므려 물을 받았다. 그대로 물에 입을 대는 순간, 내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아, 저 사람들은….’
개구리처럼 엎드린 채로 죽어 있는 아군들의 시체가 물가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나처럼 부상을 입고 피를 많이 흘린 상태에서 물을 먹었다가 그 자리에서 죽어버린 이들이었다.
‘지금 이 물을 마셨다간 나도 저렇게 죽겠구나.’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는 그 시체들을 보며 물을 한 모금 입에 넣고 우물우물했다가 뱉었다. 그렇게 세 번 정도 물을 머금고 뱉었다가 그대로 쓰러져 누웠다.
--- p.165~166
“준식아, 엄마다. 먼젓번 편지를 보내고 아무 연락이 없어 얼마나 우리를 원망했느냐. 네가 퇴원하고 보충대로 떠나는 날에야 우리가 병원에 도착했단다. 해남에서 울산까지 가는 게 보통 고생이 아니었다. 병원에 도착했더니 방금 떠났다고 하기에 다시 집으로 내려왔다. 아버지가 너무나 서운해하고 안타까워하셨단다.”
어머니의 편지를 보니 역시나 그날 내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부모님과 아깝게 엇갈린 것이 몹시 아쉬웠다. 그 먼 길을 얼마나 고생하며 오셨을까. 그렇게 겨우 왔는데 다친 아들 얼굴도 못 보고 돌아가셨다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
알고 보니, 우리 부모님은 어떻게 해서든 나를 제대시켜볼까 싶어 고향에서 황소 한 마리를 팔아서 그 큰돈을 싸 들고 오셨다고 했다. 음식도 많이 싸오셨는데, 내가 없으니 그곳 환자들에게 전부 나누어주고는 빈손으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왈칵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 p.180~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