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않던 일이었다. 그곳에 모인 엄마들 틈에서 뜻밖의 동지애를 느끼면서 위로를 받게 될 줄 말이다. 불과 몇 달 사이, 난 지난 35년 동안 내 삶의 울타리 안에 존재하지 않았던 ‘자폐’ 혹은 ‘장애’라는 단어에 급속한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 이건 뭐지? 내 삶이 남들 다 다니는 큰길에서 벗어나 곁길로 들어서 버린 듯한 이 느낌은? 멈출 수도 없고 되돌아갈 수도 없는데, 난 어쩌다가 이 당혹스러운 꼬부랑길로 들어온 것일까? 이 길 끝에는 도대체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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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한 바람 탓에 탑 꼭대기에 오래 있긴 힘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그런데 그곳에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기쁜 일이 일어났다. 탑에서 내려오자마자, 어두운 밤에 불빛으로 환해진 에펠탑을 올려다보던 겸이가 두 눈을 반짝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기 또 가까? 에베이터 또 타까?”
엘리베이터라는 발음이 안 돼서 ‘에베이터’라고 하긴 했지만, 먼저 “저기 또 갈까?”라고 ‘말을 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여보, 지금 겸이가 한 말, 들었어요?”
“응, 저기 또 가자고 하네. 세상에! 이런 말한 거 처음 아니야?”
“겸이야, 저기 또 가고 싶어?”
“저기 또 가까? 에피타, 에피타.”
“그래, 겸이야! 우리 겸이, 진짜 좋았구나! 다음에 또 꼭 다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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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 지치고, 아이의 ‘자폐 가능성’이라는 충격에 이중으로 지친 나에게, 말은 못하지만 분명 마음이 답답하고 힘든 겸이에게, 무거운 책임을 진 가장으로서 지혜롭게 앞길을 헤쳐 나가야 할 남편에게, 앞으로의 긴 인생길을 함께 걸어갈 가족으로 묶인 둘째 민이에게. 마냥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의 보따리들이 필요했다. 그 보따리들이 우리의 모나고 뾰족해진 곳들을 감싸 주길 바랐다. 어긋나고 끊어진 마음들을 이어주길 바랐다. 우리의 여행지들은 그 선물 보따리들을 장만하러 떠난 장터에 다름 아니었다.
분수를 보며 아이가 자주 행복해해서 기뻤다. 사소한 놀이만으로도 자꾸 웃어서 좋았다. 작지만 폭신한 보따리들을 주섬주섬 챙겨 담으면서, ‘떠나오길 잘했구나!’ 생각하는 날들이 쌓여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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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이를 키우며 나는 아이가 보여 주는 작은 발달과 진보에도 감탄하고 감사하게 되었다. 보통 아이들은 때가 되면 누구나 하는 일을 아이는 때맞춰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하루면 해낼 일을 우리 아이는 한 달 만에야 이룬다. 느릿느릿 거북, 꼬물꼬물 달팽이 같다. 그러다 보니 그 과정 하나하나가 자세히 들여다보인다. 어렵게 첫 발걸음을 떼고, 때로는 고비를 넘고 그러다가 마침내 정상에 오르
는 과정들. 그 어느 것 하나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 p.127
겸이의 마음에 갑자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이 분수 저 분수 구경하느라 온통 정신이 들떠 있는 줄 알았는데, 왜 갑자기 엄마에게 꽃을 주고 싶어졌을까? 다른 아이들처럼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도 못하고, 자기감정을 분명한 말로 전달하지도 않는 아이인지라,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지 참 답답할 때도 많았는데……. 겸이가 건네준 민들레꽃 한 송이는 이런 내 마음을 부드럽게 위로하는 치료제 같았다.
“엄마, 나 괜찮아요. 잘 자라고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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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마음으로 처음 참석한 아침 기도회. 피아노가 놓인 작은 거실에 사람들이 둘러앉아 기도하고 싶은 내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기도제목으로 내놓은 것들이 내 기준으로는 참 엉뚱하고 사소했다.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정원 나무들이 예쁘게 꽃을 피워서 감사하고 싶어요.”
“지난주에 읽고 싶었던 책을 다 읽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난 ‘뭐, 저런 사소한 일 따위를 감사하다고 하는 거야? 참 별나기도 하네’ 싶었다. 나 같으면, 혹은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창피해서 저런 기도제목은 못 내놓을 텐데. 별로 중요하지도 않아 보이는 것들을 스스럼없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외국인들이 신기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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