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으며, 이제는 부산사람으로 살고 있다. 마흔을 넘어서 배운 사진으로 시간을 그려가는 일과 천천히 걷는 걸 무엇보다 즐긴다. 산을 좋아하지만 산보다는 영화를, 영화보다는 여행을, 여행보다는 배부르게 먹는 것을 좋아하며, 그것을 행복이라 믿으며 살고 있다. 현재 「가톨릭 부산」에 ‘지금, 여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산문집으로 『선물』 『그대가 있어 행복합니다』를 냈고, 『소근소근, 이렇게 설명하세요』 『소근소근, 이게 정말 궁금했어요』에 삽화를 그렸다.
신혼시절, 도무지 선물이란 걸 할 줄 모르는 남자에게 선물을 해달라며 조르곤 했었다. 가난했으니 큰 걸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꽃 한 송이라도 마음이 담긴 것이면 충분했다. 내가 어찌나 집요했던지 이 남자, 장미를 사왔다. 검붉은 색이었다. 고맙지만 다음부터는 검붉은 색을 사지 말라고 당부했다. 꽃이라면 싫어하는 게 거의 없지만 검붉은 장미만은 싫었다. 아주 딱 싫었다. 그러나 남자는 생일에도 검붉은 장미였고 결혼기념일에도 검붉은 장미였다. 기어이 짜증을 내면서 왜 하필이면 검붉은 방미냐고 했더니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이라나 뭐라나.
검붉은 색깔만 아니면 된다고 해도 끝까지 검붉은 장미를 사오는 남자에게 선물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거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설명하고 바가지도 긁고 구슬려도 봤지만 이해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먼저 지친 내가 이제 꽃은 그만두자고 했고 그것이 남자에게 받은 마지막 선물이 되었다. 벌써 10년하고도 훨씬 전의 일이다. ---「셋, 마음 선물」 중에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건드리는 걸 싫어하는 지인이 있다. 예순을 목전에 둔 지인은 일생 그랬다고 했다. 얼마전 누군가가 “선생님!” 하면서 뒤에서 안았다고 했다. 참 좋았다고. 사람이 사람을 안아주는 일이 그렇게 따뜻한 일인 줄 몰랐었다며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 --- 「쉰여섯, 안아주는 일」 중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귤을 받았다. 처음 먹어본 달고 시고 새콤한 그 맛은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주신 그 크리스마스 선물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의 부(富)는 고작 그런 것일 만큼 부잣집 딸로 커보질 못했다. 결혼을 했으나 농부의 넷째 아들인 남자를 만나서 빚 없는 것을 부자로 알고 지금까지 산다.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외모로 즐거워 본 적도 없다. 해서 단 한 번도 주목을 받거나 중심이었던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탁월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남 앞에 서서 시선을 받아본 적이 없고 박수를 받았던 적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다가 숨이 턱턱 막히는 문장을 만나게 되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책의 앞쪽으로 돌아와 작가의 프로필을 다시 보게 되지만 그러지 못하는 내 능력에 좌절하지는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기에 즐기고, 즐기는 동안 행복하니 거기까지다. 그러니 절망할 일이 없다. 그래서 발전이 없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더 솔직한 속내는 욕심도 낼 만해야 내는 것이고 안되는 일에 공연한 기운 쓰지 말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