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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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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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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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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년 0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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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4.79MB ?
ISBN13 9788934954620

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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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록 속에서 인간을 읽는다!

태종은 운명을 거부한 현실론자인가?
세종은 양녕에게도 ‘해동의 요순’이었을까?
세조의 두 얼굴은 무엇을 향한 염원인가?
연산군은 유교 윤리에 저항한 자유인인가?
중종의 냉철함은 극도의 절제력인가, 공포심인가?
광해군은 저주를 혹신한 패륜아일까?
인조는 청나라와의 정신적 대결에서 승리했는가?
영조는 경종의 죽음에 앞에서 결백할까?
정조의 천재성은 타고난 것인가 만들어진 것인가?
고종은 풍전등화의 기로에서 무엇을 의존했을까?

태종은 자신의 판단과 현실적 감각에 의한 계산된 행동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쟁취해냈다. 그러나 끝내 부왕의 진정어린 애정과 신뢰를 확인하지 못하자 마침내 그토록 비판해마지 않던 불교에까지 매달렸다. 결국 태종은 현실론자이면서도 완전한 현실론자가 되지 못했다. 부왕의 진정어린 애정과 신뢰를 끝내 확인하지 못했기에 그의 제1차 왕자의 난이 진정한 대효의 행동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힘들었다. 냉철한 태종도 ‘운명’과 ‘아버지’의 위력 앞에 할 말을 잃고 할 바를 잃는 때가 있었던 것이다.

연산군이 총애하는 여인들, 흥청과 함께 처용무를 공연하며 곧잘 야제를 지냈다. 당시의 야제란 원통하게 죽어 구천을 떠도는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지내는 제사였다. 야제를 지낼 때는 무당이 원혼을 불러내 그 사연을 들었는데, 연산군 스스로 무당이 되어 죽은 자의 원혼을 불러낸 것이었다. 연산군은 무당굿을 좋아하여 스스로 무당이 되어 노래하고 춤추었는데 그런 때는 ‘어머니 폐비 윤씨가 빙의되는 형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궁중에서는 연산군에게 폐비 윤씨의 원혼이 빙의되었다는 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중종은『고려사』중 최충수의 강압에 의해 태자비를 폐출해야 했던 신종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연이어 처량한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폐출된 태자비가 오열했고, 신종은 물론 왕후와 태자를 비롯한 모든 궁중사람들도 눈물을 흘렸다는 부분에서는 복받치듯 울먹거리기까지 했다. 속울음을 삼키느라 중종은 책을 제대로 읽지도 못했다. 이날의 기록을 제외한다면 처량한 한숨을 내쉬며 울먹이는 중종의 모습은 『중종실록』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중종은 오랫동안 가슴속 깊이 숨겼던 본심을 자신도 모르게 드러낸 것이었다. 신종은 사실상 중종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실록에 의하면 남곤은 늘 ‘조광조 등이 총애를 받기는 하지만 임금의 마음을 쉽게 바꿀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한다. 조광조가 대사헌으로 있던 당시 겉으로 드러난 중종의 신임은 말할 수 없이 깊었다. 당시 사람들은 누구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광조에 대한 중종의 신임을 꺾을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남곤은 그 신임이 어떤 기반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다. 조광조에 대한 중종의 신임은 근본적으로 반정공신들에 대한 공포심에서 비롯되었다. 중종은 조광조가 반정공신들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주기를 바랐다. 중종은 조광조에게서 안전과 평화를 갈구했던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종이 조광조에게서 안전이나 평화가 아닌 위협이나 공포심을 느낀다면 그의 신임은 한순간에 날아갈 수 있었다. 남곤이 ‘임금의 마음을 쉽게 바꿀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것은 이런 중종의 마음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다.

광해군은 김개시의 저주 공작을 사실로 믿었으며 그 연장선에서 유릉 저주까지도 확신했다. 그 결과 광해군은 인목대비 김씨를 10악 대죄를 범한 흉악범으로 간주해 후궁으로 강등하고 서궁에 유폐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광해군이 유릉저주사건을 확신하고 끝내 인목대비 김씨를 후궁으로 강등한 사건은 근본적으로 저주에 대한 혹신 때문이었다. 인목대비 김씨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저주의 영험함에 대한 공포가 혹신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런 광해군을 잘 아는 김개시가 저주사건을 공작하여 성공시켰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광해군은 자기 확신과 포용력 그리로 용인술이 부족한 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인조는 소현세자가 죽은 당일, 병중임에도 불구하고 세자의 빈소로 갔다. 세자의 죽음을 보며 인조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혹 자신의 왕위를 빼앗을지도 모를 정적이었으니 잘 죽었다고 통쾌해 했을까? 아들의 죽음을 막지 못한 자신의 무능을 원망했을까? 아니면 아들이 죽게 된 원인을 청나라에 돌리며 이를 갈았을까? 소현세자의 직접적인 죽음은 병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면 실제 소현세자를 죽인 사람은 인조 본인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소현세자가 병에 든 이유는 인질로 잡혀갔기 때문이고, 인질이 된 이유는 인조의 ‘존명사대’ 때문이었다. 만약 이렇게 생각했다면 인조는 지난날의 존명사대를 반성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했다. 그렇지만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세자가 친청파로 변절했기에 하늘이 벌을 내린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인조는 큰아들을 죽였다는 죄의식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고, 고집스럽게 지켜온 존재근거도 지킬 수 있었다.

왕세제 연잉군(뒷날의 영조)은 왜 강압적으로 경종에게 인삼을 쓰게 했을까? 당시 그의 마음은 경종을 꼭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그 반대의 마음이었을까? 영조는 왕위에 오른 후 자신의 결백을 끝없이 주장했다. 자신은 경종을 살해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왕세제에 책봉된 것은 대비의 명령 때문이었고, 목호룡의 고변은 날조된 것이었으며, 경종이 죽은 것은 이공윤의 처방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과 경종 사이는 돈독한 형제 사이였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영조의 결백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영조가 왕세제로 책봉될 때부터 흑심을 품었다고 생각했다. 임인년의 옥사 때, 왕세제 연잉군이 백망을 사주해 경종을 살해하려고 한 것도 사실이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경종을 독살하려고 게장과 생감을 올렸으며, 마지막에는 인삼차를 강압적으로 올렸다고 믿었다. 상황으로 보면 충분히 그렇게 믿을 수 있었다. 경종의 복수를 하겠다고 거병했던 영조 4년(1728)의 이인좌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국왕으로서 영조의 일생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한 일생이었다.

고종은 을미사변 이전까지는 항상 누군가에 의지해 살았다. 12살에 왕이 되었을 때는 대왕대비 신정왕후 조씨가 수렴청정을 했고, 그 후로는 흥선대원군이 10년간에 걸쳐 섭정을 했다. 흥선대원군이 하야한 이후로는 명성황후 민씨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동안 결정적인 판단력과 추진력은 고종 자신이 아닌 신정왕후 조씨, 흥선대원군, 명성황후 등에게서 나왔다. 그러나 고종이 황제에 오른 후에는 그럴만한 사람이 없었다. 고종이 총애하는 엄 상궁은 명성황후에 비견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고종은 이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했다. 그 결과에 대해서도 물론 스스로 책임져야 했다. 이것이 두려운 고종은 결정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때마다 무당이나 술사들에게 의지했다. 자신감이 약한 고종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이다. 고종은 황제가 되기 전에도 무당이나 술사들을 좋아한 왕이었다. 그런 성향은 을미사변 이후 더욱 심해졌다. 이런 고종이라 황제가 되어서도 사기꾼들에게 어이없이 당하는 일도 있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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