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이 생겨난 이야기, 동물과 식물이 생겨난 이야기, 인간이 생겨난 이야기, 물과 불이 생겨난 이야기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이 처음 생겨난 이야기’는 대부분 서양의 『성경』 내용 가운데 「창세기」의 이야기랍니다. 세상이 말씀으로 창조되고, 흙을 빚어 인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럼 우리에게도 세상이 처음 생겨난 이야기가 있나요?”라는 질문을 할 거예요. 물론 우리나라에도 세상이 처음 생겨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답니다. 어둠 속에서 하늘과 땅이 생겨난 이야기, 우리나라 최초 신이 어떠했는지, 물과 불의 근원을 찾는 이야기, 인간이 생겨난 이야기, 나중에 나타난 또 다른 신이 인간 세상을 차지하게 되는 이야기 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p16~p17
태초에 인간이 사는 세상은 혼란스러웠습니다. 하늘에 두 개의 해와 달이 있어 사람들은 더위와 추위 그리고 굶주림으로 힘들어합니다. 귀신과 산 사람 구분 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새와 짐승, 꽃과 나무도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귀신과 이야기를 하고 자연의 생물과 이야기를 나눈 다면 어떨 것 같나요? 재미있을 것 같다고요? 그런데 천지왕이 보기에는 인간 세상이 혼란스럽게 느껴졌나 봐요. 무질서한 인간 세상이 신에게는 큰 걱정거리였을 겁니다. (중략) 천 근짜리 활과 백 근짜리 화살로 대별왕은 뒤에 오 는 해를 쏘아 그것이 부서져 동쪽 하늘의 별을 만들고, 소별왕은 뒤에 오는 달을 쏘아 부서져 서쪽 하늘에 수천 개의 별이 생겨났습니다. (중략) 대별왕 소별왕 이야기에서는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문제를 해 결하는 영웅으로서의 면모와 삶의 치열한 도전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 p29~p33
독특한 이름을 가진 가믄장아기. ‘감다’라는 말은 ‘석탄의 빛깔과 같이 짙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가난하여 검은 나무그릇에 밥을 얻어먹고 살아야 했던, 그래서 ‘가믄장아기’라고 이름 지었던 한 아이의 어둡고 슬픈 삶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가믄장아기의 삶은 태어났을 때처럼 슬프고 처량하게 끝나지 않습니다. 통쾌하고 시원한 역전의 삶을 보여줍니다. (중략) 언뜻 이 대목을 보면 부모님의 모습이 매정하기도 하고 가믄장아기의 모습이 철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옛이야기 속 집을 떠나는 장면은 늘 ‘성인식’의 의미와 통합니다. 누구나 성장하면 집을 떠나 한 사람의 어른으로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순간이 오지요. 특별히 신이 된 아이, 가믄장아기의 이야기니 성장통을 통해 자신을 세워 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 p99~p123
이렇게 장한 일을 해낸 오늘이는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아 원천강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사계절을 돌보는 신, 시간의 여신이 됩니다. (중략) 오늘이 이야기에는 사계절이라는 아름다운 시간의 흐름이 담겨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은 ‘오늘’이라는 시간이 모여 만들어지지요. 오늘을 소중히 여기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갈 때 아름다운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살아온 시간(과거),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현재), 우리가 살아갈 시간(미래), 오늘이는 이 모든 시간이 멈추어진 것이 아니라고 알려 줍니다. 귀를 기울여 보세요. 오늘이는 지금도 우리의 아름다운 사계절을 지켜 주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놓칠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며 원천강 어딘가에서 가만히 알려 주고 있을 것입니다. - p124~p126
“아이고! 어머니. 아버지에게 속고 노일저대에 속았으니 마음 이 얼마나 시립니까? 물에 그리 오래 계셨으니 몸이 얼마나 시 립니까? 이제는 부뚜막에서 하루 세 번 더운 불을 쪼이며 사십시오.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이 되어 집안 식구들이 밥 잘 먹고 잘살도록 보살피며 사십시오.” 여산부인은 이 말을 듣고 나는 조왕신이 될 테니 너희도 집을 지키는 신이 되어 다시는 못된 자가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첫째는 동쪽, 둘째는 서쪽, 셋째는 남쪽, 넷째는 북쪽, 다섯째 는 집 중앙, 여섯째는 뒷문을 지키는 신이 되었습니다. 녹디생인은 누구나 드나드는 대문 앞을 지키는 문전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남선비는 정낭을 지키는 신이 됩니다.(중략)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지켜 주는 든든한 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되는가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 p168~p171
옛이야기에 서천서역국만큼 자주 등장하는 장소가 있을까요? 서천서역국은 옛이야기의 ‘핫플레이스’입니다. 서천서역국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찾는 곳입니다. 서천서역국으로 향하는 길은 많은 고통이 따르고, 그곳에 다다르지 못하도록 유혹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즉 서천서역국은 간절한 마음과 인내가 있어야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누군가는 부모님을 살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복을 늘리기도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꽃이 있는 서천서역국. 그곳에 있는 서천꽃밭은 할락궁이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할락궁이는 많은 이야기의 조연으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옛이야기들의 클라이맥스에는 할락궁이가 키우는 꽃들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중략) 우리 신화에서 항상 주연을 빛내는 조연으로만 출연한 그는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요? - p178
이승과 저승을 종횡무진 누비는 강림의 활약을 보며 인간은 죽음이라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지만 죽음 너머에 새 삶이 존재하고 죽음을 통해 환생이라는 새로운 삶이 주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죽음의 경계 앞에서 늘 두려워하는 모든 인간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전해 줍니다. 죽음도 삶의 일부이며 누구나 겪게 될 일이니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라고 말이지요. 또 착하게 살면 그만한 보상을 받고 악하게 살면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저승의 공평성도 보여 줍니다. 이는 힘든 세상이지만 착하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 p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