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는 일을 계속해야 하는 건 참으로 고역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 ‘배운다’는 의무를 ‘논다’라는 가치로 전환할 수 있으면 아이들은 자진해서 ‘배우는’ 일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는 방법은 어른들이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배우는 것은 싫어합니다.”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단순히 “그렇게 말하지 말고 ‘논다’는 기분으로 배우면 되지 않겠니?”라고만 대답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아이는 ‘노는 기분으로 배우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방향으로 어른들이 이끌어 줘야 합니다.
이게 바로 어른의 가르치는 능력이자, 교사의 수업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한 번 물었어요.
“‘놀다(아소부)’와 ‘배우다(마나부)’라는 단어를 보고, 또 다르게 생각나는 게 있습니까?”
그러자 다른 학생이 “둘 다 히라가나 세 글자로 마지막에 ‘부’가 붙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곧바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훌륭한 지적이야! 정말 그렇구나!”
이런 점을 깨닫는다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지요.
왜냐하면 당연한 것, 상식적인 것은 무시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문을 품는 일에서부터 생각의 폭이 크게 확장되는 법입니다.
_18-19쪽?‘배우는’ 것은 노는 것이고 ‘노는’ 것은 배우는 것이다 중에서
그래서 그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20회 학생(1968년 졸업)이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고전 공동 연구’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하게 한 것이지요.
각 반의 학생 3-5명을 한 조로 했고, 테마는 각자 자유였지요. 1학기 중에 테마를 정한 후 여름 방학 동안 조사를 끝내고 9월 말에 리포트를 제출하는 형태로 진행했습니다.
학생들이 좌충우돌하면서 하나하나의 주제에 대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계속 연구한 결과, 최종적으로 걸러진 테마는 실로 다양했습니다.
[논어에 등장하는 인물의 평론 및 그 정신], [호조키에 관한 무상관] 등에서부터 [이세모노가타리에 등장하는 시의 테크닉], 그중에는 [도연초 비판]이라는 것까지 있었으니까요.
더 나아가 모두 55개에 이르는 이 논문들을 학생들이 직접 책으로 엮었습니다.
아무튼 이런 힘든 일을 시켰는데도 탈락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 정말로 기뻤어요.
_30-31쪽?‘배우는’ 것은 노는 것이고 ‘노는’ 것은 배우는 것이다 중에서
나카 간스케의 소설인 《은수저》. 이 200쪽짜리 얇은 문고판을 3년에 걸쳐 읽어 가는 사이 실로 다양한 공부를 했습니다. 국어 수업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에 연날리기 장면이 나오면 밖으로 나가 직접 연을 날리고, 막과자가 등장하면 교실에서 실제로 먹어 보는 겁니다.
독특한 수업인 건 확실하지만, 수업을 시작했을 때는 당연히 ‘슬로 리딩’이라는 단어도 없었고, 저 역시 ‘슬로 리딩’의 선구자라는 의식은 조금도 없었어요.
단순히 교과서를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자유롭게 수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지요.
제가 독서 중심의 수업을 하고자 마음먹은 이유는 어떻게든 학생들의 마음에 평생 남을 수 있는 살아 있는 양식이 되는 수업을 하고 싶다는 커다란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_44-45쪽?‘2장 모든 학문의 기초는 국어’ 중에서
지금까지 ‘천천히 읽고, 가능한 한 많이 읽는다’는 점의 효과를 설명해 왔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국어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없지요. 사실 국어 실력의 열쇠가 되는 것은 ‘쓰는’ 습관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은수저 연구 노트]의 공부법을 다시 한 번 살펴보지요. ‘읽는’ 작업만으로 끝나는 것은 ‘통독’과 ‘어구의 설명’ 정도이고, 나머지 ‘주제’와 ‘내용 정리’, ‘주의할 문구’, ‘단문의 연습’, ‘감상’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참고’까지, 전부 어떤 식으로든 연구 노트에 문장을 적어 넣어야 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한 학생들에게 제시한 월 한 권의 독서 과제도 단순히 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한 권에 대해 원고지 2매 정도로 줄거리와 내용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좋았던 부분, 감명 받은 표현, 혹은 문장 중에 언급된 사고방식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등에 대해서도 아이들에게 적게 했어요.
왜 이렇게까지 ‘적는’ 행위에 연연했을까요? 그 이유는 쓰는 행위를 통해, 읽기만 해선 좀처럼 습득할 수 없는 ‘판단력’, ‘구성력’, ‘집중력’이 키워지기 때문입니다.
_65-66쪽?‘2장 모든 학문의 기초는 국어’ 중에서
지금도 종종 사람들에게 받는 질문이, “그런 식으로 《은수저》 1권 수업을 하는 것에 대해 학부모들이 반대하거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습니까?”라는 겁니다. 다행히도 학부모와 학생, 주변 동료들을 포함해 은수저 수업을 반대한 사람은 한 분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새벽 2-3시까지 준비해야 하는 힘든 작업을 구태여 하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당시에는 종이나 잉크의 질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복사물이 얇아집니다. 그래서 “그렇게 읽기 힘든 복사물로 수업을 하면 우리 아이의 눈이 나빠질 텐데요.”라는 항의가 딱 한 번 교장실로 들어온 적이 있었습니다.
_89쪽?‘3장 가르치는 과정에서 알게 된 배움의 본질’ 중에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