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심심할 때 가볍게 뒤적여볼 수 있는 책이다. 핵심을 지적하는 방식이 부담 없고 편안하기 때문이다. 파스칼의 생각과는 반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집중력과 에너지를 요구하는 ‘심각한 문제들’과 아무런 집중력도 에너지도 요구하지 않는 쓸데없고 ‘하찮은 문제들’을 굳이 대립시킬 필요는 없다. 사소한 것이 생각의 실마리를 던져주기도 하고, 하찮은 것이 진지함으로 귀결되기도 하고, 심오한 것이 피상적인 것에서 비롯하기도 한다. 물론 늘 그렇다거나 반드시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누구나 저지르는 멍청한 짓거리 속에 언제나 빛나는 철학이 담겨 있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p.006
이 체험의 요점은 이 ‘안-밖 놀이’, ‘부르기-듣기 놀이’를 얼마나 오래 지속하느냐에 있다. 당신은 자신의 이름을 익히 알고 있지만 스스로를 타인으로 느끼지 않고서는 자신에게 그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 즉 이러한 속성을 지닌 이름의 기이함을 가능한 한 오랫동안 실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평소에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거의 부르지 않는다. 일정한 시간 차를 두고, 당신 이름을 계속 불러보라. 가끔은 절규하듯이 외쳐보라. --- p.019
당신이 생각하는 세계와 그 시한부 세계 간의 거리와 차이를 실감하면 할수록, 당신은 우리 인간에게 아득한 과거와 미래의 전망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더욱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20분이라는 운명의 시간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당신은 정말로 모든 것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 비슷한 감정을 어렴풋이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21분이 되었을 때, 당신은 이 근거 없는 공포로부터 시원하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 당신은 이 세상이 아무 일 없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안도감을 애써 만끽하려 할 것이다. ---p.031
좀 웃기지만, 커다란 컵에 물을 준비하고서 변기 위에 앉아라. 오줌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때 물을 마시기 시작하라. 가능하면 입을 떼지 말고 한 번에 쭉 마셔야 한다. 너무도 황당한 느낌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의 거시기를 통해 빠져나가는 물과 당신의 입을 통해 들어오는 물이 거의 한 줄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때 당신은 지금껏 상상조차 못 해본 특이한 신체구조를 갑자기 머릿속에 그려보고 또 느껴보게 될 것이다. 그 상상화 속에서, 당신이 마시는 물은 당신의 방광에서 금방 빠져나온 물이다. 당신은 식도와 요도가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위장과 방광 역시 곧장 연결되어 있다는, 말도 안 되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생리학을 단 몇 초 만에 고안하게 된다. ---pp.056-057
오로지 달리는 데에만 집중하다 보면, 당신은 점점 자신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즉 움직임과 멈춤 사이의 경계가 없어진다. 다리를 아무리 크게 벌리려고 해도, 아무리 규칙적으로 달리려 해도, 숨을 아무리 크게 내쉬려 해도 소용이 없다. 모든 것이 부동에 사로잡혀 있다. 이때 당신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움직임 속에 부동성이 존재하고, 달리기 속에 정지가 자리한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위반 속에 존경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당신은 망자들에게 누를 끼치는 것이 아니다. 망자의 이름은 물론 예우 따위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무덤 사이를 뛰어다니는 당신은, 심지어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 ---p.094
이름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맛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맛에 대한 태도나 맛을 생각하는 자세는 분명 변할 것이다. 이름 모를 음식들을 맛볼 때, 우리는 분명 더 많은 의혹을 품게 되고 더 많은 주의를 하게 되고, 더 조심스러워한다. 반대로, 일단 이름을 알게 된 후 음식을 먹는 것은 그 이름의 한 조각을 먹는 것이고, 언어의 부스러기들을 삼키는 것이고, 어휘 토막들을 소화시키는 행위다.
그렇다면 우리는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섭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우리가 뭔가 먹고 싶다고 느끼는 것은 실제로 배가 고프다는 이유도 있지만, 언어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p.111
시골에 가면 죽은 새의 시체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봄철이나 특히 한여름에는 한갓지게 이리저리 다니다 보면 꼭 한 번은 맞닥뜨리게 마련이다.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 새일 수도 있고, 맹금류의 공격으로 심한 상처를 입고 죽은 어린 새일 수도 있다. 아니면 사냥꾼의 총에 맞은 뒤 죽을 장소를 찾아 조용한 구석으로 기어든 어미 새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상관없다. “어떻게 죽었지?” 혹은 “왜 죽었지?” 같은 질문은 하지 마라. 죽은 새를 발견하면, 가던 길을 멈추고 그냥 한번 유심히 들여다보라. ---p.125
당신은 말없이 걷고 있다. 당연하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현 정부와 그 정책에 아주 적대적인 구호들이다. 그 표현들이 기발하고, 박자가 착착 맞으면서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욕설이나, 인신공격 또는 법에 저촉되는 발언들일 수도 있다. 당신은 당국에 도전하고 있고, 대담하게 경찰에 맞서고 있다. 여론몰이를 하고, 당신이 채택한 결의안을 외치며 항의를 하고 있다.
(…) 평범하고 특징 없는 거리에서 위대한 열정들이 자기도 모르게 서로 섞이고 있다는 사실을 잠깐만이라도 상상해보라. 방금 전 보행로에서 몇 발자국을 옮기는 사이, 당신은 테러리스트, 암에 걸린 여인, 절망에 빠진 실업자, 약을 찾아 헤매는 마약중독자, 임신한 10대 소녀, 불법체류자, 버려진 희망 등과 마주쳤다. 그런데도 당신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알 방도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말이다. ---p.180
진정한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다. 비로소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평온함을 얻었고, 하던 일도 마저 끝낼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말이다. 하지만 가끔은 불안할 수도 있다. “급한 연락이 오면 어떡하지? 정말 중대한 소식이라면?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지?” 죄책감이 들지도 모른다. 당신을 애타게 찾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는 메시지조차 남길 수 없는 상황에 난감해할 것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나만의 안락함만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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