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의 관점은 후에 영국의 철학자 오스틴John Langshaw Austin으로 이어졌고 ‘일상언어학파Ordinary Language School’라는 연구 분야를 탄생시켰다. 일상언어학파에서 주로 연구하는 언어는 추상적인 논리나 명제가 아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실제 언어’다. 앞으로 다룰 혐오표현과 같은 일상언어 자체를 철학적 탐구와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연구할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이다.
오스틴의 대표적인 저서, 《말을 가지고 행위하는 법》의 제목은 ‘우리는 언어를 통해 다양한 행위를 하며, 언어는 곧 행위’라는 일상언어학파의 관점을 집약적으로 보여 준다. 언어 또는 표현이란 단순한 소음이나 입술의 움직임을 통해 내뱉어진 말이 아니라, 어떤 의도가 담긴 행위Act라는 것이다. … “불이야!”라는 말, “문이 열려 있구나”라는 말, “바닥이 미끄럽다”라는 말, “쟤, 동성애자래” 같은 말들 역시 단순히 사실을 보고하는 말이 아니다. 이 말들은 모두 무언가를 의도하고 있다. --- p.19~20
오스틴의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혐오표현을 단순한 진술문이 아니라 수행문으로, 표적 집단에 가해지는 언어적인 폭력행위로 볼 수 있게 된다. 지하철에서 흑인을 가리키면서 “껌둥이다”라고 하거나, 남성 동성애자 커플을 향해 “쟤네 똥꼬충이네”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흑인이거나 동성애자임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진술문이 아니라 그들을 모욕하고 차별하는 수행문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김치년!”과 같은 표현은 실제 존재하고 있는 일부 여성들을 중립적으로 지칭하는 진술문이 아니다. 여성을 향해 표출된 혐오발화자의 차별적인 언어폭력이다. --- p.22~23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자유주의자들은 더 많은 표현more speech을 통해 혐오표현의 해악을 논박할 수 있다고 낙관한다. 그들은 사상의 시장의 풍부함과 무질서함을 사랑하며, “수천 송이의 꽃이 피게 만들어라. 심지어 독을 가진 꽃이라 하더라도”라고 태연하게 말한다. 말은 말로 받아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인 대항표현에는 한계가 있다.
철학자 막심 르푸트르Maxime Lepoutre에 따르면, 혐오표현에 대한 해법으로 개인적인 대항표현을 제시하는 것은 혐오표현의 피해자들에게 ‘맞대응하라’는 부담을 추가로 지우기 때문에 불공정하다. 피해자에게 그저 더 많은 말을 하라고 권유하는 건 또 다른 폭력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자리에서 응수하는 것은 권력관계로 인해 어려운 경우가 많고,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앞서 닐슨의 연구에서도 살펴보았듯이, 혐오표현의 피해자들이 혐오발화자에게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혐오표현을 경험한 피해자들 대부분은 상황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것으로 여기면서 현실을 수용하고, 일상화된 범죄 피해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대응을 포기하거나 위축된다. 대응할 경우 혐오표현이 물리적 폭력 피해나 위협으로 발전되거나 아웃팅, 실직 등의 구체적 권리 행사의 배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p.118~119
시민 개개인들에 비해 권위를 가지고 있는 공직자나 정부 기관, 대통령이 혐오의 정치를 직접적으로 비난한 사례는 혐오표현의 피해자들도 존엄하고 동등한 시민이라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게 해 주고, 국가가 그들의 편에 서 있다는 강한 확신을 제공해 준다. 국가 중심 대항표현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사회에 보낸다. “국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당신이 그런 말을 들어야 했다는 것에 유감을 표합니다. 불행히도 일부 개인들이 여전히 이런 말을 믿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국민 전체를 대신하여 우리는 당신 곁에 서서 확신을 줄 것이고, 당신이 이방인이 아니라 그들이 이방인이며, 그들이 말한 것은 공허한 위협으로 그치게 할 것을 보장하겠습니다.” --- p.125~126
진리 논증으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비판자들은 혐오표현이 대체 진리와 무슨 관련이 있냐고 반문한다. 1장에서 살펴보았듯이, 혐오표현의 주된 기능 중 하나는 피해자를 ‘모욕’하는 것이지, 진리의 발견이 아니다. “5·18은 북한군이 개입해 일으킨 폭동”이라는 표현은 오히려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고 왜곡함으로써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 유가족들에게 고통을 준다. 가해자의 의도는 “진리를 발견하거나 사회적 행위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모욕하는 것”이며, “대화를 개시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 --- p.145
미끄러운 경사면 논증이 주장하듯이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안들이 사실상 모호하거나 실효성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소수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여 역효과를 낸다면, 그런 규제들의 도입을 반대해야 할 상당히 강력한 이유가 있게 된다. 이미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모욕죄 등 정권에 반대하는 의견을 억누르거나 고소·고발을 남용하여 재갈을 물리는 식으로 표현의 자유를 저해하는 법안들을 둘러싸고 논쟁을 거듭해 온 한국 사회에서는 혐오표현 삭제 법안들을 추가하는 것이 아무래도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혐오표현 삭제 법안에서 규제하려는 혐오표현의 기준이 모호하고 그 적용이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면, 이중 잣대를 가지고 소수자에게 불리하게 적용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김치녀”는 내버려 두고 “한남충”만을 혐오표현으로 간주하여 삭제한다든지, “똥꼬충”은 그대로 두고 “개독교”만을 혐오표현으로 규제할 수 있는 것이다.
--- p.174~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