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저희들도 사람들이 부르는 무슨무슨 나무 말고 진짜 자기만의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할아버지가 저희들 이름 좀 지어 주세요.”
“왜 이름이 필요하니?”
“여기 오는 아이들은 모두 자기 친구들 이름을 부르면서 놀았어요. 친구들 이름을 부를 때 아주 즐거워 보였거든요. 이름뿐 아니라 별명을 부를 때 더 즐거워 보였고요. 그래서 나도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 그렇다면 한번 지어 보도록 하자.”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할아버지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너는 ‘자작이’가 어떠냐? 너희 나무 전체의 이름이 자작나무니까 대표적으로 그렇게 부르면 어떨까?”
개성이 있고 예쁜 이름을 잔뜩 기대하던 키다리가 입을 삐죽거리며 불만을 터트렸다.
“자작이? 제 마음에 안 드는데요. 요즘 아이들 같은 예쁜 이름이 갖고 싶어요.”
“그건 사람들 세계의 유행이지. 이 자작나무 숲과는 상관이 없질 않느냐. 너는 자작나무 중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갖게 되니까 대표성을 갖고 자작이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키다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오우케이’라는 의미였다.
--- p.31~32
“그런데 할아버지, 나무 이름은 어떻게 지어요?”
“식물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 식물의 모양이나 특징을 보고 이름을 짓는단다. 생강나무처럼 잎에서 생강 냄새가 나면 생강나무라 했고, 가지를 꺾어 물에 넣으면 파란 물이 나온다고 물푸레나무, 잎에서 쓴맛이 나면 소태나무라고 했지.”
할아버지가 나무 밑에 떨어진 나뭇잎을 주워 들고 생강나무를 설명했다.
“이것 좀 봐라. 오리발처럼 생겼지? 이게 바로 생강나무 잎이란다.”
“와! 정말 오리발을 닮았어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나뭇잎 모양만 봐도 어떤 나무인지 아세요?”
“그렇지.”
“잎이 다 떨어져 가지만 남은 겨울에는 어떤 나무인지 구별이 안 가잖아요?”
“나뭇잎이 없는 겨울에는 나무 밑에 떨어진 낙엽을 주워 보면 나무 이름을 알 수 있단다.”
“아, 그렇구나.”
“할아버지! 정말 오리발을 닮았어요!”
“앞으로 생강나무 잎은 오리발이라고 기억하면 잊어버리지 않을 게야.”
--- p.50~51
“그런데 임도를 만든다면서 나무를 함부로 해치는 건 잘못된 거 아닌가요?”
“함부로 땅을 파헤치는 게 아니라, 설계도에 따라 임도를 설치하는 작업이다. 산길을 닦아야 숲을 살릴 수 있는 거란다.”
“할아버지, 임도를 만들지 않으면 그런 일도 없잖아요?”
“그래도 임도는 꼭 필요하단다. 사람에게 핏줄이 있다면 산에는 임도가 핏줄이나 마찬가지지. 임도를 통해서 나무와 숲을 가꾸는 장비가 들어오는 거야. 산불이 났을 때 소방차도 그 임도를 통해 들어올 수 있는 거란다. 또 임도를 통해서 이 자작나무 숲을 보려는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도 임도를 만들지 말란 말이냐?”
“제 생각은 좀 달라요. 조용하게 살던 자작나무 숲 친구들이 임도 만드는 괴물기계 때문에 나무가 부러지고 상처를 입었잖아요. 임도를 만들지 않으면 그런 일도 없을 거 아녜요?”
자작이가 또박또박한 어조로 말했다.
“너희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임도는 나무와 숲을 살리는 핏줄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임도 시설이 많이 부족하지만 가까운 일본은 물론이고 독일이나 캐나다와 같은 임업 선진국들은 임도가 잘 되어 있어서 산림 경영에 모범을 보이고 있단다.”
--- p.80~82
“할아버지는 병든 나무를 한 번 쳐다보기만 해도 무슨 병에 걸렸는지, 또는 무슨 벌레가 먹었는지 알겠네요?”
“나뭇잎이 누렇게 변하거나, 나무줄기가 말라 죽거나, 그리고 가을도 아닌데 낙엽이 일찍 지는지, 또 나무줄기나 잎에 벌레가 붙어 있는지를 살피고, 마지막으로 나무가 자라는 토양 환경이 나빠지지는 않았는지 등을 세세히 살펴봐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거란다.”
“그런데 할아버지, 나무들이 병들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깊은 산속에 살고 있는 너희들이야 무슨 걱정이냐. 사람들이 붐비는 공원이나 관광지에 서 있는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수 같은 고목이 문제인 게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공원이나 관광지에 살면 구경도 많이 하고 좋잖아요?”
“그야 물론 사람들이 많이 봐 주면 좋기는 하겠지만, 나무를 흔들거나 올라타거나 해코지를 하는 게 문제란다. 그리고 나무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땅을 밟아대기 때문에 땅속뿌리가 자라지 못하고 결국엔 나무가 고사(말라 죽음)하게 되는 것이지.”
“땅을 밟으면 나무가 죽나요, 할아버지?”
“나무도 사람처럼 숨을 쉰단다. 나무는 잎의 뒷면에 있는 숨구멍으로 대부분의 숨을 쉬지만 땅속뿌리로도 숨을 쉬지. 뿌리가 숨을 쉬어야 나무가 자랄 텐데 사람들이 땅을 밟아대니까 토양이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져서 땅속의 나무뿌리가 자라지 못하게 되는 거란다. 얼마 동안은 견디겠지만 뿌리가 먼저 죽고 결국에는 나무가 따라서 죽게 되는 게다.”
--- p.89~90
“안녕들 하십니까? 여기 모두 저를 아시는 분들인 것 같은데요. 저는 여러분들의 회의에 참관인 자격으로 초청받은 숲짱 할아버지입니다.”
“아이고,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역시 소광리 금강소나무들은 예의범절이 밝았다. 다들 숲짱 할아버지를 향해 한마디씩 인사를 건네느라 분주했다.
인사가 끝나자 숲짱 할아버지는 여기저기 퍼져 있는 소나무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가지고 간 메가폰을 들고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소나무님들, 저도 걱정만 하고 있다가 여기 와서 만나 보니 너무 좋습니다. 저는 여러 소나무님들이 하신 말씀 가운데 금강송 보호수님의 말씀이 가장 와 닿았습니다.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면 부정적인 생각만 하게 됩니다. 그러면 소나무님들 몸속에 있는 가장 좋은 성분인 피톤치드가 줄어듭니다. 피톤치드가 많을수록 면역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피톤치드를 더 만들기 위해선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피톤치드 성분을 많이 만들면 만들수록 병충해에 감염되는 일은 없습니다.”
숲짱 할아버지의 말에 소나무들은 오랜만에 표정이 밝아졌다. 모두들 ‘이제 살 길을 찾았다’는 안도의 표정이었다.
--- p.118~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