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내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 모두 [트루먼 쇼The Truman Show](1998년)의 장면 같았어요. 길거리에서 보이는 것들이 조작되지 않은 것이 없었어요. 모두 상부의 각본에 따라 우리 눈에 어떻게 어떻게 보여지도록 연출되고 있었어요. 어찌 보면 너무도 순진한 사회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 p.14
“아니 그렇게 황당한 얘기들이 『국가론』에 쓰여져 있단 말입니까? 그에 비하면 공산주의는 아무것도 아니네요?”
“결국 우리가 공산주의라는 20세기 인류의 대실험에 관해 어떠한 얘기를 해도, 그것은 이미 플라톤의 이데아론 속에서 마음대로 자행되고 있었다는 얘기죠. 제가 북한사회를 보고 플라톤이 말하는 유토피아 생각이 났다는 것은, 진실로 복잡한 감정이 교차되었다는 뜻이죠.” --- p.20
“그러나 당의 리더십의 정당성은 어디에 근거하고 있습니까?”
“수령이 계시지 않소!”
“수령의 리더십의 정당성은 누가 체크합니까?” --- p.29
“아~ 그러니까 문재인, 김정은, 트럼프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엉뚱한 짓을 하는 듯이 보여도 결국은 절대이성의 어떤 합목적성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런 뜻이 되겠군요!” --- p.48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통일에 대하여 부정적이다라는 담론이 팽배해 있습니다.”
“너무도 적절한 지적이라고 생각됩니다만, (※갑자기 격앙된 목소리로)한국의 젊은이들이 통일에 대해 부정적이다라는 소리는 한마디로 ‘개소리’입니다. 그것은 한국의 보수언론들이, 아니 진보적 언론이라고 해도 똑같아요, 언론이 만들어낸 개소립니다.” --- p.101
“역사의 진행이 꾸준히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적인 공동체 논리로부터 게젤샤프트Gesellschaft적인 개인중심·이권중심의 집합체로 이행해왔다는 사실을 전제로 할 때, 젊은이들의 무관심은 이해가 가는 논리라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통일은 기본적으로 공동체의 테마이지 개인의 테마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통일은 하루하루 자기의 생활 속에서 이권을 추구하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별 흥미가 없을 수 있지요. 그리고 통일은 당위Sollen의 문제이지, 사실Sein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 p.102
“통일의 문제는 남·북한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사의 프런티어의 문제이며, 바로 우리나라 차세대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사라는 것이죠. 오늘 당장 잘 먹고 잘살고 있다고, 하찮은 법리적 시비나 운운하면서 할렐루야만 외치고 앉아있는 꼬락서니가 과연 이 역사의 미래에 무엇을 투영하겠습니까?” --- p.106
원효 대사의 일심이문一心二門사상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통일사상의 프로토모델이 될 수 있겠네요.”
“자아! 남북의 문제를 접근하는 유일한 열쇠는 이 한마디입니다. 이 한마디면 다 끝나요. 연방제·연합제를 논의할 필요가 없어져요. 그 한마디가 무엇일까요? 인정Recognition, 인정! 바로 인정Mutual Recognition이지요!” --- p.178
“우리가 통일의 비용을 물겠다는 얘기가 아니라 북한이 북한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국제환경을 조성하고,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새로운 교류방식을 만들자는 것이지 북한을 붕괴시키고 그 사후비용을 대겠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인정’이라는 말이 전제된 것입니다. 우리의 통일은 한 시점에 이루어지는 재결합이 아니라 교류에 의한 점진적 융합을 의미하는 것이죠. 국체politeia의 문제가 아니라 삶bioteia의 문제라는 것이죠.” --- p.193
“역시 고수의 초식은 좀 다르군요. 냉철한 현실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제기해야 하는 반론이지요. 제가 그런 반론을 생각 못하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죠. 그러나 저는 인문학자이고, 철학적 사변인이고, 또 이야기를 만들 줄 아는 마가(마가복음의 저자)와 같은 드라마티스트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내가 얘기하는 것은 국민들의 마음 한 켠에 꼭 심어두어야 할 얘기이고, 노자가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이라 했듯이, 사태와 정반대되는 상상력도 리얼리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이 꼭 무리하게 밀고 나가야 할 역사의 정로正路이다, 정답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죠.”
--- p.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