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드는 정확한 순간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그저 지나온 길을 돌아봄으로써 그 순간을 깨달을 수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런 순간이 언제 다가올지 결코 예측할 수 없다. 내 삶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은 내가 체포된 날부터일까? 아니면 훨씬 더 이전의 어느 순간부터 이미 변화가 시작됐던 것일까? 체포된 날은 그저 그때까지 이어진 운명적인 순간들과 잘못된 선택들과 불운이 최고조에 다다랐던 것뿐일까? 그도 아니면 예나 지금이나 흑인을 당당한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대하려 하지 않는 남부에서 흑인으로 태어났기에 자랄 때부터 내 삶의 행로는 이미 정해졌던 걸까?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 너비 1.5미터, 길이 2미터 가량의 화장실만 한 방에서 생을 끝맺어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되면, 지나온 삶의 순간순간을 되돌아볼 시간이 넘쳐난다. 경찰들이 나를 찾아왔던 날 달아났더라면, 야구 특기생으로 대학에 갔더라면, 그때 그 여자와 결혼했더라면 어땠을까? 누구나 자신이 겪은 끔찍한 순간들을 되짚어보면서 오른쪽으로 가지 말고 왼쪽으로 갔더라면, 그런 사람이 아니라 이런 사람이 됐더라면, 다른 길을 택했더라면 어떨까 상상해볼 것이다. 그렇다고 아픈 과거를 고쳐 쓰거나 비참했던 일을 지워 없애거나 끔찍한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 철창 안에 갇혀 머리를 쥐어뜯으며 기나긴 나날을 보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말로 다 할 수 없이 불행하고 고통스럽고 불공평한 일이 누구에게나 느닷없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다시 말해 우리 삶을 크게 바꾸는 것은 그런 일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믿는다.
--- p. 15
베서머 경찰서에 도착해 차에서 내렸을 때 눈에 보이는 건 번쩍이면서 터지는 플래시뿐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불빛과 웅성거리는 소리와 고함 소리에 갈피를 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웠다. 누가 기자들을 불렀는지, 기자들이 무슨 말을 듣고 몰려든 건지는 알 수 없지만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어서 그것이 포토라인에 선 범죄자를 촬영하는 상황이란 것을, 그 범죄자가 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밑도 끝도 없이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이 짜증스럽기도 하고 화도 났다. 물론 곧 엉뚱한 사람을 잡아들였음을 밝혀야 할 경찰들도 나도 망신살이 뻗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경찰서 안에 있는 한 방으로 끌려들어갔다. 방에는 바사, 밀러, 애커라는 세 명의 형사와 버밍햄의 지방 검사 데이비드 바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검사는 말없이 앉아있고 형사들이 내가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읊었다. 그러고 나서 애커라는 형사가 빈 종이 한 장을 들이밀더니 서명하라고 했다.
“이게 뭡니까?” 내가 물었다.
“그냥 서명이나 해. 거기다 미란다 원칙을 적을 거니까. 당신의 권리를 고지했다고 알리려는 거야.”
“저기, 제가 거짓말할 사람으로 보입니까? 판사든 다른 경찰이든 누구든 물어보면 당신들이 말했다고 할게요.”
애커가 종이 위에 펜을 놓으며 대꾸했다. “수갑 풀어줄 테니까 서명해. 물도 한잔 마시고. 그럼 우리가 단박에 처리할 테니까.”
나는 잘못한 게 없었고 바보도 아니었다. 뭔지 모를 빈 종이에 서명할 수는 없었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은 즐거워 보였고 신이 난 것 같기도 했다. 엄청난 비밀을 폭로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순간 두려움이 밀려오면서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왜 빈 종이에 서명을 하라는 거지? 그건 옳지 않은 일이었다. 그 모든 상황이 옳지 않았다.
--- pp. 89-90
내게 남은 마지막 유일한 희망은 변호사뿐이었다. 내 목숨 줄이 그에게 달려있었다. 경찰과 검찰은 나를 범인으로 착각해서 잡아두고 있는 것이 아님이 분명해졌고,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다 알면서도 거짓말을 서슴지 않으면서 무고한 사람을 사형수로 몰아가고 있었다.
나중에라도 퍼핵스에게 전화해서 훌륭하게 잘 변호해줘서 정말 감사하고 있다고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정에서 나를 위해 소리 높여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뿐이다. 배심원들에게 앤서니 레이 힌턴이 어떤 사람인지, 진실이 무엇인지 보여주려면 그가 필요했다. 나는 그를 통해 내가 어머니를 사랑하고, 주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고, 평생 폭력을 써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다. 나는 사랑이 많고, 유머를 잃지 않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면 누구든 도와주는 사람이다.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남의 돈과 목숨까지 빼앗는 사람이 아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자가 아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아니다.
--- pp. 67~69
6월 5일, 자정을 몇 분 앞두고 나는 수감실 문 앞에 서서, 신발 한 짝을 벗어 들고 철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내가 내는 소리를 헨리가 듣고서 혼자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기를 바랐다. 교도관들이 헨리의 머리를 깎았을 시간이 지나고,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자 더 힘껏 철창을 쳤다. 사형수들 모두 헨리 헤이스를 위해 철창을 쳤다. 그가 흑인인지 백인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헨리는 두려움이 가득한 채로 혼자 죽음을 맞고 있었다. 헨리는 자신이 저지른 일 때문에 사형 집행실 저편에 지옥의 문이 열려있을까 봐 두려워했다. 우리는 그런 헨리를 위해 힘껏 철창을 치고 소리를 질렀다. 15분여 동안 목소리가 갈라지고 쉴 때까지 헨리가 가치 없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알려주기 위해 소리쳤다. 앨라배마 주의 이름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든, 그들에게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임을 알리기 위해, 얼굴에 검은 자루를 씌운다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란 걸 알리기 위해 소리쳤다. 그리고 무고한 사람들도 무시무시한 전기의자에 묶여서 광견병에 걸린 개처럼 머리를 깎이고,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빼앗기고, 전깃줄에 꽁꽁 묶인 채 쓰레기처럼 죽음을 맞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소리쳤다. 무고한 사람들도, 죄를 지은 사람들도 전기의자에서 죽어갔다. 죽음을 마주해서는 강한 사람도 약한 사람도 아기처럼 울었다. 나는 헨리가 혼자 외로이 조물주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란 걸 알려주기 위해 목청껏 소리쳤다. 사형 집행실에서 차가운 눈으로 그를 지켜보는 사람이 누구든, 우리가 내는 소리를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그런 살인에 항의하며 하나가 되어 소리쳤다. 소리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소리쳤다.
--- pp. 261-262
사람들이 나를 향해 몰려들었다. 누나들, 조카들, 레스터와 시아도. 나는 그들 모두를 끌어안았다. 누나들은 울면서 하느님께 감사하고, 카메라들은 플래시를 터뜨리며 나를 찍어댔다. 나는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온 레스터의 어깨를 잡았다.
10분쯤 지나자 어수선한 소리와 움직임이 잠잠해졌다. 모두들 조용히 내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나는 사람들을 빙 둘러보았다. 이제 난 자유인이었다. 누구도 내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자유롭게.
나는 눈을 감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어머니를 위해 기도했다. 하느님께 감사했다. 그러고는 눈을 뜨고 카메라들을 응시했다. 너무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지냈다. 셀 수 없이 어두운 낮과 밤을 견뎌야 했다. 태양이 비추지 않는 곳에서 긴긴 세월을 살아왔지만, 이제 더 이상 어둠 속에서 살지 않아도 됐다. 앞으로 다시는 결코.
“햇살이 눈부시네요.” 나는 이 한마디를 하고는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구해준 두 사람, 레스터와 브라이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 pp. 368-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