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꿈꾼 삶을 살았던가? 과연 내 삶을 살았을까? 내가 꿈꾼 삶과 실제로 영위한 삶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 또 어떤 것을 더 잘 기억할까? 내 것이라 여겼던 것을 삶이 하나씩 앗아가고, 패를 돌리려고 내 카드를 하나씩 엎어놓는 지금, 난 벌써 삶이 다하기도 전에 이 두 개의 삶을 잊어가는 건 아닐까?
--- p.38
가장 진실하고 내밀한 기억이 그렇듯이, 가장 진실하고 내밀한 순간은 바로 이런 상상 속의 빈약한 이야기로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그날 밤 늦게 떠올랐다. 허구들.
--- p.53
내가 본 건 로마 자체가 아니라, 마침내 그곳을 사랑하게 만든, 이 고도(古都)에 내가 끼워 넣은 필터였고, 저녁 늦게 책방에서 나와, 거리에 존재하리라 나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는 희미한 미소와 우정을 찾아 나의 넵스키 대로를 서성일 때마다 내가 갈구하던 장막이었다.
--- p.55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내게 요구한 것은 그들의 책을 친밀하게 읽으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타인의 작품에 대한 나 자신의 맥박을 읽으라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맥박을 마치 내 것인 양 읽으라는 초대였다.
--- p.60
글쓰기는 진실과 거짓이 자리를 바꾸는 단층선을 파내고자 한다. 아니면 오히려 그 단층선을 더 깊게 파묻고자 하는가?
--- p.67
오랫동안 갈구했지만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걸 우리 자신도 알고 있는 어떤 것을 인식하기 위해 우리에겐 모네가 필요하다.
--- p.78~79
지연 행위가 깊게 새겨진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고통과 슬픔, 상실을 직면하는 능력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과 슬픔, 상실을 에두르는 길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삶 자체가 아니라 바로 그런 능력이다.
--- p.101
내면의 여행을 시작할 때면 난 장소에 대해 쓴다. 사랑이나 전쟁, 고통, 잔혹함, 힘, 신, 혹은 나라에 대해 쓰면서 그렇게 하는 작가들도 있다. 난 장소, 다시 말해 장소의 기억에 대해 쓴다. 내가 사랑했다고 하는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에 대해 쓰고, 돌아가고 싶은 사라진 세계를 상기시키는 다른 도시들에 대해서도 쓴다. 난 망명과 기억과 시간의 흐름에 대해 쓴다. 비록 과거를 잊고 외면하기 위함일지도 모르지만, 난 과거를 되찾고 보존하고 그곳으로 돌아가려고 쓴다.
--- p.133
결국 내가 좋아하는 건 세상이 아니라 세상에 대해 글을 쓴다는 사실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고, 곧 나 자신을 피하려고 난 글을 쓴다. 세상에서 늘 한 걸음 떨어져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걸 좋아하게 되었으므로, 난 쓴다.
--- p.135
우리가 삶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견디고 궁극적으로 아름답게 느끼는 것은 바로 그때가 아닐까 싶다. 삶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삶의 결점을 보고, 삶의 결점이라는 게 용서받을 수 없는 것임을 알고, 그럼에도 매일 못 본 척 시선을 돌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름다운 삶의 기준인 까닭이다.
--- p.139
우리가 결국 기억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상상하는 과거의 우리 자신이다. 또한 종종 우리가 고대하는 것은 미래가 아니라 복원된 과거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갈망하는 바가 아니라 갈망 그 자체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바가 아니라 기억 그 자체를 사랑하듯이.
--- p.253
글쓰기는 이민자들이 미국에 정착한 후 형제자매를 하나하나 초대하듯이, 우리가 소중한 물건을 하나하나 옮겨 놓는 평행 우주를 열어 보일까?
--- p.259
알렉산드리아를 기억할 때 나는 이미 다른 곳에 있다고 상상하길 즐겼던 장소를 떠올린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파리를 갈망하던 나 자신을 떠올리지 않고 알렉산드리아를 기억하는 것은 잘못된 기억이다.
--- p.269
나는 다른 곳에 있다. 이것이 알리바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다. 그것은 다른 곳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체성이 있다. 내게는 알리바이, 그림자 자아가 있다.
--- p.277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우리에게 손짓하는 도시들도, 그곳에서 보낸 시간도 아니다. 우리를 부르며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은, 우리가 그 도시들에 투영한, 살지 않은 상상의 삶이다. 도시는 다만 분장이고 차단벽이며 화가 클로드 모네가 말했듯이 빈 봉투이다. 절대 사라지지 않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기를 바랐던 상상의 삶에 대한 기억이다.
--- p.281
글쓰기는 귀향이 아니다. 그것은 알리바이다. 알리바이들의 영원한 말더듬.
--- p.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