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현대가 과학의 시대임을 인정하고 과학의 발전이 삶의 모습을 하루가 다르게 바꿔놓는 세상에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과학을 공부하는 건 그토록 피하고 싶은 걸까요? 혹시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과학’의 모습이 실상은 오해와 선입견의 얼룩으로 뒤덮인 ‘그림자 과학’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는 과학 공부를 하면서 과학의 본질을 본 게 아니라 두루뭉술한 윤곽과 그림자로 지레짐작한 게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 주변에 아주 가까이 녹아들어 있는 과학이라는 공기를 잡히지 않는 하늘 높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구름이라 믿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이 책에서는 이런 의문을 바탕으로 제가 평소에 생각하던 것들을 엮어보았습니다. 과학은 하늘 위의 구름이 아니라 우리가 숨 쉬는 공기라는 것, 교과서 속 박제된 죽은 지식이 아니라 우리 곁에 살아서 펄떡이는 삶의 지혜라는 것, 과학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을 익히는 것이 곧 인간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입니다.
--- p.9 「제1권」중에서
과학을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과학자의 전유물이 아닌 문제 해결에 유용한 하나의 사고방식으로 봅시다. 그럼 인생 곳곳에 쌓인 문제를 처리하는 데 최선은 아니더라도, 최악을 피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원인을 분석하고 결과와 연관시키는 인과적 사고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하니까요. 그럼 과학자가 아니거나 과학자가 될 생각이 없어도 과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학적 법칙과 이론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이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어떻게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인과 관계를 밝혀내는지, 그 사고 체계를 벤치마킹해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릅니다.
--- p.64 「제1권」중에서
인류는 오랜 세월 진화의 과정을 거치며 큰 뇌를 가지게 되었고, 큰 뇌의 활동으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문명을 이룬 종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산업과 기술의 발전으로 생긴 물질들이 우리의 눈을 흐리고, 숨통을 조이며, 심지어 뇌를 파괴하는 원인일지 모른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에너지보존법칙과 질량보존법칙에 의해 세상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새롭게 생기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위치와 관계만 바뀌며 유지될 뿐이죠. 마찬가지로 우리가 새로 결합해낸 것은 무엇이든 그냥 사라지지 않습니다. 새로 만들어내는 만큼 지구라는 크고 정교하게 조율된 시스템에 무언가를 빼낸 자리가 생길 테고, 그것이 우리에게 영향을 줄 것입니다. 수십억 년 동안 수없이 많은 조정을 거쳐 안정된 지금의 체계가 유지되길 원한다면, 우리 스스로가 정교한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오류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 pp.86~87 「제1권」중에서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 방향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세계경제포럼에서는 2020년대 사회에서 다음 열 가지 능력이 가장 가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1. 분석적 사고와 혁신, 2. 능동적 학습과 학습 전략, 3. 창의성, 독창성, 추진력, 4. 기술 디자인과 프로그래밍, 5. 비판적 사고와 분석, 6.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 7. 리더십과 사회적 영향력, 8. 감정 지능, 9. 추론, 문제 해결과 추상화, 10. 시스템 분석과 평가
공교롭게도 이 열 가지는 모두 다각적이고 감성적인 접근이 필요한 복합적인 정신 능력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이런 가치입니다.
--- p.203 「제1권」중에서
지구 에너지의 근원인 태양은 수소가 융합해 헬륨이 만들어지면서 발생되는 핵융합 에너지를 원동력으로 45억 년이 넘도록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핵이 쪼개지고 융합되어 하나의 원자가 다른 원자로 바뀌는 일은 인위적인 것도 희귀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우주가 만들어지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온 ‘자연스러운’ 일이죠. 이 사실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세상 모든 것은 다양하게 바뀌고 역동적으로 순환하며, 우리는 그 커다란 흐름 속 한 부분이라는 거죠. 암호 같은 주기율표 기호 속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할 핵심 키워드가 바로 이것 아닐까요? ‘우린 모두 동등하다’는 사실 말입니다.
--- pp.26~27 「제2권」중에서
자연 상태에서는 이렇게 대기 중의 질소가 이온이 되는 과정(질소고정작용)과 이온화된 질소가 다시 질소 가스로 변화되는 과정(탈질소작용)이 균형을 이루어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한 세기 동안 인류는 대기에서 질산염을 직접 합성하는 기술을 개발해 질소 순환의 고리에 인위적으로 개입했습니다. 프리츠 하버가 대중화한 이 인위적 질소고정 기술은 한때 극찬을 받았는데요. 최근 들어 지나친 질산염 비료의 사용이 불러온 토양의 질산염 과잉 현상과 유기물의 과다한 증가로 부영양화 같은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여러 비극을 통해 지구의 모든 원소는 순환되고, 이를 막는 행위는 파멸을 불러온다는, 쓰디쓴 교훈을 얻었습니다. 생태계의 균형이란 참 엄격합니다. 그 대상이 질소든, 산소든, 탄소든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든 지나치게 기울어 균형이 깨지면 문제가 생겨납니다. 스스로 만들어낸 번개에 타 죽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가 되었습니다.
--- pp.73~74 「제2권」중에서
지구 내부가 비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지구공동설은 이제 아무도 믿지 않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할 점은 지구가 비어 있느냐 아니냐의 결과가 아닙니다. 어떤 사실을 알아낼 때 무슨 이유로 그런 추론을 했는지, 그 추론을 뒷받침하는 실제 증거가 무엇인지 제시하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죠. 핼리가 (비록 틀렸지만) 의문과 가설을 도출하는 과정은 나름 합리적입니다. 다만 실질적 근거로 뒷받침하지 못해 폐기된 거고요. 지구가 4개의 층상 구조로 이루어진 꽉 들어찬 구라는 사실은 실질적 증거로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상상은 자유지만, 과학적 추론은 실질적 증거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답니다.
--- p.118 「제2권」중에서
이처럼 진화론은 태생부터 경쟁보다는 공존에 바탕을 두고 있었음에도, 우리는 오래도록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지난 세기에 우리는 제국주의의 확장과 무한 경쟁의 결과가 어떤 비극을 가져오는지 익히 경험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라는 비정한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드리워진 악령의 뿌리가 깊은 것이지요. 하지만 이제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봅시다. 획일성과 경쟁, 반목과 투쟁의 세계가 좋은지, 다양성과 화합, 공존과 더불어 사는 삶이 좋은지를요. 생명체들이 이미 태곳적부터 체득하고 겪어온 방식의 가치를 우리는 너무 늦게 깨달은 게 아닐까요.
--- p.186 「제2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