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게 아니라 센트럴일리노이의 조건은 수학적 관점에서는 흥미롭고 테니스적 관점에서는 열악하다. 여름은 열기와 젖은 장갑 같은 습기를 내뿜고, 기이할 정도로 기름진 토양은 풀과 넓은잎을 테니스장 표면 위로 온 힘 다해 밀어올리고, 깔따구는 땀을 빨아 먹고 모기는 밭의 고랑과 밭 둘레의 녹조투성이 도랑에 알을 낳고, 나트륨등에 이끌린 나방과 똥깔따구가 키 큰 조명등마다 주위에 작은 행성을 이루고 온통 불 밝힌 테니스장 곳곳에 작은 그림자를 펄럭거리기 때문에 야간 테니스 경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악조건의 가장 큰 원인은 바람이다. 바람이야말로 센트럴일리노이 야외 생활의 질을 좌우하는 최대의 단일 요인이다. 휘어버린 풍향계와 기우뚱한 헛간을 소재로 삼은 이곳 농담은 일일이 기억할 수 없을 정도이고 온갖 바람을 일컫는 남부 지역의 별칭은 눈을 일컫는 이누이트족의 별칭보다 많다. 바람에게는 성격이 있었고 (고약한) 기질이 있었고 필시 의도가 있었다. 바람이 낙엽을 어찌나 규칙적으로 욱여넣어 선과 호를 만들었던지 사진을 찍어서 크라메르 공식(ramer’s Rule)과 3차원 공간에서 곡선의 외적을 구하는 방법의 예로 교과서에 실어도 좋겠다 싶을 정도였다.
--- p.23
오스틴의 이야기는, 운동만 하다가 스물한 살에 소진된 영재가 겪은 역경은 정도 차이를 제외하면 일만 하다가 예순두 살에 죽은 공인회계사 가장이 겪은 역경과 아무런 차이가 없으므로, 심오할 수도 있었다. 이 책은, 열일곱 살에 모든 것을 얻었다가 스물한 살에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이유로 모든 것을 잃는 것이 그 뒤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말고는 죽음과 꼭 같으므로, 참된 영감을 불어넣을 수도 있었다. “트레이시 오스틴이 챔피언십 테니스 너머의 삶을 발견하기까지의 오랜 분투를 그려 영감을 불어넣는 이야기”라는 책날개 문구에서 약속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책날개 문구는 거짓말이다. 여기서 ‘영감을 불어넣는(inspirational)’이라는 말은 ‘가슴 따뜻한’, ‘훈훈한’, 심지어 (하느님, 용서하소서) ‘장대한’ 따위와 기본적으로 똑같은 상투적 광고 문구 클리셰의 의미로서만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느 상품 광고 클리셰와 마찬가지로 이 문구는 모든 것을 암시하되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으려는 수작이다.
--- p.72
방송용 블레이저 차림의 중저음 아나운서들은 경기가 끝날 때마다 찾아와 신체적 천재들에게 틀에 박힌 클리셰를 이런 식으로 짜깁기해달라고 요구한다. 시간이 좀 지나면 이 문구들은 일종의 묘한 자장가처럼 들리기 시작하는데, 방송국에서 끈질기게 인터뷰를 요청하고 방송하는 것은 물론 이런 진부한 말을 진지하게 좋아하는 시청자가 많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들이 자신의 감정을 묘사할 때의 공허가 마치 우리가 믿고 싶은 무언가를 확증하기라도 한다는 듯.
--- p.75
단언컨대 테니스는 스포츠 중에서 가장 아름다울 뿐 아니라 가장 힘겹다. 테니스는 신체 통제, 손과 눈의 협응, 재빠름, 최고의 속도, 지구력, 그리고 조심과 (우리가 용기라고 부르는) 놓아버림의 기묘한 조합을 필요로 한다. 두뇌도 필요하다. 수준 높은 경기의 한 포인트에서의 한 번의 공방에서의 단 하나의 샷은 역학적 변수의 관점에서 악몽과 같다. 네트의 (가운데) 높이가 91.4센티미터이고 두 선수의 위치가 (비현실적이게도) 고정되었다고 가정하면 샷 하나의 위력을 결정하는 것은 각도, 깊이, 속도, 스핀이다. 이 요인들은 각각 또 다른 변수에 의해 결정된다. 이를테면 샷의 깊이를 결정하는 것은 공이 네트 위를 지나는 높이에다 속도와 스핀을 아우르는 어떤 함수를 조합한 것인데, 공의 네트 위 높이 ‘자체’는 선수의 신체 위치, 라켓 그립, 백스윙 각도, 라켓 면 기울기, 공이 실제로 줄에 닿는 시간 동안 라켓 면이 움직이는 3-D 좌표로 결정된다. 변수와 요인의 나무는 가지를 뻗고 또 뻗으며, 상대 선수의 위치와 성향과 그가 친 공의 탄도학적 특징을 고려하면 더더욱 뻗어 나간다. 현존하는 어떤 CPU도 단 한 차례의 공방에 관계된 모든 변수를 계산하지 못한다. 메인프레임에서 연기가 피어오를 것이다. 여기에 동원되는 사고는 살아 있고 차원 높은 의식을 지닌 존재만이, ‘무’의식적으로만 해낼 수 있다. 즉, 재능과 반복을 고도로 결합하여 의식적 사고 없이도 변수를 조합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일정 수준 이상의 테니스는 일종의 기예다.
--- p.117-118
그는 짐승처럼―필리푸시스를 보면 정말 그런 생각이 드는데―스파르타인처럼 생겼다. 크고 느린, 기계 같은 파워 베이스라이너로, 눈에는 싸늘한 적의가 감돈다. 그와 맞서는 샘프러스는 정확히 문볼을 구사하지는 않지만 허약하고 지적이고 (슬기롭고 슬픈) 시인처럼 보이며 민주주의만이 그렇게 지칠 수 있는 듯한 방식으로 지쳐 보인다. 그의 표정은 몬트리올과 신시내티 등에서 여름내 그를 괴롭힌 야릇한 윔블던 이후 우울감으로 가득하다.
--- p.158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의 한 장면 같았다. 어떤 소리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내 배우자 말로는 헐레벌떡 들어가 보니 소파에 팝콘이 널브러져 있고 나는 한쪽 무릎을 꿇었는데 눈알이 장난감 가게에서 파는 눈알 같았다고 한다.
어쨌든 이것이 페더러 모멘트의 한 예이며, 텔레비전에서만 봐도 이런데 텔레비전 테니스와 실제 테니스의 관계는 비디오 포르노와 현실에서 느끼는 인간적 사랑의 관계와 같다.
--- p.192-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