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잡편의 묘함은 우선 견해에 있다. 인간 세상을 멀찍이 벗어났으며 찬란한 빛이 나며, 널리 펼쳐지는가 하면 깊이깊이 잠룡을 감추고 있다. 하늘 가득 별이 총총하고, 겹친 그림자는 아득히 먼 곳까지 있다. 노래가 끝이 없고 춤이 끝없으며 사람을 마음 깊이 계발하며 사방팔방으로 눈이 부시고, 폐부 깊숙이 뚫고 들어가 기발한 생각을 하도록 한다. 세월이 오래되어서 어떤 것은 하늘의 신선이 쓴 글 같기도 하고, 어떤 것은 주문 같기도 하고, 어떤 것은 주역의 괘 같기도 하고, 어떤 것은 기도문 같기도 하다. 게다가 각종 해설과 고증을 더하여 이상한 글자들이 쌓이고, 반대 의견들이 흘러넘쳐 사람을 혼란스럽게 한다. 왕멍의 목적은 고금 자료를 두루 살펴보며 해설하고 설명하는 데에만 있지 않다.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더욱 활성화하고, 확대 발전시키고, 상호 고증하고, 문장을 서로 보충하는 것이다. 확대이자 충돌이고, 불꽃이자 자장이며, 발견이자 자유로운 상상이기도 하다. 『장자』라는 이 낡은 종을 땡땡땡 울려 퍼지도록 쳤다. 왕멍으로 장자를 해석하기도 했지만, 장자로 왕멍을 해석했다. 특히 인생으로 장자를 해석하고, 세상일로 왕멍을 말했다. 정확한 해석을 탐구하며 그 이론의 공간과 발휘된 분방함을 더한층 탐구했다. --- p.72
경상초, 목동, 장자, 관중은 신분이 다른 사람들이다. 언행과 일처리 방식도 서로 다르지만 일반인에 비해 한 수 높다. 백성을 사랑하는 것은 백성을 해하는 시작이고, 군대를 없애는 것은 군대를 조성하는 근본이다. 비록 인의를 위해서라지만 그것은 위선이다. 이런 말들은 정말 사람을 놀라게 하고 온몸에 땀이 나게 한다. 이 단락의 관점에 의거하면 포인트는 권력과 지위의 작용에 대해 너무 높게 평가했다는 점이다. 만물 만사가 모두 천도 덮개 아래서 움직인다. 권력과 고위직에서 얻는 것도 그저 천도에서 나오는 것이지 당신 자신이 뭐 잘나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당신이 어떻게 통치하건, 무슨 아이디어를 내건, 무슨 규범을 거론하건 간에 어떤 동기를 막론하고 그 결과는 모두 백성을 간섭하고 해하는 것이라니?장자가 정말 뼈에 사무치게 말 한번 잘했다. --- p.114
장자와 함께 춤출 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 뜻을 취할 것인지 아니면 그 말을 취할 것인지에 있다. 말에서 진지함이 소통되지 않는다면 뜻은 어디에서 온단 말인가? 말에 대한 한 무더기의 고증과 시험적인 해석이 있어 세월이 흐르면서 산처럼 쌓이고 널리 자료를 인용하여 증명하니, 대단히 거대한 물건이 생으로 눌러 죽일 것 같은데 도대체 어디로 가서 진의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태반은 본래의 뜻에서 더욱 멀리 나가버려 당신 역시 책벌레가 되고 더욱 쓸모가 없게 된다. 가장 큰 뜻은 어디에 있나? 첫째는 목숨을 보전하는 것으로, 이 목숨을 보전하는 일을 작게 보아서는 안 된다. 둘째는 득유로, 유는 유고, 유는 즉 자유다. 대단하다, 정말 대단해! 셋째는 망언으로, 스스로에게 개념, 명사 명의 부속품과 희생 품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넷째는 공간으로, 자신에게 여지를 주는 것이다. 다섯째는 무명 논리상 망언의 필연적 결과는 무명이다. 이와 같을진대 이런 것은 당연히 부족하고 전면적이 아니지만 오히려 확실히 재미가 있다. 『장자』를 읽으면 『논어』, 『맹자』처럼 정확한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런 책들보다는 훨씬 재미있고 재주가 있다. 너무 재치가 있어 음미할수록 그 맛이 새롭다. 정말 좋구나! 좋아! --- p.248쪽
어찌 장자는 선을 의심하는가? 자신의 학설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고 의심하며, 의와 이의 논쟁은 납득할 수 없어 의심한다. 증자가 부모를 그리워하는 것은 돈을 의식하는 것이라 의심하며, 생명은 그 본모습의 없음(근거나 필연성이 없음)을 의심한다. 잔상은 형체의 운동 변화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며(그리고 잡아두지 못한다며) 의심한다. …… 의심이 많으면 정말 지혜가 생기는가? 그렇다. 사상과 의심은 쌍둥이와 같아서 사상은 의심을 낳고, 의심은 사상을 촉발시킨다. 하지만 실컷 의심한 다음에는 어찌해야 좋겠는가?
--- p.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