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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여자

나라는 여자

: 소녀가 어른이 되기까지 새로운 개인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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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4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436g | 145*215*20mm
ISBN13 9788960901582
ISBN10 896090158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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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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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기도 한다는 진부한 운명론적인 말을 결코 인정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그 겨울과 봄을 거치며 시간의 흐름이 확실히 나를 그 이전과는 다른 장소에 가져다놓았음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그냥 ‘묵혀내야’ 하는 시간이 있다. 살기 위해 죽은 듯이 살아내야 하는 시간.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나는 세월의 흐름이 안겨준 재생력에 겸허히 감사해야만 했다. 스물두 살의 나로서는 인정하기 싫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pp.55~56

감정을 표현하고 내지르고 싶어 안달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참 사람은 지긋지긋하게 안 변하는구나’ 싶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그 후에 남는 것이 서로의 실체에 대한 실망과 몰이해, 그리고 마침내 이별이라 할지언정, 최소 매일 반나절은 그 사람과 몸과 마음을 꼭 끼운 채로 보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이런 정신 상태가 파멸을 보다 확실하게 가져다줄 걸 알면서도 나도 나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런 말을 듣곤 했다.
“너랑 사귀고 있으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아.”---p.91

사랑이 식은 후 그 사람의 표정이, 몸짓이, 말투가 달라지는 것을 보며 어떻게 이렇게 하루아침에 변할 수 있느냐고 나는 통탄했다. 그러나 사실 그 사람이 변한 게 아니었다. 사람의 정신과 감각을 뒤흔드는 바이러스가 어느 날 저절로 빠져나가 본래의 상태로 돌아온 것뿐이었다. 잠시 우리는 감염되었고 사랑이 그 사람에게 그림자처럼 아우라를 드리웠다. 아름답고 눈부시게 빛나는 사람으로 만들어서 내 앞에 가져다준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죄가 없고 차라리 사랑에 감사하기로 했다.---pp.119~120

한국인인 것보다, 여자인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나는 남과 다를 수밖에 없고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개별적인 인격체를 가진 개인으로 태어났다. 그런 우리가 서로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을 공히 받아들여야 우리가 다름에도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 동시에 나의 조금은 쓸쓸한 개인적인 특수성이라고 생각했던 점이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것일 수 있음을 확인하는 것도 마음 따뜻해지는 일이었다.---p. 141

상담 글을 쓰면서 이상적인 낙관론으로 위로하는 것만은 피했고 냉정할 정도로 혹독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것부터 제시했다. 현실은 불공평하고 모순으로 가득 차 있고 그 가운데 한없이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그래도 일단 할 수 있는 만큼은 노력하고 버텨보자고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담 멘트는 “다 잘될 거야”였는데, 그것은 잘되고자 노력하는 사람만이 ‘어쩌면’ 잘되기 때문이다. 또한 내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주워 담기보다 독자들이 ‘아, 너는 이 사안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는 거구나’ 정도로 참고하면서 자신의 기존 생각을 한 번 더 돌아볼 계기가 되었으면 했다.---p.172

내가 소중히 여기는 행복의 형태는 감각이 어떤 형태로든 생생히 살아 있을 때를 일컬었다. 가령 사랑을 하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낄 때 나는 행복했다. 글을 쓰면서 어떤 감정에 빠질 때 나는 행복했다. 그런데 이건 아무래도 느낌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행복’이라는 개념과는 좀 다른 것 같다. 하여 행복이 아니라 ‘충만감’이나 ‘충족감’으로 표현하곤 했다.---p.206

무엇을 겹겹이 쌓는지도 모르고 몸집을 위로 옆으로 그저 부풀리며 ‘성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상처 입고 피 흘리고 까지고 끊임없이 새살을 만들어내며 자신이 온전히 있어야 할 제자리에서 ‘재생’한다. 자신이 놓인 그 자리에서 그렇게 시큰하도록 선명하고 투명해져만 간다. 평생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수줍은 자신감으로, 스스로를 재생하며 살아간다.
---「에필로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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