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너짐으로부터 당신이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내어드리고 싶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악인이 되어 서로에게 선이 된다면 얼마든지 악인이 되고 싶습니다. 먼저 저의 무너짐을 들려드립니다.
"곧은 마음이 갖고 싶댔죠? 사실 그게 더 무서운 것이거든요." 곧게 뻗고 단단할수록 무너지기 쉽다는 것을 알고 난 뒤로 틈이 없는 견고함이 아슬아슬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탄력적이어야만 합니다. 쓰러짐은 무서워할 것이 아닙니다. 살면서 한 번 쓰러져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누구나 실패할 수 있고 아플 수 있습니다. 이 이치를 빨리 깨달을수록 남은 날들이 편안해질지도 모르죠.
--- pp.13-37
시간이 흘러도 거미는 계속 집을 지었고 저는 그걸 그대로 두어야 할지, 없애야 할지 고민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생각했어요. 엄마가 두고 간 신발 한 짝은 나를 위한 선물이 아니라, 엄마가 미처 신지 못한 거구나. 엄마가 너무 급해서 아끼는 신발을 신고는 싶은데 마음이 너무 조급해서 신발도 한짝만 신고 가버린 거구나, 하고요.
그렇다면 언제 다시 엄마가 돌아올지 모르니 엄마를 위해 신발에 가득한 거미줄을 없애는 게 맞는 일이었죠. 엄마가 언제든 돌아오면 바로 신을 수 있게요. 그건 엄마의 물건이니까, 엄마의 발이 시린 계절이 되면 찾으러 올 지도 모르니까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엄마가 돌아오더라도, 당신이 너무 오래 집을 비운 게 아니니 미처 신지 못한 신발을 보며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도 말고 집안으로 들어와 잠시 쉬었다 가라고요. 다시 먼 길을 가야하는 지도 모르잖아요.
그런데 제가 신발을 너무 깊은 곳에 숨겨두어서 그랬을까요.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엄마가 벗어두고 간 신발은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거미줄만 계속 만들어냈죠.
--- p.59
나를 받아준 고모는 몰랐는데 새벽마다 내가 잘 자고 있나 방문을 열어보셨단다. 항상 나를 위해 기도한다는 우리 고모. 그날 새벽도 화장실 가는 길에 내가 자는 방문을 열어보셨고, 곧바로 비명이 안 되셨을거다. 나는 기억을 못 하지만, 기억을 더듬는 것도 내겐 용기이다. 어떤 말로 전했을까, 고모의 전화를 받고서 달려온 우리 가족. 엄마, 아빠, 누나.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 엄마의 목소리는 울음소리 같았다. 평소에 살 부딪칠 일 없는 아빠가 자꾸 나를 만졌고, 그러고 보니 내가 방 안이 아닌 고모 집 거실에 누워 있는 데, 119가 도착하면 곧바로 옮기기 위해서였지 싶다. 한 번 씩 눈을 끔뻑거릴 때마다 커다랗게 거실 조명이 날 때렸다. 아직 새벽이구나.
그날 새벽 내 오른쪽 발등이 탔다. 고모가 목격한 내 발등은 헤어드라이기로부터 4도의 화상을 입고 있었다. 어떻게 발생한 일인지는 나만이 아는데, 나는 기억을 못 한 다. 코드가 원래부터 꽂혀 있었던 건지, 그래서 내가 잠결에 실수로 동작 버튼을 건드렸던 건지. 모두가 알 만한 사실은, 헤어드라이기가 발등을 태우는데도 나는 고모가 발견해줄 때까지 계속 잠에서 깨지 않았다는 거다.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 pp.87-88
너무 늦었지만 이제 와 물어보고 싶다. 그런 너도 힘든 시간들이 있었는지, 어쩌면, 그런 나라서 너도 내게 아무 말 꺼내지 않았던 거니. 그래서 너는 몇 년 만에 만나 그런 책을 내미는 내 초췌한 얼굴을 낯설다는 얼굴로 바라봤던 거니.
그런 나였기에 내 안으로 틀어박힌 나를 너는 더 낯설게 느꼈을지 모른다. 내속에 큰 구멍이 생겼다는 것, 풀썩 넘어져 이제 앞으로는 나아갈 수 없다는 것, 그 사실 자체가 무엇보다도 참기 어려웠다. 나도 내가 어쩌다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는 여전히 모른다. 그 이유를 생각하면 할수록 나를 자책하거나 어른들을 원망하게만 된다. 이제는 그저 내가 주저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만이 남았을 뿐이다.
(중략)
이제는 안다. 트랙 바깥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같이 죽음이나 실패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나무와 그늘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마라톤 경주라고 생각했던 그 경주가 실은 내가, 혹은 누군가가 개최한 것임을, 그 트랙을 따라 뛰지 않아도 괜찮음을 안다. 물론 때로는 다시 걷지도 못할까 불안하다. 하지만 이제는 부러진 다리로 애써 남들을 제치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안다.
--- pp.110-127
남들보다 심장을 한두 개정도 더 갖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토록 많은 것들을 필요 이상으로 느끼다가 스스로 깨지고 마는 것일까. 어쩌면 그들은 애초부터 세 개의 심장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시작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남들보다 두 개의 심장을 더 갖고 있다면, 그렇다면 이미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은 욕심일 수도 있겠다. 누구나 자기만의 생존 방식을 찾게 된다면 그들은 날마다 무너져 내리는 세 개의 심장으로 어떻게 이 세상에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걸까.
하지만 나는 그들이 왜 나약하기만 한 사람들은 아닌지에 대해 구구절절이 변명을 해보고 싶다. 변명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까닭은 위에 나열한 나약한 사람에 대한 특성들이 실은 내가 살아오면서 스스로의 성격과 마음을 살펴본 나 자신에 대한 관찰기와도 같기 때문이다.
--- pp.132-133
주먹을 쥐어봅니다. 꽉 쥔 주먹에는 공포가 담겨 있습니다. 저는 저의 주먹을 내려다보는 일도 두려워 곁눈질로 힐끔 훔쳐보는 것이 전부입니다. 네덜란드의 용감한 소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길을 가다가 방파제에 구멍이 뚫린 것을 발견하고는 주먹을 집어넣어 밤새도록 방파제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냈다는 이야기. 다음 날 아침 싸늘하게 주검이 된 소년을 본 마을사람들은 그의 용맹함을 기리기 위해 동상을 세워두었습니다. 무너짐을 막는 일은 결국 스스로를 희생하고 무너뜨려야만 가능한 일일까요?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한 이 소년은 과연 무너진 걸까요. 아니면 스스로 우뚝 선 걸까요. 타인의 무너짐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용맹함이나 희생 같은 것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매일아침 출근하시는 어머니께서 “밥 잘 챙겨먹어.”하고 메시지를 보내주시듯이 말입니다.
선생, 봄날의 벚꽃처럼 흩날리는 위로의 말들을 뿌려주시길 바랍니다. 때로는 무의미해 보이는 말들도 큰 위로가 되는 법입니다.
--- p.174
참으로 외롭고 끈질긴 시간을 보내며 나는 한 가지의 생각을 한다. 우리는 어차피 세상 속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아 같지만, 서로를 안아주고 보호해주는 타인은 더 이상 없지만, 삶을 극복한다고 해서 또다시 무너져 내리지 말라는 법도 없지만, 자주 방황했으므로 우리는 하나의 능력을 더 가지게 되었으니 그건 힘든 이들을 알아보는 눈 같은 것. 당신은 더 넓은 마음으로 누군가를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것만으로 되었다는 것. 나는 당신의 삶을 응원한다. 외롭고 아파도, 세상이 당신을 등지고 삿대질해도, 당신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이 있다면 그 길이 절대적으로 맞다고 말해주고 싶다. 무조건 맞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 자신을 의심하지 말고 반드시 일어나 살아라. 살아가라.
--- pp.217-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