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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

나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

: 기시미 이치로의 방구석 1열 인생 상담

리뷰 총점9.6 리뷰 22건 | 판매지수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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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2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360쪽 | 460g | 140*200*30mm
ISBN13 9788960517745
ISBN10 8960517747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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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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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그 누구도 늙고 병들어 죽어 가는 고통을 피할 수는 없지만, 저는 산다는 게 원래 괴로운 것이라고, 그것이 인생의 진리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사는 게 원래 힘들다는 말을 건넨들 고민을 상담하러 온 이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통스러운 것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이토록 고된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밝히는 것입니다.

이 책은 철학자와 열아홉 편의 한국 영화 주인공들이 나눈 대화를 엮었습니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인생의 문제는 다방면에 걸쳐 있습니다. 그러나 철학자가 대화를 풀어 나갈 때의 방식은 명확합니다. 먼저 철학자는 고통을 외면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건 당신 탓이 아니에요” 같은 말을 건네지 않으며, 또한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고 과거에 초점을 맞추지도 않습니다. 가령 지금 직면한 문제의 원인이 과거에 있다고 해도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는 이상 그 원인을 과거에서 찾아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들어가며: ‘삶’이란 고통 앞에 선 그대에게」중에서

철학자 : 상우 씨가 그분께 결혼하자고 직접 이야기한 적은 없죠? 그분도 결혼하자고 말한 적이 없고요. 상대에게 말하지 않는 이상 서로 생각이 같을 수는 없어요. 그분은 그저 “나 김치 못 담가”라고 말했을 뿐 상우 씨에게 ‘결혼하고 싶다’ 혹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건 아니잖아요?
상우 : 하지만 제가 김치 담글 줄 아냐고 물었을 때 그 사람이 제게 “그럼”이라고 대답했다는 건, 분명 저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철학자 :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넘겨짚고 있었던 것 같아 답답하네요. 제가 보기에는 한 사람은 결혼을 하고 싶었는데 상대방은 결혼을 망설였던 게 문제였던 것 같아요. 두 사람의 인생 목표가 일치하지 않았던 거죠. 아무리 상대를 사랑하더라도 서로 생각하는 미래가 다르다면 관계를 지속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너를 잊지 못하는 이유 - 봄날은 간다 상우의 이야기」중에서

첫사랑은 대개 결혼에까지 이르지 못한다. 이번 생에서 너무 일찍 만났기 때문이다. 설령 서로가 사모하고 사랑하면서 사귈 수 있었다고 해도 학생끼리라면 졸업한 뒤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어디에서 살지 같은 문제를 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때 두 사람이 서로 해보고 싶은 일이 너무 동떨어져 있다면, 사귀는 상대를 아무리 좋아한다한들 그 사람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여 졸업이나 취업 같은 인생의 전기(轉機)를 맞는 횟수가 많아지면 많을수록 헤어질 확률은 높아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만남의 시기가 늦어졌다 해도 영화 속 인물들처럼, 두 사람이 인생의 전기를 경험하지 않고도 헤어지는 경우는 있다. 인생의 전기를 맞이하는 것만이 이별의 원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로 두 사람의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막 사귀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결코 하지 않았던 싸움을 하게 된다면, 예를 들어 졸업을 계기로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두 사람이 겪은 일 때문도, 두 사람이 미숙했기 때문도 아니다. 좋은 관계를 구축하는 법을 서로가 몰랐기 때문이다.
---「첫눈 오는 날 그곳에서 만나자 - 건축학개론」중에서

상훈 : 그러는 날 겁내지 않고 내 말에 반박하는 사람이 있더라고. 선생처럼. 그것도 새파란 여고생이 말이야. 그걸 보고 난 그동안 내가 살아온 방식이 틀렸던 게 아닐까 의심하게 됐어.
철학자 : 상훈 씨의 방식 중 어떤 점이 틀렸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상훈 : 요즘 이런 식으로 사는 게 싫다고 절실히 느끼곤 해. 예전에는 내가 욕하고 소리 지르면 다들 겁내는 모습을 보고 나 자신이 뭔가 대단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 근데 언젠가부터 아무도 나를 진짜 ‘나’로 대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나란 사람이 아니라 내 ‘힘’에 굴복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지금은 내 힘만 믿고 젊은 놈들을 때리곤 하는데, 언젠가 내가 약해져서 힘이 없다는 걸 알면 반대로 내가 젊은 놈들에게 두들겨 맞을지도 몰라.
---「차라리 고아였으면 좋겠어 - 똥파리」중에서

나의 아버지는 말년에 치매를 앓으셨다. 그때 아버지는 짙은 안개 속에서 살고 계신 것 같았다. 그런데 가끔씩 갑자기 안개가 걷히면서 맑게 개는 순간이 찾아오곤 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이렇게 중얼거리셨다. “잊어버린 건 어쩔 수 없어.” 아버지가 하신 말씀은 과거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의미가 아니었으리라. 스스로 ‘잊은’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잊어버린’ 것이라고 하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을 잊었다’는 뜻이기에.

아버지는 오랜 세월 함께한 아내를 잊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잊어서는 안 될 일이었을 것이다. “잊어서는 안 돼, 떠올리고 싶어, 하지만 기억나지 않아.” 아버지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할 수만 있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 아버지께서 “잊어버린 건 어쩔 수 없어”라고 하셨을 때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생각해 낼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려는 각오의 표명이었다.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하는 방법 - 수상한 그녀 첫 번째 이야기」중에서

혜원: 제가 서울에 간다 간다 말하면서 가지 못하는 것도 저 스스로 결정하고 싶지 않아서일까요?
철학자: 망설이며 고민하는 한 결정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러나 고민을 멈추는 순간 결정해야만 합니다. 혹시 결단을 내린 뒤에 자신에게 닥칠 일들을 받아들이기가 두려운 건가요?
혜원: 뭔가를 결정할 때는 타이밍이 중요하지 않나요? 전 그 타이밍을 기다리는 중이에요.
철학자: 그렇지 않습니다. 타이밍은 스스로 정할 수 있어요.
혜원: 그러다 때를 잘못 맞추는 바람에 제가 바라던 걸 이루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요?
철학자: 그럴 수도 있습니다.
혜원: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철학자: 다시 하면 됩니다. 아니면 다른 것을 해도 좋고요.
---「뭘 그렇게 어렵게 사냐? - 리틀 포레스트」중에서

나 또한 아버지의 연명 치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을 맞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때 이미 스스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태였다. 나는 평온히 가시게 해 달라는 대답으로 연명 치료를 거부했지만, 과연 그 결단이 옳았는지에 대해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할 날이 가까워졌다. 의사한테 아버지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나는 한 가닥 희망을 버릴 수 없었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 “아버지, 전 당신을 보내 드릴 수 없어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뒤에도 결심은 계속 흔들렸다. 자식이라도 부모의 마지막 가는 길을 결정할 수는 없다고 말이다. ‘설령 아버지가 내 결정을 원치 않으시더라도 아버지는 내 결정에 반박할 수조차 없다. 그렇다면 아버지를 대신해 앞날을 결정하면 안 되는 게 아닐까’라고. 그러나 나는 곧 생각했다. ‘어떠한 결정을 내리든 비난하는 사람은 있으리라. 그래도 누군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면 나 스스로 결정하자.’ 그게 합리적인 결단이 아닐 수도 있었지만, 아버지라면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용서해 주시리라 믿었다. 그게 정말 최선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훗날 돌이켜 보면 실수였다고 후회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결단은 내릴 수 있고, 또 내려야만 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그래도 됩니까? - 터널」중에서

영호 : 제가 착해질 수 있을까요?
철학자 : 영호 씨는 굳이 다른 어떤 사람으로 변하지 않아도 됩니다.
영호 : 지금 이대로의 저라도 괜찮다는 말씀인가요?
철학자 :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내가 되기란 쉽지 않지만,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은 가능합니다. 실제로는 지금도 영호 씨는 착한 사람일 겁니다. 그런데 착한 사람으로 사는 걸 그만두려고…….
영호 : 경찰이 됐죠…….
철학자 : 사실 영호 씨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착한 당신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착했던 영호 씨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하나는 과거에 지배받는 것을 그만두는 겁니다. 과거의 사건이 지금의 당신을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인생을 새롭게 살 수 있어요. 다른 하나는 타인이 동료라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영호 씨의 삶을 망치려고 할 리 없어요. 당신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돌아가고 싶은 ‘그때’는 언제입니까? - 박하사탕」중에서

철학자: 지금처럼 살기 힘든 시대를 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 그런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헌데, 내가 지자知者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고 얘기했는데, 이때 그리스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나는 내가 지자가 아니라는 것을 나 자신과 함께 안다”가 됩니다. 나 자신과 함께 무엇을 아는가 하면 지금의 예처럼, 무지(無知)나 실패를 아는 것입니다. 즉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하는 것입니다. ‘양심’이란 말도 어원에서부터 그 뜻을 헤아려 보면 할 수 없는 것을 아는 것이니, 양심이 있는 사람은 본래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는 겁니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야말로 더 부끄러운 것이죠.
동주: 그건 제가 존경하는 시인에게서도 들은 말입니다. 저는 세상을 바꾸고 싶습니다. 하지만 행동에 나설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철학자: 시에는 세상을 바꿀 힘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동주: 아니요.
철학자: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입니다. 동주 씨의 일은 시인으로서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시인이 되기를 원했던 게 부끄럽습니다 - 동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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