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노 라투르가 선택한 접근은 실험실의 일부가 되는 것이었는데, 즉 과학 연구의 일상적이고 내밀한 과정을 면밀하게 따라가는 것이었으며, 한편으로는 이와 동시에 ‘내부에 있는’ 외부인 관찰자로 남아 있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과학 ‘문화’를 연구하기 위한 일종의 인류학적 조사이며, 과학자들이 행하는 바와 그들이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사고하느냐를 아주 자세히 따라가는 것이었다. (……) 그는 세포, 호르몬 또는 화학반응을 연구하는 그 똑같이 차갑고 깜박이지 않는 눈으로, 과학자들을 관찰하고자 했는데, 이것은 그와 같은 우월한 관점에서 그들 스스로를 분석당하게끔 하는 데는 익숙하지가 않은 과학자 쪽에 편치 않은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과정이다.
--- p.17
예를 들어 생물학적 검정 없이는 한 물질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할 수가 없을 것이다. (……) 생물학적 검정은 그 물질의 구성을 이루어낸다. 이와 유사하게, 어떤 물질은 분별증류관 없이 존재한다고 이야기가 될 수 없는데, 분별물은 식별 작업 과정 덕에 존재할 수 있을 뿐이기에 그러하다. 마찬가지로 핵자기 공명 분석계가 산출해낸 스펙트럼은 분석계 없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현상이 일정한 물질적 도구 사용에 의존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현상이 실험실의 물질적 배치에 의해서 철저하게 구성된다는 것이다.
--- p.87
자금 지원 기관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기유맹 자신도 그저 다른 이들의 연구를 비판하는 사람으로 남았을 수도 있다. (……) 이 새로운 전략은 프로그램의 비용을 올리는 효과와 규칙의 엄격성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모두 지녔다. 전체로서의 신경내분비학자에게 훌륭한 것으로 인정받았고, 미국 정부기관에서 연구비를 조달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새로운 전략은 일본, 체코슬로바키아, 잉글랜드의 경쟁자들을 효과적으로 제거해버렸다.
--- p.157~158
여기서 우리는 TRF 이야기의 전환점에 도달한다. TRF 분야 연구자들은 천연 TRF가 Pyro-Glu-His-Pro-NH₂와 “유사한” 스펙트럼을 가졌다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으며, TRF가 합성 화합물인 Pyro-Glu-His-Pro-NH₂와 “닮았다”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주요한 존재론적 변화가 일어났다. 참여자들은 이제 TRF는 Pyro-Glu-His-Pro-NH₂이다고 말하고 있었다.
--- p.189
진술이 일단 안정화되기 시작하면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그 진술은 분리된 존재자가 된다. 한편으로, 그것은 대상에 관한 진술을 나타내는 단어의 집합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그것 고유의 생명을 갖는 대상 자체에 대응한다. (……) 그렇지만 안정화 지점에서는 이들 대상 그리고 이들에 관한 진술 둘 모두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머지않아 실재성은 대상에 점점 더 많이 속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대상에 관한 진술에는 점점 더 적게 속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결과적으로 전도가 일어난다. 그 대상이 왜 처음으로 그 진술이 정식화되었느냐에 대한 이유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 p.230~231
위치의 중요성은 이력을 시작하면서 실험실에 들어왔다가 잠시 후에 떠난 과학자들의 궤적으로 잘 예시된다. (……) 한 사람은 더 나은 연구 위치를 얻었으나 그 이후로 인용된 어떤 논문도 출간하지 못했으며 다른 세 사람은 그들의 자산을 가르치거나 사업을 함으로써 결산해야 했다. 물론 신용 가능성의 관점에서 이들 이동은 빈약한 투자를 나타낸다. 그렇지만 돈이나 안전성의 관점에서는 중요한 보답이 있었을 수 있다. 다섯 사람 중에 마지막은 연구 쪽에서 종신직 위치를 얻었는데, 그가 이미 그 자신의 독립 자본을 소유했기 때문이었다.
--- p.286
그들은 정부 자본의 단순한 피고용자다. 아무리 확장적일지라도, 그들의 과학적 자본은 팔 수 없고 물려줄 수도 없으며 드물게나마 화폐자본과 교환할 수 있을 따름이다. (……) 만일 조심하지 않으면 그들은 피고용자 또는 초기술자로 끝날 수 있다. 그렇지만 독립하거나 그리고 운이 좋으면 스스로 고용자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 우리가 관찰했던 과학자들은 그러므로 두 가지의 중첩되는 경제적 순환 사이에서 놓여 있었다. 그들은 일이 진행되게 하기 위해 자신의 자본을 끊임없이 운용해야 했지만, 이와 동시에 자신이 빌려온 돈과 신용을 사용하는 일을 정당화해야 했다.
--- p.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