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엔 나 역시 그 어머니처럼 참 많이 불안했었고 일상의 매 순간이 두려움이었다. 나와 아이의 삶은 사교육을 모두 끊고서 외부적인 것들이 아닌 아이와 엄마인 나 자신에 온전히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아주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7~8여 년이 흐른 지금은 이전과 극적으로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강박, 통제, 불안 등으로 하루하루 일상 자체가 힘겨워 아침에 눈을 뜨고 싶지 않을 정도였던 시기가 있었다. 유아기적부터 몸으로 각인된 뿌리 깊은 외로움에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곤 했다.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치유하고 성장하고 싶다고 몸부림치던 시간이 수년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리도 가보고 싶던 저 너머에 어쩌다 보니 나는 와 있다.
죄책감, 수치심으로 육아라는 시간을 물들이며 보내던 내가 이제는 책 두 권을 출간하고 전국으로 강연을 다니며 유튜브 채널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그 간 가슴으로 깨달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나의 세 번째 저서인 이 책은 내가 지내 온 시간들 속에서 깨달은 메시지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여러분들께 나누고 전하고자 하는 목적이 될 것 같다. 그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나누려고 한다.
아이들의 부모인 우리 또한 어린 시절이 있었고, 우리들 부모님의 가치관, 신념, 생각하는 방식대로 무언의 교육을 받아왔다. 나의 영, 유아기 때는 어땠는지 청소년기에는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지 우리는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게 될 때까지 대부분의 기억을 의식에서 잊고 살아간다.
너무 어리고 연약했기에 부모님이 세상이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던 상처, 그 감정과 감각이 모두 무의식으로 각인되어 몸 안에 저장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자신의 정리되지 않은 과거, 엄마들의 상처, 이런 내면의 심리적인 부분을 알아차리고 이해하지 못한 부모는 대부분 우리 부모님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신념, 과거의 경험으로 인한 믿음, 인식들을 아이들에 주입시키고 투영할 가능성이 크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대물림이다. 이는 아이의 고유함, 특별함이 발현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그 아이만의, 자신의 별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 숨 쉬고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선한 본성, 사랑이다. 사랑? 왜 자꾸 사랑 타령이지?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우리 아이들이 사랑으로 영적인 존재로 이 세상에 왔듯이 나 또한 그렇게 이 세상에 왔고, 우리의 부모님 또한 사랑으로 이 우주에 존재한다는 것을 가슴으로 내리고 이해했을 때 삶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우리는 누구나 선한 본성, 고유함을 지니고 있으며, 사랑으로 존재하지만 단지 살아오면서, 살아가면서 그 진실을 서서히 잃어버렸을 뿐이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 그래서 가르치고 길들여야만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아이들이 이 세상에 와서 성장하며 필요한 모든 것, 그 힘은 아이 안에 이미 가지고 있다는 믿음 그것이 온전한 믿음이다. 부모의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으로 자라지 못했기에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고 그렇기에 우리 아이들을 사랑으로 비출 수 없는 것이다.
기대나 통제, 부담이 아닌 순수한 믿음으로 아이를 비출 수 있을 때 아이의 선함, 유일무이한 자신의 고유함을 발현할 수 있다. 사심 가득함으로 아이를 통제하고 두려움으로 아이를 대하고 있는지 엄마가 자신이 가진 힘과 능력을 믿고 있는지 아이들은 잘 알고 있다. 남들이, 사회가, 통념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지나치게 아이를 맞추려하거나 아이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전전긍긍 하는 엄마의 에너지를 아이들은 모두 간파한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나의 가치를 내 맡기거나 아이의 귀한 고유성을 잃게 해서는 안 된다.
--- 「세상의 중심은 너야 [힐러리 클린턴의 어머니 도로시 하월 로댐]」 중에서
스필버그는 학교에서 ‘지진아’로 통했다. 공부도 못하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늘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해 열등감으로 힘들어 했다. 스필버그는 공부뿐 아니라 독서를 아주 싫어하는 소년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수학에 낙제하지 않도록 억지로 공부를 시키셨지만 스필버그는 어릴 때부터 오직 영화에만 몰두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수학이 싫었다. 나는 열두 살인가 열세 살 때부터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과학이나 수학 혹은 외국어 따위가 영화를 제작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숙제 때문에라도 학교에 가기 싫었다. 나는 책보다 TV를 더 좋아했다. 나 자신 역시 TV 중독증에 걸린 아이젠하워 세대의 한 소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공부도 운동도 못했고 특히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또래에게 놀림과 따돌림을 무척 많이 받았다. 스필버그의 어머니는 공부에 별 관심이 없는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고 학교에 가기 싫어 자주 꾀병을 부리는 아들을 보며 “아무래도 안 되겠어. 오늘은 학교에 가지 말고 쉬도록 해라.”라고 말했다. 스티븐의 여동생은 “어머니는 오빠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는데 그런 식으로 오빠의 독창성을 살리는 길로 이끌어 주셨고 덕분에 우리들도 자유분방하게 자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학교에 가지 않고 영화를 만든다며 카메라만 들고 다니는 아들을 보며 어머니는 나무라지 않았고 아이의 영화에 대한 애정을 존중해 주었다. “나는 네가 남들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네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라고 늘 이야기해 주었다.
아, 이런 어머니라니…… 요즘 시대 우리 주변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그런 어머니상이다. 내가 글로 나열했지만 존경스럽기도 하고 과연 이런 육아방식과 교육관을 지닐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러야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바로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쓰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기도 할 것이다.
SBS스페셜 [미국을 이끄는 유대인의 힘] 이라는 방송에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어머니가 직접 출연해 스티븐의 어린 시절과 교육방식을 말하는 인터뷰가 나온다. “내 어머니는 그 아이를 정말 사랑하셨습니다. 스티븐도 많이 따랐지요.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말을 잘 새겨둬라. 이 아이는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칠 아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어머니 리아 아들러는 신시내티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 못했지만 그녀는 부모님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내 부모님은 우리를 키울 때 정신적으로 예술적으로 자유롭게 자라도록 도와줬어요. 나는 그저 내가 키워진 대로 스티븐을 키웠을 뿐입니다.”
스티븐의 할머니가 이 아이는 세계에 이름을 떨칠 것이라고 믿었던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집중하기 바란다. 또래 아이들과는 다른 유별난 아이를 지켜보면서 상상력이 뛰어나다고 믿었고, 아이의 기질과 특성을 단점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의 몰입을 존중하고 이를 길러주려고 노력했다. 학습이나 독서 등 학업성적 위주의 교육이 아닌 아이의 특별함인 호기심, 상상력에 관심을 기울이고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어린 스필버그는 두려움도 남달랐다. 스필버그는 늘 엉뚱한 상상을 했고 그러다보니 모든 것을 두려워했다고 그의 어머니는 말한다. [상상력과 두려움] , 이 부분도 한번 생각해 보자.
--- 「‘다름’이 두려운 엄마들 [스티븐 스필버그 어머니 리아 아들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