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시작은 개들이었다.
나는 1990년대 초에 캐롤라인 냅을 잠깐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그녀는 [보스턴 피닉스]의 칼럼니스트였고, 나는 [보스턴 글로브]의 북리뷰 편집자였다. 그녀의 칼럼 모음집이 출간된 직후 지루하고 답답한 문인들 모임에서 서로 소개를 받았다.
“캐롤라인의 새 책이 나왔어!”
캐롤라인과 내가 서로에게 도움이 될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임을 주최한 이가 명랑하게 말했다. 둘만 남겨진 우리는 멋쩍은 웃음과 어색한 눈빛을 교환했다. 나는 한눈에 캐롤라인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자기 홍보에 능한 사람이 아니구나 싶었다. 매니큐어를 바른 잘 손질된 손톱, 화이트와인 잔을 들고 있던 손, 낭랑하고 수줍은 목소리까지 그녀는 겸양을 매끄러운 갑옷처럼 온몸에 두르고 있었다. 우리는 공손히 안부의 말을 주고받은 다음 각자 다른 손님들과 인사를 하느라 돌아섰다. 몇 년 뒤 그녀를 케임브리지 프레쉬폰드 저수지의 오리연못 근처에서 다시 만났다. 우리 둘 다 소박한 차림새였다.
---「클레멘타인과 루실」 중에서
우리는 도심을 벗어나 숲에서 몇 시간씩 개들을 풀어놓았다. 미들섹스 펠스 외에도 울창한 숲과 들판이 보존된 장소를 찾아 매사추세츠 동부를 두루 돌아다녔다. 가을에는 해변을 산책했고, 겨울에는 개들에게 줄 간식과 사람이 먹을 크래커를 챙겨 산악 하이킹코스를 걸었다. 넷이 다 지쳐 말이 없어질 때까지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개들이 지그재그 산길을 돌진하는 동안 캐롤라인과 나는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장시간 너무 많이, 너무 깊은 대화가 이어지는 기나긴 오후 여정을 우리는 분석 산책이라 불렀다. 차에 오를 때면 캐롤라인은 말하곤 했다.
“먼 길로 돌아서 집에 가자!”
그럼 우리는 서둘러 헤어지지 않으려고 서머빌이나 메드퍼드의 혼잡한 길로 접어들었다. 긴 드라이브 끝에 클레멘타인이 뒷자리에서 가볍게 코를 골 즈음, 둘 중 어느 쪽이든 내려줄 사람 집 앞에 앉아 대화를 계속 이었다. 그러다 각자 집으로 들어가서는 다시 전화기를 붙잡았다.
---「클레멘타인과 루실」 중에서
겉으로 보이는 닮은 점보다 더 깊숙한 공통점은 술에 얽힌 과거였다. 중독의 본질인 가슴 속 빈방, 우리 둘 다 그게 있었다. 캐롤라인과 나는 단시간에 서로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지만, 가장 큰 이 공통점만큼은 처음 몇 달 동안 그녀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친구가 되기 전 여름에 나는 이미 캐롤라인의 자서전 ≪드링킹≫을 읽었다. 클레멘타인과 일주일 동안 머물던 케이프코드 트루로의 비에 젖은 오두막에서였다. 낮 동안은 연못에서 수영을 하고 땅거미 질 때까지 방충망이 둘린 베란다에서 책을 읽었다. 잠든 클레멘타인 옆에 앉아 바깥의 어스름이 칠흑처럼 깜깜해질 때까지 책을 읽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유명인사들의 중독을 고백한 자서전이 잇달아 출판되기 시작했다. 피트 해밀Pete Hamill을 비롯한 몇몇이 ≪언더 더 볼케이노Under the Volcano 1947년에 출판된 영국 작가 말콤 로리의 반자전적 소설≫의 새로운 남성 버전을 발표한 참이었다. 그때까지 술에 얽힌 이야기는 대부분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나는 그날 밤 캐롤라인의 책을 단숨에 끝까지 읽었다. 솔직하게 내면을 드러내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십이 년 먼저 마지막 남은 잭다니엘을 개수대에 쏟아버린 사람인 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진실임을 알았다.
---「남자가 여자의 우정을 이해할까?」 중에서
알코올에 얽힌 과거사 때문에도 서로 친숙했지만, 우리에게는 더 복잡하고 질긴 공통점이 있었다. 변화 능력에 대한 믿음, 그러니까 삶은 고되고 때로는 고독하고 힘든 싸움을 치러야 하지만 상처투성이로도 두려움을 뚫고 살아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희망을 바라보는 우울증 환자의 시각이기는 해도 오랜 고심의 산물이었다. 소소한 일상의 사건사고들을 만날 때도, 진짜 어려운 난관을 마주칠 때도 우리는 이 믿음을 잃지 않았다.
캐롤라인은 이십대 후반에 힘들게 거식증을 헤쳐 나왔고, 나는 때로는 기고 때로는 절뚝거리며 소아마비를 이겨냈다. 그 긴 오르막 덕분에 나는 술을 끊는 데 없어서는 안 되었던 두 가지 자질, 결단력과 집요함을 기를 수 있었다. 상대방에게서 이런 생존방식을 알아보았기 때문에 캐롤라인과 나는 서로에게 여유로웠다. 우리는 자신보다 상대에게 친절을 베풀기가 훨씬 쉬운 사람들이었다. 캐롤라인이 루실을 데리고 육 킬로미터를 걷겠다고 고집하면 내가 절반으로 충분하다고 설득했다. 또 내가 내리막길에서 무게가 무려 십육 킬로그램이나 되는 보트를 머리 위로 들겠다고 고집하면 그녀가 보트하우스에 달려와 운반을 도와줬다.
---「“지금 뭐해?” “전화 기다리고 있었지.”」 중에서
타인의 은혜가 충만한 인생을 산 사람들에게 애착이란 복잡하지만 당연한 무엇이다. 반면 내향적인 사람에게 애착이란 조금은 모호한 영역이다. 내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 감정에 솔직하고 활발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 하루의 끝, 파티의 끝, 산책의 끝, 관계의 끝을? 알았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던 시절에는 버번이 소울메이트이자 변치 않는 애인으로 등 뒤에 버티고 있었으므로 다른 사람들을 피하거나 무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벽돌로 쌓은 벽이든 고립으로 세운 벽이든 벽을 허물자면 그에 상응하는 양의 수고가 필요하다. 캐롤라인과 나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를 밝은 곳으로 꾀어냈다. 서두르지 않고 상대방의 자율을 분명히 배려한 덕분에 서로 주춤거리며 물러설 필요가 없었다.
---「“지금 뭐해?” “전화 기다리고 있었지.”」 중에서
죽음이 이야기의 끝이 아님을 이해하기까지 나는 몇 년이 걸렸다. 죽음은 이야기를 바꾸어놓는다. 일방적인 대화체의 오점과 통찰을 수정하고 고쳐 쓰게 만든다. 우리 대부분은 죽음이 아니라 거리가 서로를 갈라놓을 때까지 서로의 삶을 드나든다. 시공간과 마음의 권태가 인간관계에 있어 더 냉랭한 사형집행인들이다.
나는 되풀이해서 꾸는 캐롤라인 꿈이 몇 가지 있다. 캐롤라인이 숲속의 녹청색 작은 집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꿈,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를 타이핑하는데 내가 찍은 글씨의 잉크가 계속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꿈. 꿈에서 그녀는 언제나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는 사람이지만 끔찍하거나 고통스러운 꿈은 아니다. 손을 뻗으면 서로 닿는 지척이었기에 언제나 상실을 이겨낸다. 하지만 견디기 힘든 꿈도 한 가지 있다. 그녀가 아파서 치료받는 중인데 내가 그녀를 찾지 못하는 꿈이다. 연락이 끊어지거나 전화가 되지 않거나 그녀에게 통하는 잠긴 문 앞에서 열쇠가 부러진다. 조금씩 다른 변종이 여러 가지 있지만 번번이 손으로 허공을 할퀴며 깨어나는 꿈의 메시지는 하나다. 우리 사이에 끼어든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면 프레쉬폰드에서 만나자」 중에서
때는 5월 초의 화창한 오후였다. 우리는 일찌감치 병원에 도착해 햇살이 내리쬐는 야외에서 땅바닥에 책상다리를 한 채 서로를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캐롤라인의 작가생활은 이미 중단되었지만, 잊어버리고 미처 취소하지 못한 미완의 원고가 하나 남아 있었다. 애견잡지에 그녀와 루실에 대한 에세이를 싣기로 한 약속이었다.
“무슨 얘기를 써야 하지?”
그녀가 물었다.
“자기 개를 잃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 자기가 개보다 먼저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거라고?”
그녀의 음성이 갈라졌다. 나는 가보지 못한 두려움 너머의 경지에 그녀가 들어섰음을, 나로서는 가장 힘들지만 최선의 행동이 조용히 입을 닫고 듣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희망이나 안도의 거짓 약속은 모두 우리가 처한 자리에서 도망치려는 시도일 뿐이었다. 햇살이 비치는 마운트오번 병원 잔디밭에 그녀의 손목을 감싸 쥐고 앉은 이곳이 지금의 우리 자리였다.
---「휴우, 이제 사람들의 투병담을 들어야겠군」 중에서
나는 그 부재의 집에 살며 사라진 존재의 자리를 슬픔이 대신할 때까지 거기서 위안을 구했다. “비탄은…… 내게 기품 있는 그 애의 모든 부분을 상기시킨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존 왕King John≫에서 아들을 잃은 콘스탄스가 하는 말이다. “그러니 내게는 비탄을 달가워할 이유가 있다.” 다시는 캐롤라인 같은 친구를 만나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나를 그토록 잘 아는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 같다. 누구도 그녀를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은 달콤하고도 씁쓸한 의리였다. 이제 그녀 대신 내게 남은 것은 그녀의 죽음이다.
애도는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다. 애도의 초반에 쏟아지는 화환과 음식과 화합이라는 우아한 허울을 벗겨내면 지극히 사사롭고 세세한 반응이라, 애도의 궤적은 관계 자체만큼이나 복잡하다. 사람들은 침대 옆자리의 온기, 저녁 무렵 웃음소리나 손짓들, 함께한 여행지 혹은 함께 나눈 느낌을 그리워한다. 내가 캐롤라인을 그리워하는 방식도 수십 가지였지만, 그 모두를 관통하는 것은 실재 대화든 상상 속의 대화든 끊임없는 대화의 부재였다.
“우리가 그립다.”
병원 밖에 나왔던 날 아침에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 오랜 세월 글쓰기와 애견훈련과 삶의 평범한 상처들을 시험처럼 거치며 캐롤라인과 나는 서로의 머릿속에 편안하고 듣기 좋은 음성이 되어주었다. 이제 내 생각들은 들어주고 알아주는 이 없이, 저 혼자 베이스만 요란하게 댕그랑거리는 쓸쓸한 음악이었다. 여러 달 동안 나는 계속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의 임종이 어떤 의미였는지, 그녀의 죽음으로 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얘기하고 싶었다.
---「우리가 그립다」 중에서